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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 오늘 다시 선생님의 이른바 '사건의 신학'의 성서해석학적 방법을 듣고 보니 그 발상이 매우 참신하고 인상적이군요. 선생님의 그러한 해석학은 서구 신학의 양식비평적 방법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들의 신학이 서 있는 토대 자체를 근저에서 뒤흔들어버린 해석학적 혁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와 민중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잘라 먹은 그 이야기를 서구신학에서는 배고픈 민중의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를 못하고—저들은 배고파보지 않았으므로—예수의 말만 붙들고 늘어진 데 대해서,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배고픈 민중과 일체가 된 예수사건의 현장으로 파악하셨단 말씀이지요. 거기서는 예수가 곧 민중이고 민중이 곧 예수여서, 그 양자가 서로 분리가 안 되는 완전한 일체인 것을 보신거지요.

선생님께서 '예수=민중'이라는 등식을 늘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1장 29절에 있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자주 드시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민중론을 매우 심오하게 드러내주는 성서구절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과 논쟁하면서 얘기했던 것인데, 그것은 아직 숙제예요. 사실 세례자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예수에게 그랬거든요. "이 예수가 바로 민중이다!"라고 내가 그랬더니, 몰트만은 "아니다!"라고 펄펄 뛰어요. 민중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속죄의 양=예수 그리스도와 민중을 일치(identify)시키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는 거지요. 여기서 몰트만과 내가 대결이 돼서 그가 두 번이나 내게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 문제에 대해 좀더 분명히 해 달라, 논문을 쓰든 편지로든 꼭 대답을 해 달라는 겁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몰트만과 그 문제를 놓고 얘기하게 될거예요.

몰트만과의 논쟁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가 민중이다'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민중이 예수다'라는 것은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러면 '예수는 메시아다'라고 하는 말은 맞는가,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이것은 말이 되는가, 산 예수를 그 무엇과 유비(analogie)시키면 되는가 하는 거예요. 사실 예수를 뭐든 다른 것으로 바꿔놓으면 안 맞아요.

"민중은 예수가 아니다"라고 몰트만이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가 벌써 민중을 알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는 말이에요. 민중을 알았다고 전제하는 것은 예수를 알았다고 전제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나는 민중을 모르면 예수를 모르고 예수를 모르면 민중을 모론 다고 보고 있어요. 내 입장은 그래요. 이것은 불트만의 논리와 같은 데 "하느님을 모르면 사람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면 하느님을 모른다"고 그가 그랬거든요. 나는 불트만의 이 논리를 민중의 경우에 적용시키고싶어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말을 오늘 우리 한국 땅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 왜 안 된다는 거지요?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돼요.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말은 종교적 의미로 쓴 말이 아닙니다. 그저 말 그대로 세상 죄지요. 이것은 비단 독재자의 죄만이 아니고, 그 독재자를 막지 못하는 사람들의 죄이기도 해요. 비리와 부정을 행하는 놈만의 죄가 아니고, 그 비리를 허용하는 자들의 죄도 돼요. 나는 죄를 별다른 것으로 보지 않아요. 정치경제적인 모순도 다 죄라고 보아요. 세상의 모순된 구조에서 오는 고통을 우리 모두가 다 받아야 될 터인데, 그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이 땅의 민중이 아닙니까? 감옥에 가고, 쫓겨나고, 매맞고, 굶주리고…… 이 모두가 그들이 당할 일입니까? 한국 사회가 잘못돼서 당하는 고통이 아닙니까? 이것을 짊어지고 가는 민중이 희생자 아닙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 아닙니까? 이 말을 바로 이 희생자들에게 못 붙일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자명한 것을 보려하지 않고, 무슨 신학적 관념 따위를 가지고 예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민중을 이미 알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바로 '죄'를,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을 종교적인 영역에만 국한시켜 해석하려는 고정관념 때문에 생겨나는 거지요.

내가 유학을 마치고 독일에서 돌아올 때 그림 한 장을 가지고 왔어요. 폴란드 화가인가, 루마니아 화가인가가 그린 건데, 노동자 한 사람이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무거워서 허리를 꾸부정하게 하고 걸어가는데, 배경에는 시커먼 도시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고, 그 십자가 위에 신부가 앉아서 졸고 있고, 배가 나온 회사 사장도 앉아 있고, 학자가 책을 읽고 있고, 젊은 남녀가 사랑을 하고 있고…… 그들이 모두 노동자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올라앉아 있어요. 그 무거운 십자가를 노동자가 지고 걸어가는 그림이었어요. 그 그림은 골고타로 걸어 가는 젊은 예수를 그린 것이었는데, 이 경우에는 쉽게 말하면 그가 노동자예요. 그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요. 그가 생산의 주체로서 노동하고, 모두가 그의 등에 앉아 먹고살아가요. 그 그림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독일에 있을 때 내 공부방에 내내 걸어두고 있던 것을 돌아오면서 가지고 왔는데, 그만 서남동 목사님에게 뺏기고 말았지……그 그림을 얻은 것이 1961년이었으니까 그때 이미 내가 민중의식을 가지고 있었던가봐요.

▶ 그 그림 이야기, 저는 선생님한데서 벌써 여러 번 들어요. 들을 때마다 감동적인데, 그 그림에 나타난 청년의 이미지가 바로 오늘날 민중의 이미지이고, 또한 그것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성서의 예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요.그렇게 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말이오? 그 청년이 세상 죄를 지고 가지 않소? 그것처럼 성서의 말씀과 일치하는 말이 또 어디에 있소?


|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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