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는 마르코, 마태오, 루가를 공관서라고 명명하여 요한복음과 구별하는 것을 상식화하였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자료상으로 공관서와 다를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전제함으로써5)FeineᆞBöhmᆞKürnmel,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S. 132ff.에 이에 대한 논의가 자세히 소개된다. 예수사건을 밝히는 자료로서는 제외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정론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수난사만은 그 예외임을 인정한다.6)일반적으로 마르 14, 1 이하를 수난사라고 한다. 그러나 그 범위를 넓히는 학자들도 있다. 페슈는 8, 27 이하를 수난사로 보며(R. Pesch, Das Markus Evangelium, a.a.O., II/1), 셴크는 11, 1 이하를 수난사로 본다(W. Schenk, Der Passionsbtricht bei Markus. Untersuchungen zur Uberlieferungsgeschichte der Passionsberichten, Gütersroh, 1974). 사실상 수난사는 많은 점에서 공관서와 상통하며, 오히려 더 세밀한 서술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마당에서는 요한복음을 또 하나의 중요한 자료로 삼고 다른 복음서들과 비교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에 접근해 보려고 한다.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수난사를 특수자료로 보고 그것을 예수의 삶에 대한 기록과 구분하고 수난사를 예수의 삶과 단절시킨 채 그 의미를 찾아보려는 입장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한 입장에 선 성서학의 결과를 집약해보자.
현금의 신약학에서 결정적 위치에 있는 불트만과 디벨리우스(M. Dibelius)는 이른바 양식사학의 창시자들이다. 둘 다 복음서의 수난사를 다른 것과 구별된 특수전승자료로 본다. 그 중 디벨리우스는 수난사의 구성밀도로 보아 마르코 이전에 이미 오늘과 같은 골격의 전승이 갖춰져 있었다고 보고 있으며, 그것은 일일보도와 같은 성격을 띤 것으로 다른 보도에 비해 그 특수성이 있음을 강조한다.7)M. Dibelius, Die Formgeschichte des Evangelium, S. 57. 또한 디벨리우스는 이 책의 제1판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혔으나, 제2판과 제3판에서는 불트만의 영향을 받아 다른 주장을 편다. 이에 대해 불트만은 이것도 그외의 예수전승과 마찬가지로 단편적인 것들을 마르코가 편집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춘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는 수난사 문서의 분석결과에 따라 그것의 역사적 내용을 지적한다면 체포, 산헤드린과 빌라도에 의한 재판, 십자가에 끌려감, 십자가의 처형 그리고 죽음 등을 아주 간단하게 쓴 것이 원래의 보도였다고 추측한다.8)R. Bultmann,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S. 301f. 따라서 그 사이사이에 끼인 이야기들은 후에 발전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 자체에서는 어떠한 사실도 추려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복음서는 확대된 케리그마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예수사건의 역사성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불트만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린네만(Linnemann)은 수난사를 전승된 단편들이 마르코에 의해 철저히 편집되어 연결된 이야기로 보며, 마르코가 이것을 기적사화와 연결시킴으로써 십자가에 달린 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케리그마를 산출했다고 본다.9)E. Linnemann, Studien zur Passionsgeschichte, FRLANT, 102, Göttingen, 1970, S. 171. 이 말은 갈릴래아에서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던 바로 그가 처형되었기 때문에 비록 십자가에 달렸으나 하느님의 아들임이 입증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분석 자체의 공로를 인정하나 이들의 기본입장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케리그마가 먼저 있고, 이야기가 그것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건이 먼저 있었다. 그런데 저들이 케리그마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건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왜 예수의 사건이 케리그마로 이동한 것을 전제하면서도 사건 자체에 직결된 이야기는 묵살하려고 하는가? 왜 사건 자체의 증언과 케리그마가 긴장 관계를 이룬 채 평행적으로 전승될 가능성은 생각지 않는가?10)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신학사상』 제45집, 1984년 겨울호, 759면 이하.
이미 바울로에게서 본 것 같이 십자가의 케리그마 속에는 사건의 역사성이 배제되었다. 불트만은 케리그마의 배후를 묻는 것은 불신앙이라고까지 하여 역사에 대한 물음을 거부하는데, 그렇다면 수난의 이야기는 불신앙의 소산인가! 불트만은 그것을 확대된 케리그마라고 하나 수난사 자체에는 놀랍게도 케리그마적인 요소가 없다.11)불트만은 수난사를 수난예고의 확대로 보는 전제 아래서 전체의 편집구도에 케리그마가 깔려 있다고 본다("in erster Linie das Kerygma"). 또 수난사를 이루는 자료들은 따로 독립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것은 무리한 주장이다(R. Bultmann,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S. 297ff./ 한역본 348면 이하). 예수이야기는 확대된 케리그마가 아니다. 케리그마는 교권수호를 위해서 현실을 도피하고 탈역사화한 도그마인데 반하여 예수의 사실을 목격자의 입장에서 그대로 전승함으로써 예수의 삶을 모호하게 하려는 현상과 대결한 것이 예수의 이야기라고 본다.12)안병무, 「예수사건의 전승모체」, 앞의 책, 760면 이하.
민중이 전승한 예수이야기는 민중 자신이 예수와 더불어 일으킨 해방사건의 이야기이다. 민중과 예수의 만남에서 병에서 해방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병 특히 귀신들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을 예수는 사탄이 지배하는 낡은 세계와의 투쟁의 일환으로 보았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 쟁취 행위인 것이다.13)일곱째 마당 '사탄과의 투쟁'을 참조. 그렇다면 예수의 수난사는 바로 민중의 수난사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기적을 행하는 예수와 예수의 수난사를 연결한 것이 마르코에게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면 민중 자신의 구전과정에서 되었든 간에 그들을 단절시키는 해석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예수의 삶과 수난을 분리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런 구분 없이 그의 수난의 실상을 찾아보려고 한다.
예수는 왜 수난당했으며 마침내 처형되었는가? 불트만 등은 수난의 역사성을 묻지 않으므로 결국 십자가의 케리그마(가령 고전 1, 23~24)의 의미만을 남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십자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그의 삶과의 관계에서의 필연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14)"예수의 처형을 그의 행태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내적 결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예수의 처형은 그의 행태가 정치적인 것으로 오해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R. Bultmann, EXEGETICA, S. 453). 그는 『공관복음서 전승사』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고수하면서 예수를 세례자 요한과 같은 궤도에서 본다. E. Fuchs, O. Michel, O. Cullmann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코 기자는 거듭 이 원인을 밝히는데, 수난사에서는 성전숙청을 그 계기로 내세운다.15)마르 11, 18; 루가 19, 47. 단 마태오에는 이런 모티프가 없다. 마르코는 그것에 한정하지 않고 예수가 안식일에 한 손 오그라진 사람의 손을 펴게 한 것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당이 야합해서 그를 처형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고 한다(마르 3, 6). 이것은 마태오복음에서나 루가복음에서도 그대로 전승된다(루가 6, 11; 마태 12, 14). 이에 대해 요한은 예수가 라자로를 살린 사건을 예수가 죽음을 당하는 계기로 삼는다(요한 11,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