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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현재까지 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주객도식에 매여 있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봅니다. 유신론이나 무신론 모두가 크게 잘못된 것은 신을 객관화시킨 데 있다고 봐요. 이것은 신을 관조(觀照)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관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실재가 신일 수 있을까? 여기서의 근본적인 잘못은 신을 세계나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대답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물음이고, 신은 대답이라는 생각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사람이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팽배하게 되니까 자동적으로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인간의 이념이나 제도를 뒷받침하는 어용 신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우주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처참한 파괴와 살상을 경험한 후 이러한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가 급전해서 비관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슈펭글러의 『서구 문명의 몰락』 등이 나왔는데 그것은 이성시대(理性時代)의 만가(晩歌)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 시대를 고민하던 일부 젊은 신학도들이 마침내 인간의 능력 위에 재건하려는 온갖 노력에 대해서 '아니!'(Nein)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종교성 위에 다시 형성되려는 신을 우상으로 선언했습니다. "하느님은 완전 타자이다!"(Gott ist ganz Anders)라는 외마디 단언이 저들의 뜻을 집약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위기에 대한 절규이자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백입니다. 저들은 파괴된 폐허에서 인간이 또다시 어떤 작업에 착수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게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며, 하느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한 저들을 위기신학파, 변증법적 신학파 또는 신정통 파라고 부르게 된 것은 위와 같은 시대적 성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중에 칼 바르트가 "하느님이 말씀했다"(Gott hat gesagt)를 새 출발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변증법적으로 정통주의로 돌아간 것을 의미합니다. 저들이 키에르케고르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키에르케고르야말로 헤겔적 신관(神觀)을 파괴하고 인간의 한계적 존재성을 철저히 의식하는 반면, 성서의 신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제창한 전형적인 그리스도교적 사상가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출발한 신학은 결코 그 시대의 대답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 시대야말로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대한 것인데, 신학은 그저 입을 다물고 기다리라고만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신을 새롭게 갈구하는 저들에게, 신에게 이를 수 있는 길을 오히려 단절해버린 것입니다. 저들은 신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어떤 접촉점도 말살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신은 있으나마나입니다. 이렇게 세계가 신의 독무대가 되면,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존재입니까?

바르트의 절대타자(絶對他者)로서의 신 선언은 신의 주권밀에 모든 것을 통전(通典)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서구인의 뿌리깊은 이분법적 도식을 심화했습니다. 신의 현실과 인간의 현실이 각기 독립되어 엄존하고 이것이 저것을, 저것이 이것을 설명하는 데 이용됐는데 바르트는 그들 사이의 가교를 폭파시켰을 뿐입니다. 이성은 인간의 종교적 표상도, 가교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말처럼 파괴해버려야 할 것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신을 사람이 미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게 했기 때문에 마침내 신은 죽었다 또는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이에 대해서 같은 충격에서 출발한 불트만은 신을 이성이나 종교적 표상과 일치시키는 것을 거부했으나 이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신앙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신앙의 대상이나, 그 신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는 인간의 이해의 능력을 고수했어요. 신앙이란 종교적 개념이지만 그는 존재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봤어요. 즉, 신앙이란 '인간은 관계적 존재다', '인간은 한계존재이다'라는 존재론의 종교적 언어라고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 안의 존재',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고 한 하이데거의 인간규정이 신학에서 인간에 대해 말하려는 바를 그대로 나타낸 가장 적절한 오늘의 언어라고 본 것이 불트만입니다.

그러나 불트만도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인간을 말하려면 신을 말해야 하고 신을 말하려고 하면 인간을 말해야 하는데, 신을 말할 수 없으니 인간을 말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이기도 하니까 결국 신을 말할 수 없다는 '25시적 상황'을 고백했습니다. 여기에 '신학은 곧 인간학이다' 혹은 '인간은 관계적 존재다'라는 그의 주장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의 존재론이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그의 신론도 주객도식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이 점에서도 동양적 사고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다고 보며, 성서를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양적 사고와 성서는 기본적으로 이질적 성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이분화하지 않는다는 데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동양에서는 진리, 불성(佛性), 도(道)라는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보편적 이성, 심리적인 경지, 자연적인 원리 등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분열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서에서 보면 신은 갈구되는 대상으로, 절규의 대상으로 나타나며, 아주 인격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처럼 변덕스럽기도 하고, 분노도 하며, 싸움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단 말이지요. 그런 모습으로 성서에 나타나기 때문에 후대 그리스도교에서 그것을 인격적인 유일신으로 또한 대상적 존재로 쉽게 받아들였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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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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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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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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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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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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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一민중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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