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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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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4 |
예수의 이야기
(한길사)
3) 민중언어

철학에는 인식론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사람은 들에 핀 한 송이 꽃에서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됩니다. 그런데 좀 한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 꽃이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일까? 내가 저 꽃이 아름다운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그 꽃이 아름다운지 그렇지 않은지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나 자신은 비었는데 저 꽃의 영상이 비쳤다면 그 영상이 내게 들어와 자리를 잡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꽃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인식될까? 가령 눈이 있으니까 꽃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면 개나 소에게도 사람처럼 그 물체가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될까? 아무리 봐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들에서 그 꽃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나비나 벌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을 인식해서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꽃에서 꽃을 찾아 헤맬까? 그러나 그것은 꽃이 가진 분비물(화분)에서 풍기는 냄새가 촉각을 자극하여 찾아들게 하는 것이지 꽃 자체를 인식해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꽃을 꽃으로서 인식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머릿속에 바로 그 꽃의 원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에 그 꽃의 원형이 있어서 밖에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체계를 관념론적 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꽃에 대해서하는 말은 그가 본, 그가 만난 또는 그가 경험한 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 있는 관념의 표현일 것입니다.

희랍철학도 관념론이 지배합니다.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것의 원형은 다른 세계에 있고 역사에 나타난 것은 그것이 반영 또는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이는 것은 모두 실체가 아니고 그 본체는 보이지 않는 데 있으니 자연히 생각하며 더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더듬어 밝힌 것을 말에 정확히 담을 수 없으며 또 사람마다 일치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로써 계속 사변하고 또 서로 자기 사변의 결과가 옳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자니 남이 인정하는 객관적 표현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도구가 바로 '논리'라는 것입니다.

관념론과 대립하는 것에 유물론이 있습니다. 유물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자체로부터 파악하고 이 세계를 있게 하는 고유한 원요소(原要素)를 찾아내는 데 몰두함으로써 창조설을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는 물질로써 물(水), 불(火), 공기(空氣)를 내세웠습니다. 저마다 각도가 다르긴 하지만 세상을 이룬 것은 질료(Materie), 즉 물(物)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관념론에 맞서려고 했으나 그 정도로는 창조설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후 인간적 유물론 등을 거쳐서 마르크스, 엥겔스에 와서 이른바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정착됐습니다. 이것은 유물론이 자연주의와 일치된 것에 반대하여 인간의식이 시작되고 발전되게 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물질적 생산활동인 '노동'이라고 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물론을 사람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물질과 의식의 관계를 주객의 관계로 보지 않고 서로 작용하여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론에 대한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서구의 철학적 유산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것과의 싸움에 몰두하면서 고대로부터의 유물론의 발전적 극복에만 치우친 나머지 인간의 주체성은 노동에 있음을 발견했으나, 그 자신은 전생애를 사변하는 데 바치고 '더불어 사는 현실'에 합류할 수 없었습니다. 즉,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고 노동의 삶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민중은 마르크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민중은 원래부터 관념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따위의 물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즉 지금의 삶이 중요합니다. 민중은 줄곧 생존의 위협에 시달려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의식주(衣食住)의 문제 해결이 삶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므로 관념적이기보다 물질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그렇다고 민중은 유물론자도 아닙니다. 유물론은 관념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성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민중은 '논'(論)하지 않습니다. 삽니다. '논' 하면 삶은 추상화할 수밖에 없고 '관'(觀)을 세우면 관념에서 탈피할 수 없습니다. 민중은 삶을 '관'(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삶을 삽니다. 그들은 어떤 가설을 갖고 그것이 맞는지를 실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삶의 경험에서 지혜를 낳습니다.

농부는 특히 관념론자도 유물론자도 될 수 없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아니 어쩌면 평생토록 농부가 상대하는 것은 물질입니다. 흙입니다, 땅입니다. 곡식입니다. 그것들을 가꾸어(노동) 먹기도 하고 싸기도 하며 그 싼 것을 재생산에 투입합니다. 그래서 얻은 것으로 입기도 하고, 살 집도 장만합니다. 그렇게 삶 전체가 물질적입니다. 그러나 유물론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노동해도 한계에 부딪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해(太陽)와 비와 바람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고르게 해가 비추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주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제 힘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지 않고 하늘과 더불어 짓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할 일을 다하고는 '자연의 조화'에 기댑니다. 그 자연이란 어떤 '관'(觀)으로 포착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결정하는 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았어도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한재가 나면 하늘, 천지, 신명 등의 이름을 부르며 호소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삶입니다.

민중언어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란 바로 삶의 경험을 그대로 진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을 구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 안에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논'(論)이 아닙니다. '논' 하면 객관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단 구경꾼이 되어야 합니다. '논하는 것'과' 이야기'의 차이는 물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물을 한 바가지 퍼내는 것과 그물로 건져내는 것만큼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논'은 이미 어떤 것을 건져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건져올릴 만한 그물을 만들어 그물에 걸리는 것을 대상으로 삼지만 바가지로 푼 것은 물 안의 어느 부분이 아니라 물 전체를 담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 같은 민중의 삶에서 민중언어로서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우리 손에 전해진 복음서에는 그런 이야기만 담겨 있지 않습니다. 사변의 찌꺼기, 교리 등이 많이 뒤섞여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비유라고 일컫는 것들은 그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중언어로서의 예수의 이야기인 '비유'들을 찾아내서 그 뜻을 되도록 살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속담이나 격언처럼 비유와 비슷한 것도 많아서 예수의 '비유'를 가리는 데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비유'로 분류된 것에 치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표식이 없는 것 중에도 이야기로 된 것을 몇 가지 더 덧붙였습니다.


| 안병무전집4 |
예수의 이야기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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