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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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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4 |
예수의 이야기
(한길사)
2) 그물 안에 든 고기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친 그물과 같다. 그것으로 여러 가지 고기를 모으는데 고기가 가득히 들면 해변에 끌어올려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마태 13, 47~48).

갈릴래아 지방에는 호수가 있는데 얼마나 큰지 사람들은 '호수'라고도 하고 '바다'라고도 불렀습니다. 원래 갈릴래아는 비옥한 땅이어서 팔레스틴에서도 가장 중요한 곡창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빈털터리가 된 농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그리로 많이 몰렸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의 또 하나의 보화가 바로 이 호수인데 그 이름은 여러 가지로 바뀌어 불렸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라고도 불렀고 '겐네사렛 호수'라고도 했습니다. 또한 '티베리아 바다'라고도 했는데, 그것은 로마제국에 아첨하느라고 로마의 '티베리아'라는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입니다.

옥토라고는 하지만 돈이나 세력이 있는 부재지주가 중요한 지대를 다 차지해서 그외의 사람들은 소작을 부쳐먹거나 아니면 날품팔이꾼으로 한 철을 보내기도 하며, 큰 지주나 부재지주의 땅의 관리자로 고용되어 박봉에도 감지덕지하면서 그날 그날을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땅은 절대다수의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실업자들이 우글거렸으며 농사만으로는 도저히 삶을 지탱할 수 없어서 바로 그 호수에서 고기를 낚아 연명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호수에서 생계를 찾는 사람들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농부가 본업인데 그 소출로는 연명할 수 없기 때문에 부업으로 어부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농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호수에서 고기를 낚아 그것을 팔거나 해서 연명해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전문적으로 자그마한 배를 장만해서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가 처음 제자들을 부른 현장도 바로 이 호숫가였으며, 베드로를 위시한 4명이 배를 갖고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던 이들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아마도 예수는 이 호숫가를 자주 거닐며 조각배를 타고 그 호수를 횡단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고기를 낚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낚시를 드리워 한 마리 씩 낚아채는 방법, 투망을 이용해서 잡는 방법 등이 있는데, 투망은 마치 바람에 부풀린 여자들의 치마 같아서 그 가장자리에 무게 있는 돌이나 납 같은 것을 단 것을 치마 주름을 잡듯이 한 손에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그 중심의 줄을 꽉 잡은 다음에 고기가 있음직한 데서 그것을 확 뿌리면 바람에 날리는 여자의 치마나 낙하산처럼 활짝 펴져서 무거운 가장자리가 먼저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그 그물이 펼쳐진 범위 안의 고기들은 몽땅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어부는 조심스럽게 그 그물을 끌어 물가로 올립니다. 또 하나의 본격적인 방법은 배를 타고 고기가 있음직한 곳에 가서 투망과 비슷하나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긴 그물을 넓게 칩니다. 배 하나로 하는 경우도 있고 배를 가진 사람 두셋이 협력해서 작업을 같이하는데, 그물을 치는 일과 고기떼를 몰아오는 역할을 서로 분담합니다. 그런 다음에 서서히 좁혀들어가다가 마침내 끝을 맞물리게 한 다음 배 위로 끌어올립니다. 그 그물 속에는 호수나 바다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생물들이 구별 없이 포위되어 함께 끌려나옵니다. 그물에 비록 갇혔으나 물 안에 있을 때나 배 위로 끌어올릴 때까지만 해도 이 여러 생물들이 공존하게 됩니다. 그 동안에는 그 안에 든 것이 모두 같은 운명에 놓여 있으며 좋고 나쁘거나, 값지고 싼 구별이 없습니다. 물 안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물에서 건져내어 숨이 가쁠 때까지도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연 속에서 미물(微物)에서부터 큰 동물에 이르기까지 함께 공존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연'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삽니다. 세상에 직업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혈통으로 보나, 윤리적으로 보나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한 도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존의 때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그물을 뭍으로 끌어낸 주인은 호숫가에 앉아 그물에 걸린 생물들을 쓸 것과 못 쓸 것을 가려내기 시작합니다. 쓸 것은 추려서 그릇에 담고, 쓸모 없는 나쁜 것은 다 내버립니다. 그러면 갈매기나 바다새들이 모여들어 아귀다툼을 하며 물고 찢으며 단숨에 먹어치웁니다. 어촌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이러한 이야기를 예수는 몇 마디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별다른 것이 없고,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노동 현장의 단면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일상적인 고기잡이 현장에서 무엇을 보았고, 또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그가 고기 잡는 광경을 유심히 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는 어부들의 손길을 따라 고기 잡는 과정을 주목하다가 마침내 일반 사람들이 별로 생각지 않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 그물에 걸린 생물 자체들의 운명에 관심을 쏟은 것입니다. 물에서 그물에 포위되어 건져질 때까지 아무 구별 없이 함께 끌려나은 그 생물들이 뭍으로 올려지자 어부의 손에 의해서 두 그룹으로 가차없이 갈려지고 마는 사실이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입니다.

공존하는 때와 분리되는 때! 공존할 때는 너, 나의 구별이 없었으나 때가 이르면 쓸 것과 못쓸 것으로 엄연하게 구별되어 한 그룹은 유용한 것으로 그릇에 담겨지고, 한 그룹은 쓸모 없는 것으로 버려져 썩어버리거나 모든 잡새들의 밥이 됩니다. 예수는 이것을 보고 인간 역사에 닥쳐올 심판의 현실을 연상한 것입니다. 공존하던 밀과 가라지를 추수 때가 되면 엄격하게 구분하여 각기 다른 단으로 묶어 밀은 곳간에, 가라지는 불태워버리는 것과 꼭 같이! 인간세계도 이런 심판이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나라는 바다에 친 그물과 같다는 서두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이 이야기의 내용과 잘 통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그물이 아닙니다. 어떤 눈으로 보아도 하느님 나라가 그물과 같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부도 하느님 나라가 될 수는 없고, 작업 자체가 이 이야기의 중심도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그 그물에 걸린 생물들의 최후입니다.

심판과 하느님의 나라는 유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기존의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철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철저한 심판 없이 하느님 나라는 도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곧 하느님 나라의 내용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같이 무서운 경고로 받아들여졌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한데 모여 삽니다. 저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가 정해준 의무도 똑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무 구별 없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헤치고 보면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마음씨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신앙생활에서도 밖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질적인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또 저들이 교회에서 노리는 것도 각기 다를 것입니다.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한 사람들, 특별한 질병을 고치기를 바라는 사람 또는 교회라는 조직체를 사교장으로 이용할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교회라는 울타리에 있음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인정을 받고 그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때문에 저들은 누구도 자신들을 이 공동체에서 갈라놓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도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이 짤막한 이야기는 충격으로 와닿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외형상으로는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공존할 수는 있으나 마침내는 추려지는 때가 오게 되며, 그때에는 자신들도 어쩌면 쓸모 없는 생물처럼 버려진 존재가 되어 바다새들의 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 안병무전집4 |
예수의 이야기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예수는 논하지 않았다
   
제1부 민중의 언어, 이야기
   
1. 성서라는 책의 성격
2. 성서의 서술양식
    1) 구약성서
    2) 신약성서
    3) 민중언어
   
제2부 예수의 이야기(비유)
   
1. 만성병에 걸린 세대
    1)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2) 이 때를 모르는 세대
    3) 악마가 악마라는 죄목으로 박해하는 세상
    4) 어둠에서 썩어가는 세대
2.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1) 목동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2) 잃은 돈 찾은 여인
    3)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
3. 가치의 전도
    1) 누가 ‘그’의 이웃이냐?
    2) 오! 하느님!
    3) 부자의 돈과 과부의 돈
    4) 말만 하는 자와 실천하는 자
    5) 자신을 철저히 비운(空) 자
4. 집요한 투쟁(간구)
    1)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2) 닫힌 문
    3) 빚진 자의 엉뚱한 마무리
    4) 한 과부의 투쟁
    5) 친구를 위한 투쟁
5. 심판
    1) 공존의 때와 심판의 때
    2) 그물 안에 든 고기
    3) 심판과 맡은 분깃
    4) 심판과 대비
    5) 너무도 어리석은 부자
    6) 한 부자와 거지
    7) 뜻밖의 심판의 기준
    8) 심판은 바로 관용의 한계
    9) 이미 문이 영원히 닫혔을 때
6.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
    1)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농
    2) 겨자씨 이야기
    3) 조용한 혁명(누룩의 이야기)
    4) 그만이 아는 숨겨진 보화
    5) 한 장사꾼의 모험
    6) 해방의 기쁨
    7) 밥상공동체
    8) 손익계산이 없는 세계
    9) 절망과 희망(씨 뿌리는 농부)
   
제3부 성서해석권은 민중에게
   
1. 한 책에 대한 두 가지 이름
2. 성서의 열쇠는 주머니 속에
3. 성서의 전승을 위한 노력들
4. 종교개혁시대와 성서해석
5. 다시 빼앗긴 성서해석의 권리
6. 성서해석권을 되찾으려는 평신도운동
7. 성서의 전승모체
8. 신약성서 성립
    1) 민중과 '지도층'의 상충
    2) 마르코복음의 성립
9.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주인
   
제4부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1) 역사의 예수 추구
    2) 자료
2. 예수의 시대상
    1) 정치적 상황
    2) 유다 사회상
3. 공생애의 출발
    1) 세례자 요한
    2)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3) 갈릴래아로
4. 갈릴래아의 예수
    1) 민중과 더불어
    2) 제자 선택
    3) 예수의 시선이 머문 대상
    4) 자유를 위한 투쟁
    5) 하느님 나라의 선포
5. 예루살렘의 예수
    1) 예루살렘
    2) 예루살렘행
    3) 예루살렘 입성
    4) 죽음의 전야
    5) 심문과 처형
6. 그는 누구인가?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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