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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첫 질문에 대해서 저는 아직도 생각중이에요. 확실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메시아가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물질적인 언어로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구원이란 말을 물질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에요. 전에도 정신적인 언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안에는 물질적인 해방, 기근이나 경제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담겨 있었어요. 결코 정신적인 언어와 물질적인 해방이 유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마저도 그렇다는 것이 이제 드러나고 있어요. 지금 우리는 물질적인 눈이 더 뜨였기 때문에 오히려 구약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대인은 민중을 볼 때도 막연한 민중이 아니라 물질적인 차원에서 민중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교회에서는 실제로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정신적인 언어를 쓰고 있어요. 반면에 순복음교회 같은 데서는 대담하게도 물질적인 언어로써 복음을 말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렇게 하는 동기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 교회에 모인 사람들의 물질적 욕심은 철두철미 개인적인 것인데 개인적인 물질적 고통을 집단적인 고통, 인류의 고통으로 증언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만 보아서 점점 더 개인적인 욕심의 노예가 되도록 하는 데에 잘못이 있어요. "너 이렇게 하면 잘산다. 너 이렇게 하면 부자가 된다"고만 말하지 말고 "너 혼자 잘살면 다른 사람들은 못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빈곤의 슬픔'에서 '우리의 빈곤의 슬픔'을 해결하는 데로 눈을 돌려야 해요. 이 개인이 집단의 문제, 인류의 문제로 눈을 돌리도록 설교해야 메시아적인 증언이 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모이는 사람 둘이, 나누어 먹는 예수공동체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 것을 움켜쥐는 개인주의로 떨어지게 되므로 사실은 그 교회가 교인들을 예수공동체와 이간시키게 돼요.

두 번째 문제는 아직 확실히 말할 수 없어요. 서 목사님이 할말을 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세대는 더 심하게 가난이란 걸 경험했어요. 나도 주로 간도에서 혹은 우리 집안에서 가난을 경험하면서 자랐어요. 간도의 농민들은 참 비참했어요. 그래서 가난을 웬만큼 설명해서는 충격을 안 받아요. 저도 대학 다닐 때 그리고 졸업하고 독일 가기 전까지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쫓아다녔어요. 이 한 사람의 운명을 위해서 내 인생을 여기서 끝마쳐도 좋다는 자세를 가졌어요. 너 한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질적으로 잘사는 것이지 계획적으로 사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살았어요. 나눔(sharing), 무소유, 동참이란 원칙을 실제로 몸으로 실현하려고 애썼어요. 한푼이라도 저금한다든지, 가구를 산다든지, 두 벌 옷을 마련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정이라는 것이 내게는 성립이 안 됐어요. 이런 경험이 내게 있어요.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은 예수에게서 비롯된 것이에요.

어릴 때 예수를 알기 전, 빈곤과 같은 인간의 비극적인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걸 뼈저리게 공적(公的)인 것으로, 집단적인 것으로 경험하게 된 것은 예수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예수의 사건을 통해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나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의 원경험(Urerfahrung)이고 원계시(Uroffenbarung)라고 할 수 있어요. 나는 이것을 떠날 수 없어요. 물론 가난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 혼자 가난한 것이 구원을 주지는 못해요. 나의 가난이 우리의 가난으로, 우리의 문제로 승화될 때 구원이 주어지는데 그걸 예수에게서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당시 교회의 속죄론도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우리라고 하는 것'을 점점 더 확실하게 해췄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내가 예수를 만나지 않았던들 밤낮 경험하는 일이 그리스도 사건이란 것을 모르고 그저 일상적인 사건인 줄만 알고 '에이 나도 돈이나 벌자'면서 여기서 빠져나오려고 했을거예요. 그것이 인류의 문제이며 나도 거기 연루되어 있다고 보는 자세, 그런 고통스런 민중의 현장에 대해 인간적인 척도로 재고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겸허하게 그 현장으로부터 아주 새로운 말을 들음으로써 내가 나를 수정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저도 민중현장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것을 증언할 수 없었을 거예요. 모름지기 서 목사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서 목사님은 그 말을 안 했어요. 그 말을 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하느님이라든지, 그리스도라든지, 예수라든지 하는 말들이 너무 흔해져서, 무의미해지고 값이 없어져서 당분간 이런 말들을 사용하지 말자는 본회퍼(D. Bonhoeffer) 이후의 일부 주장에 동의했는지 몰라요. 쉽게 '예수다' '그리스도 사건이다'라는 말을 써버리면, 민중현장을 배제하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 겁나서 애당초 그리스도 냄새를 내지 말자는 의도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내게도 그런 염려가 있어요. 그러나 나는 그래도 그 말은 해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서 목사님과 나 사이에는 그런 차이밖에 없을 겁니다. 그분과 나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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