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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3 |
갈릴래아의 예수
(한길사)
예수가 만난 사람들

마르코복음은 처음부터 많은 무리가 예수에게 몰려왔다는 말을 반복한다.17)안병무, 「예수와 오클로스」, KNCC신학위원희편, 『민중과 한국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2를 참조. 예수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무리가 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먼저 크게 부각된 것은 병자들이다. 예수의 행태에 병자들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18)일곱째 마당 '사탄과의 투쟁'을 참조. 이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가를 말한다. 우리는 그 중요성의 일면을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본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 맹인이 보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 11, 4~5).

루가에서 집약된 나자렛에서 한 예수의 '선언'(루가 4, 18~19)도 이와 유사하다. 예수는 몰려든 그 병자들을 단순히 치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동시에 사탄을 추방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간주했다. 이것을 병자들의 측면에서 본다면 저들은 모순과 갈등구조에서 희생 당하고 있는 자들이며, 저들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것은 곧 악마와의 투쟁을 뜻한다. 이것은 다음에 '사탄과의 투쟁' 마당에서 별도로 다룰 것이다.

예수 주변에는 여인들이 많다.19)자세한 것은 여덟째 마당 '예수와 여인'을 참조. 남성 위주의 사회였을 뿐 아니라 여성을 '정신있는 재산'으로 보는 그때의 풍토로 보아 이런 여인들에 대한 보도는 역사적 근거가 충분히 있을 것이며, 오히려 그보다 훨씬 많은 내용들이 남성들의 손에 의해 무시되거나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여자들은 끝까지 예수를 좇고 그의 처형현장을 지켜보는 유일한 인물로 등장했다. 이것도 다른 마당에서 취급할 것이다.20)여덟째 마당 '예수와 여인'을 참조.

예수운동의 핵심으로 어부들이 등장한다. 어부라는 직업이 반드시 가난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를 가지고 있으면서 삯꾼을 부렸다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부는 천직이다. 그 까닭은 어부란 물고기를 속여서 잡기 때문이라는 도덕적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는 데 있다.21)J. Jeremias, a.a.O., S. 345f/ 한역본 391면. 고기잡이 하는 사람에게 안식일에 맞추어 돌아오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다.

또한 예수의 제자 가운데 세리가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색적인 부분이다. 끝으로 주목되는 것은 그의 제자 중 세리들과 원수관계에 있어야 할 젤롯당도 있었다는 것이다. 세리는 이스라엘 동족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이들로서 강도나 사기꾼과 동일시되어 그들의 헌금도 외면당할 정도였다. 이들은 특히 젤롯당이 원수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가난의 상징은 아니지만 그 민족사회에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 소외자들이다.

시몬이 젤롯당원이었다는 것은 명기되어 있다(마르 3, 18). 그런데 가리옷 유다 역시 젤롯당원이었을 공산이 크다. 그를 "시카리의 유다"라고 읽을 때 더욱 그렇다. '시카리'는 '칼을 품은 자'란 뜻으로 젤롯당운동에서 자객으로 활동한 이들이다.22)젤롯당과 시카리를 구별하는 것을 전제로 분석하는 헹겔은 양자를 결국 같은 이념의 분파들로 보는데(M. Hengel, Die Zeloten, S. 387f.), 이러한 구별은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수상쩍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인 '바르요나'(마태 16, 17)는 아람어로 '테러리스트'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23)R. Eisler, ІНΣΟΨΣ ΒΑΣΙΛΕΨΣ ΟΨ ΒΑΣΙΛΕ ΨΣΑΣ. Die messianische Unabhängigkeitsbewegung vom Auftreten Johannes der Thufer bis zum Untergang Jakobus der Gerechten nach der neuerschlossenen Eroberung von Jerusalem des Flavius Josephus und den christlichen Quellen dargestellt, Bd. 2, 1929, S. 67f. 그리고 예수가 처형되었을 때 좌우 양편에 두 '강도'가 함께 처형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역시 젤롯당원이었음에 틀림없다.24)요세푸스는 그들을 시카리라는 새로운 유형의 강도들이라고 한다. 헹겔은 그가 젤롯당원임을 의심하지 않는다(M. Hengel, Die Zeloten, S. 30). 그렇다면 예수는 젤롯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된다. 그때 젤롯당원을 가리켜 '강도'라고 불렀는데(요세푸스도 그랬다) 그것은 로마 당국에서 규정한 것이다. 단순한 강도라면 십자가형에 처해질 자격이 안 되었다.25)G. Baumbach, Jesus von Nazareth im Lichte der jüdischen Gruppenbildung, Berlin, 1971, S. 24f. 이른바 '강도'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서 싸웠던 정치범들, 곧 젤롯당원이었다. 예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젤롯당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가 젤롯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한다.

젤롯당의 중심은 갈릴래아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보아 거덜난 계층이었다. 이들은 예수를 따랐던 무리와 흡사한 사회성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를 젤롯당과 관련시켜 보려고 하나,26)S. G. F. Brandon, a.a.O., S. 322f. 이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와 젤롯당 사람들이 '민중'이란 측면에서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수의 이야기에서 보면 농부, 노동자, 거덜난 사람들, 일자리 없는 사람들과 같이 미천한 사람들이 그를 많이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들이 때로는 4천 내지 5천 이상씩, 그것도 여인과 아이들을 빼고 떼지어 따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마르 6, 30 이하8, 1 이하).

이들에게서 공통점을 지적한다면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겠다. 이 '가난'은 실제로 어느 정도의 것이었을까? 이미 앞 마당에서 제시한 것 중에 구체적인 경우를 상기해 보자. 당시에 하루의 품삯은 1데나리온이다. 1데나리온은 밀 13리터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대개 여섯 되 가량으로, 식구에 따라 다르겠지만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는 최저의 생활비이다. 복음서에는 한 과부가 있는 재산을 다 털어서 헌금으로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전재산이란 모두 2렙톤(Lepta)이었다. 2렙톤이란 1/12데나리온으로, 결국 과부의 총재산은 약 반 되의 밀을 살 수 있는 액수인 셈이다. 성서에서 과부는 '민중'의 상징이다.

또 복음서에는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여인과 아이들을 뺀 숫자가 4천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마태 15, 38). 이들이 사흘이나 굶었는데 이들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당 평균 밀 1/4되로 친 값으로 그때의 시세에 어느 정도 상응한다. 여인과 아이들을 합치면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양은 훨씬 줄어든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들이 얼마나 가난한 무리였는가를 알 수 있다.

어부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의 상징은 아니었다. 복음서에서 저들은 약간의 재산(배, 그물)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리도 그렇다. 그들은 돈을 만지는 자들로, 지위에 따라서는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다. 예수의 제자가 된 레위는 출가(出家)의 잔치를 베풀 정도(마르 2, 15)27)루가복음은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보도한다(루가 5, 29).였으며, 동화적으로 서술된 자캐오 이야기(루가 19, 1~10)는 그가 상당한 재산가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세리가 곧 부자는 아니다. 맨 아랫자리에서 심부름하는 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28)유다인 세리들은 국가관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로마의 징세 청부업자들처럼 세금을 대납하고 대납한 세금을 동족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세관장에 예속되어 있었고 세관장을 중심으로 결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Bo Reicke, a.a.O., S. 103/ 한역본 15 이하.). 쉬러는 세액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패의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고 한다(E. Schürer, Geschichte des jüdischen Volkes im Zeitalter Jesu Christi, Nachdruck, Hildesheim, 1964, S. 475). 저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하류층이었다. 예수는 도대체 상류층이 사는 도시에는 접근하지 않았으며29)예수는 예루살렘과도 교류가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어떤 명망가도, 그들과 교류하는 자도 없었다.30)아리마태아 요셉은 '명망있는 의회의원'이었다고 하는데(마르 15, 43), 그닐카에 따르면 그는 아리마태아 지역 재판소의 회원이요, 부유한 지주였을 것이라고 한다(J. Gnilka, Mk, II. S. 332f./ 한역본 440면). 그러나 비록 그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린 경건한 유다인이요, 예수운동에 공감을 가졌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는 예수의 제자는 아니었다. 예수 주변에 있던 이들을 묶어 마르코는 오클로스라고 한다.


| 안병무전집3 |
갈릴래아의 예수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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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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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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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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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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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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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수난의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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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이야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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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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