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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3 |
갈릴래아의 예수
(한길사)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서구 전통에서는 이른바 두 나라설을 합리화하는 데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마태 22, 15~22)라는 예수의 말로 된 구절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예수의 말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많다. 첫째, 이 말은 유다 지방,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때 예수가 동전 하나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거기에 카이사르의 상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 지방에서 통용되는 돈에는 카이사르의 그림이 없었다.22)Bo Reicke, a.a.O., S. 92/ 한역본 138면. 그닐카는 티베리우스 황제시대의 보수적 화폐정책과 관련시켜 황제흉상이 새겨진 동전의 통용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그것의 역사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다(J. Gnilka, Mk, II, S. 153/ 한역본 205면). 그것은 예루살렘파가 어떤 상을 만드는 것도 일체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상황(context)이 잘못된 말이다. 둘째로 하느님의 것과 카이사르의 것의 대비는 유다 전통에서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느님의 것에 대하여 카이사르의 것이 동등한 위치에서 거론될 수 있겠는가? 위에서 거듭 반복한 것처럼 이스라엘에게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일 뿐이다. 적어도 관념상으로는.

이 말은 그 질문 자체가 보여주듯이 젤롯당의 주장과 직접 관련이 있다. 주후 6년 로마정권이 세금을 징수할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했을 때 갈릴래아 유다를 선봉장으로 한 민중들이 야훼 이외에 어떤 인간에게도 세금을 징수할 권한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궐기했다.23)둘째 마당 '예수의 시대상'을 참조.

그것이 젤롯당운동의 시작인데 바로 그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인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초대교회의 고민의 반영이며,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양식으로 낙착되었을 수 있으나, 예수에게서 이것은 불가능한 말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이것이 예수의 말 그대로라 하더라도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예수의 대답형식이다. 질문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마태 22, 17)인데, 대답은 그것과 상관없는 것이 더 강조되었다. 그것은 즉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마태 22, 21)라는 것이다.

이런 대답형식은 다른 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무엇이 제일 큰(첫째) 계명이냐고 물었을 때(마태 22, 36) 예수는 두 가지 대답을 한다.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마태 22, 37~39). 질문은 하나인데 대답은 두 가지다. 예수가 한 대답의 첫째 것은 유다교에서 너무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거의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것에 첨가한 두 번째 대답은 당시 유다 사회에서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악센트는 당연히 후자에 두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카이사르의 것보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에 초점이 있다. 하느님의 것에서 이른바 카이사르의 것이 제외될 수 있을까? 만일 없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것은 무의미한 말이 되어 버린다.

예수에게서는 '국가'라는 개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번역하는 이방이란 말은 민족(έθνος)의 복수이다(έθνοι). 따라서 카이사르나 왕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권력자는 그 땅의 주인이 아니다. 계속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은 바로 권력자이다. 외세나 국가권력이 계속 변질되거나 바뀌어도 유다인의 중심이 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솔로몬 이래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힌 예루살렘의 성전이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유린되면서 사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이 된 후 종교귀족은 민(民)의 것을 약탈하여 로마에 공납하는 대가로 성전을 수호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민 위에 군림했다.24)예루살렘 성전체제의 정치경제적 실천에 대해서는 F. Belo, A Materialist Reading of the Gospel of Mark, New York, 1975, p. 63f., 65를 참조.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부정한다. 다음 마당에서 다시 상세히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예수의 공격의 초점은 바로 이 성전과 종교 귀족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것, 즉 공(公)을 사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고 그 땅을 지켰는가? 그것은 농민들의 공동체뿐이었다. 국내외의 모든 권력자들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으나 이 농민공동체는 그 땅과 운명을 같이 했다. 저들은 오가는 권력자들에 의해 많은 수난과 착취를 당하면서도 생산의 주체자로서 그 땅을 지켰다. 저들은 이스라엘의 얼이기도 했다.

도시는 여러 족속들이 살면서 점령한 그 나라의 문화가 이식되어 온 특수지대였다. 로마 당시에는 헬레니즘 문화가 도시를 지배했다. 그러나 그것은 농촌에 둘러싸인 고도(孤島)와도 같았다. 이 말은 농촌은 그런 이방 문화에 물들지 않았다는 뜻이다.25)셋째 마당 '갈릴래아로'를 참조. 예수가 도시로는 가지 않고 농촌지방만 순회한 것을 위와 같은 시각에서 보면 의미심장하다. 그는 그 땅의 참 주인들과만 상대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땅은 하느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 땅을 몸소 가꾸는 자는 하느님에게 위탁받고 경작하는 심부름꾼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농민 사이에 있는 지주란 둘 사이에 끼여든 착취자 이상이 아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길은 농민에게 땅이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바로 회개운동이며 '희년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민족적인 회개운동이다. 소유와 밀착되지 않은 회개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이미 세계는 기득권 위에 모든 질서를 수립하고 거대한 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 그것이 공염불이 되지 않고,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으며, 세계 전체를 회개하도록 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마당에서는 예수의 뒤를 따랐던 운동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 안병무전집3 |
갈릴래아의 예수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예수를 예수로 만든 힘의 담지자
머리말
   
첫째 마당 一 예수의 수수께끼
    예수를 향한 추구
    너무도 평범한 사람
    예수의 수수께끼
    전권을 이양받은 자
둘째 마당 一 예수의 시대상
    마카베오의 봉기와 하스몬왕권
    로마·헤로데 왕조시대
    헤로데왕가
    총독정치
    경제적 상황
셋째 마당 一 세례자 요한과 예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넷째 마당 一 갈릴래아로:예수의 소명
    석가와 공자와 예수
    갈릴래아로!
다섯째 마당 一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 나라 도래를 위한 투쟁
여섯째 마당 一 예수와 민중
    유다 사회의 민중
    예수가 만난 사람들
    오클로스
    하느님 나라와 민중
일곱째 마당 一 사탄과의 투쟁
    치유
    민중사건으로서의 기적
    반로마 민중운동의 한 예
여덟째 마당 一 예수와 여인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
    여인에 대한 예수의 관심
    예수를 움직인 여인들
아홉째 마당 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公) : 회개
    땅은 하느님의 것
    물(物)의 사유화에서 해방
    권력의 사유화로부터 해방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예수를 따라서
열째 마당 一 체제와의 충돌
    예수운동의 적대자들
    예루살렘세력
    예루살렘세력과의 대결
    정치권력과의 충돌
열한째 마당 一 수난사
    그리스도교와 십자가
    복음서와 예수의 수난
    예수의 수난의 맥락
    예수의 민중운동
    처형
열두째 마당 一 민중은 일어나다:부활이야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
    부활이야기 분석
    부활의 의미
    예수의 고난에서 찾은 부활의 현실
    우리의 수난, 우리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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