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 25, 23). 땅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상은 구약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모세는 히브리를 해방하기 위해 파라오와 결전을 벌일 때 "내가 이 성을 나서면 곧 야훼께 손을 들어 빌겠습니다. 그러면 저 천둥소리가 멎고 우박이 그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도 야훼의 것임을 알려드리리다"(출애 9, 29)라고 말한다. 파라오는 호루스(Horus)라는 창조신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현존하는 신8)ANET,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ons to the Old Testament), ed. J. B. Pritchard(2. Aufl. 1955), pp. 14-15.으로,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로 에집트를 통치하고 군림하였다. 그런데 그 땅도 야훼의 것이라는 것이다. 어찌 그 땅을 점유하고 전제(專制)한다고 그 땅이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느냐! 시나이 산에서 야훼는 히브리에게 자신이 그들을 어떻게 에집트에서 해방하였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출애 19, 5)고 묻는다. 그러므로 야훼 자신이 각 민족에게 필요한 직책을 맡긴다고 한다.
신명기학파에게도 이 같은 신념은 일관되어 있다. "그렇다. 하늘과 하늘 위의 또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것 모두가 너희 야훼 하느님의 것이다"(산명 10, 14). 이것은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려 했던 요시아왕의 신앙이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바빌론까지 포함한 온 땅, 아니 하늘까지도 하느님의 것이라는 말이다. 시인은 이렇게 하느님의 주장을 노래한다.
숲속의 뭇짐승이 다 내 것이요
산 위의 많은 가축들이 다 내 것이 아니냐?
공중의 저 새들도 다 내 마음에 새겨져 있고
들에서 우글거리는 생명들도 다 내 손 안에 있다.
이 땅이 내 것이요 땅에 가득한 것도 내 것인데……
(시편 50, 10~12).
땅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 위의 모든 생물이 하느님의 것인 것처럼, 하늘도 하느님의 것이니 그 안에서 날아다니는 것도 모두 하느님의 소유라는 것이다(시편 24, 1~2 참조). 역대기사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야훼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힘 있으시어 존귀와 영화가 빛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 어느 하나 하느님의 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온 세상 위에 군림하시어 다스리실 이 야훼뿐이십니다. 부귀영화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통치자이십니다(역상 29, 11~12).
왜 이처럼 이 땅이 하느님의 것이라고, 아니 하늘도 그리고 바다도(시편 95, 4~5) 하느님의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가 창조주인 한 당연한 일 아닌가? 그것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이 땅을 사령화(私領化)한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을 겨냥한 말이다. 벌써 그 땅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강한 자가 약자를 마음대로 침범하고 기득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경이 생기고 한 나라 안에 빈부의 차가 생기며, 계급이 발생하여 상류계급이 그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하류계급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아직 땅의 사유화를 정당한 것으로 알던 때인데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주장은 놀랍다. 그것은 땅의 국경선은 물론, 그것을 기준으로 하늘과 바다의 사유화까지 주장하여 전쟁을 계속하는 오늘의 문제를 이미 예견하여 주장한 것이 된다.
땅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도 땅에 대한 영구한 사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사람은 식객처럼 자기에게 허락된 땅을 경작할 수 있는 날까지 경작할 뿐이다. '하느님의 것'이라는 주장을 사회학적 개념으로 말하면 땅에 대한 공(公)개념이다. 아무도 사유화할 수 없는 것, 모두를 위한 것이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이 창조주라고 믿는 한, 이것은 사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기득권(가령 땅의 소유)이 창조질서에 속한다고 하는 주장은 창조설을 왜곡하는 것이다.9)비록 하느님이 창조주라고 해도 일단 만들어진 것은 모두 공이다. 공을 공으로 지켜야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하느님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그 형식에 있어서 계약관계와 상통한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이 주장의 반복은 공이 사유화로 침범되어 기득권으로 고집되는 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이른바 죄악은 바로 하느님의 것 즉 공을 사유화한 데서 시작되었고, 계속되고 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을 공으로 돌리는 행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