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암 하 아레츠'는 '땅의 사람'을 의미한다. 이 말은 본래 지주계층을 일컬었다.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의 축복은 곧 땅과 결부 되어 있다. 하느님의 축복이 언제나 땅의 약속으로 표현된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땅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축복을 받은 것이 된다.8)땅은 구약에서 일관된 약속이다. 가나안 땅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얻은 땅으로 생각되었다. 이 전통은 마태오에게도 전승되어 땅을 얻은 것을 팔복에 포함시켰다(마태 5, 5).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배층이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이후부터는 그 개념이 달라졌다. 바빌론은 이스라엘을 공략하고 그 지배자나 지주를 포함, 상류계층을 모두 포로로 잡아갔다(열왕하 24, 10~17). 그리고 이들의 소유였던 땅은 남아 있는 이스라엘의 농민이나 하류계충에게 그리고 정책적으로 이민시킨 이방인들의 손에 모두 넘겨졌다. 이때부터 포로로 잡혀 간 상류층이 이렇게 땅을 차지한 자들을 멸시와 분노의 뜻을 담아 '암 하 아레츠'라고 불렀다. 그후 특히 에즈라서 편집 이후 이 개념이 나타나고(10, 1) 느헤미야(10, 31)에도 등장하는데9)H. Kreissig, a.a.O., S. 34. 크라이시히에 따르면, 암 하 아레츠는 후기 라삐시대 이래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류층인 민중으로서, 처음에는 하시딤과 대립시키다가 후에는 바리사이파와 대립시켰다.10)J. Jeremias, Jerusalem……, S. 294, 302f/ 한역본 331, 339면 이하. 라삐 아퀴바는 "내가 암 하 아레츠일 때 만일 한 학자를 모신다면, 나는 그를 당나귀처럼 물어뜯을 것이다"고 말했다(H. Kreissig, a.a.O., S. 85에서 재인용). 이같이 암 하 아레츠의 뜻이 변질된 것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쌍놈'과 같다. 땅꾼(농사꾼), 무식한 자, 율법을 모르며11)W. Bousset, Die Religion des Judentum im spathellenistischen Zeitalter(HNT, 21) Tübingen, 1966, S. 187. 요한 7, 49에서 바리사이파 사람이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지키는 자로 통했다.12)J. Jeremias, a.a.O., S. 303/ 한역본 340면. 그러기에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이방인처럼 취급했다.13)마르 2, 16/ 공관.
그런데 암 하 아레츠라는 이 말은 후기 유다교―라삐 유다교에서는 바리사이파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에 이르러 또 다른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라삐들의 유다교는 율법으로 에워싸인 체제이다. 이처럼 율법을 생활화하려는 동기는 이스라엘의 주체성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율법'으로 무장시키자는 데 있었다.14)이러한 움직임은 멀리 하시딤에게까지 소급된다. 마카베오 전쟁시에 유다교 신앙을 보존하기 위한 투쟁에 '경건한 사람들의 모임'(συναγωγή Ασιδαιων)이 가담했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고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M. Hengel, Judentum und Hellenismus, Tübingen, 1969, 2. durchgesehene und ergangte Auge., S. 319, 324f). 바리사이파와 에쎄네파는 모두 이들을 원류로 한다. 그런데 율법에 대한 충성은 인간의 모든 인식영역에서 토라의 권위와 충분성을 주장하는 유파를 형성시켰으며, 이들은 토라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장악해나갔다. 율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계명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다. 경건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 일체를 토라에 따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개별적인 계명들에 대한 결의론적 토론이 활성화되고 확산되었다. 바로 이것이 라삐 유다교의 특징이다(M. Hengel, a.a.O., S. 314f.). 이 동기는 옳았다. 그런데 그것은 두 가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그 제도가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였으며, 특히 가난한 층을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들의 일주간은 "안식일을 위해" 있어야 했고, 무엇보다 정결법의 엄격성 때문에 직업종사의 길이 크게 제한 됐다. 그리고 저들에게는 양심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을 둘로 갈라놓게 되었다. 체제 안의 사람과 체제 밖의 사람이 그것이다. 체제 안의 사람은 율법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으로 이른바 '참 이스라엘' 또는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죄인'으로 낙인 찍어 체제 밖으로 밀어냈다. 이처럼 체제로부터 밀려난 소외자들이 바로 '암 하 아레츠'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체제로부터 밀려나 '암 하 아레츠'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앞으로 더 논의되겠지만 라삐 유다교 체제의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라삐 유다교의 체제는 『미슈나』(Mishna)15)라삐들은 『미슈나』가 모세에게 소급된다고 주장한다. 『미슈나』는 구약성서 해석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보다 더 조직적인 교본의 역할을 했다.라는 책에서 전승되는데 여기에는 농사짓는 일, 축제를 지키는 일,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규칙, 예배의 규율, 식사의 규율, 정결법 등 생활 전반에 대한 것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안식일법 하나만을 보아도 그 체제의 본질을 금방 알 수 있다. 안식일법의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하겠으나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느냐에 있다. 안식일법에 비추어보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다음 날 하루를 먹을 수 있는 여유 양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곧 일용할 양식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날그날 벌어야 먹을 수 있는 사람, 직업상으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사람 곧 목동, 뱃꾼, 몸 파는 창녀, 한재 만난 농부들 그리고 병자들은 도저히 안식일을 지킬 수가 없다. 또한 이방인 노예들이나 고용병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어서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는데도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로 해서 '죄인'으로 정죄되고 체제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바로 이들을 '암 하 아레츠'라고 한 것이다.
정결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불결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정결법을 지킬 수가 없다. 항상 온몸에 똥냄새를 풍기는 오물처리자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나귀몰이, 낙타몰이, 뱃꾼, 수레꾼, 목동, 잡상인, 의료행위자(돌팔이 의사), 백정 등은 모두 천직(賤職)으로 되어 있고, 또 어떤 기록에 따르면 쓰레기(넝마)주이, 동(銅)구이, 피혁가공인 등도 천직으로 되어 있는데,16)J. Jeremias, a.a.O., S. 365/ 한역본 383면. 그 이유는 이들이 정결법이나 안식일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면서 이스라엘로부터 소외되었고, 암 하 아레츠로 규정되었다. 이들이 곧 '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