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예수를 찾아볼 수 있는 자료로는 복음서들이 직접적인 것 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밖의 신약의 문서는 2차적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밖의 문서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도움 될 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이 거의 유일한 자료인 셈이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대로 복음서의 고백적 요소가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요한복음 같은 경우는 역사적 사실(史實)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오히려 하나의 신앙의 입장을 변증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예수를 추구하는 자료로서는 부차적 의미밖에 없다. 이에 비해서 다른 세 복음서는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적(史實的)인 내용이 우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 복음서를 역사의 예수의 직접자료로 한정한다.
세 복음서를 대조 분석한 결과 그중 마르코복음이 가장 먼저 된 복음서임이 밝혀졌고, 마태오와 루가는 그들의 복음서를 서술할 때 그것을 한 자료로 삼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마르코복음의 내용은 거의 마태오와 루가복음에 실려 있다. 그래서 이 셋을 같은 자료를 갖고 있다는 뜻에서 공관서라고 한다. 그런데 마태오와 루가는 마르코복음 외에 또 하나의 공동자료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마태오와 루가에서 마르코를 빼고 남은 것 중에서 두 복음에 공통된 자료가 바로 그것이다. 학자들은 그것을 편의상 Q(독일어로 자료 원천) 자료라고 이름했다. 그런데 그것은 대부분 예수의 말씀을 모은 것이다. 그 밖에 루가나 마태오가 각기 고유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이상의 발견에서 역사의 예수를 찾는 자료는 공관서에 집중하게 되는데, 특히 마르코복음이 중요하므로 그 우선권을 인정하고 들어가게 된다. 마르코가 제일 먼저 된 복음서일 뿐 아니라 예수의 말씀 보다는 그의 행태에 치중했고, 다른 두 복음서는 마르코의 순서를 틀로하고 그 사이사이에 Q자료나 또는 각각의 특수자료를 삽입ᆞ편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서 연구는 지난 백 년 동안 2천년간 파묻혀 있던 성서 안의 참모습을 찾아내는 데 급진전을 보았으나, 여전히 역사의 예수를 밝혀내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예수와 복음서 형성의 시대사를 추구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그 언어들이 어떤 사회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묻게 된 것이다. 먼저 출발한 것은 그 시대의 종교 세계이다. 그것을 종교사적으로 살핀 것이다. 이로써 복음서 언어의 종교적인 본뜻을 밝히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사를 일반사에서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 맹점이 있었다. 종교는 역사적인 것으로 언제나 그 시대의 정치ᆞ경제 사회 전반과 함수관계에 있다. 더욱이 성서에는 이른바 종교적이 아닌 일상용어와 사건내용이 더 많다. 이 같은 사실을 존중하면서부터 당시의 사회적 상황 전반을 밝힘으로써 역사의 예수의 행태와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2천 년의 거리를 가진 오늘에 와서 그 당시를 재현 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이것은 비단 성서만이 아니고,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사실의 재현이 다 그러하다. 더욱이 그 시기가 오래면 오랠수록 더욱 그렇다. 하물며 역사의 인물이 신앙의 대상이 된 경우가 더 어렵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역사의 예수에 관한 어떤 노력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중단되지도 않겠지만,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그를 더 가까이 알고 싶은 염원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위에서 언급한 학문적 노력의 결과를 참작하고, 자신도 그러한 방법과 눈으로 서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예수의 모습이지 결론은 아니다. 어쩌면 결론은 없을지 모른다. 산 인물과의 교류에서도 언제나 모르는 여백이 남게 되며 또 가변적이기에(본인이나 보는 자의 입장이) 마지막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물며 예수와 산 관계를 가지려는 노력에 있어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