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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예수공동체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였다

▶ 그러면 맨 처음의 예수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글쎄요! 그것을 그대로 재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까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문제 되는 것은 마르코복음 16장 7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사자(使者)의 말은 갈릴래아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현시의 장이 갈릴래아라는 사실과 부합하며, 따라서 대다수의 예수의 민중은 갈릴래아에서 공동체를 시작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전통이 모름지기 마르코복음 전승에 많이 반영되어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런 전제를 가지고 지금까지 예수공동체의 뿌리를 갈릴래아의 예수사건에 두고 조명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는 상상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제에서 대략 다음과 같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등 중요한 제자(사도)들은 예루살렘에 정착하고 나머지 사람들(제자들)이 지도해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어떤 카리스마적 특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공동체는 그렇게 드러난 조직을 가진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윤리나 종교적 규율을 확정하여 통솔해가지 않았으며, 새크러먼트적 요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모였습니다. 모인 이유는 종말적 대망, 구체적으로 예수의 내림(來臨)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여서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곧 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를 '모이는 공동체'와 '보내는 공동체'로 구별할 수 있는데, 갈릴래아의 공동체는 보내는 교회였습니다. 특히 지도층 이 곳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모인 이 공동체에서 기사와 이적이 속출했습니다. 특히 귀신 쫓는 일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같은 일의 양면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거기서 어떤 계층성이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상은 예수와 민중이 식탁을 함께하는 얘기가 많은 것과 특히 마르코복음에 5천 명을 나누어 먹이는 예수 이야기(6, 30 이하)와 또 한번은 4천 명을 나누어 먹이는 이야기(8, 1 이하)가 기록된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5천 명을 나누어 먹이는 이야기에서 예수가 민중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불쌍하게 여겼다'고 한 것은 주목해야 될 말입니다. 이것은 저들이 예수 외에 어떤 지도자도 카리스마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로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초기에는 세례나 새크러먼트로서의 성찬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맨 먼저 부활의 날을 지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것은 종말적 대망과 깊은 관계가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서 또 다른 전통이 병행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입니다. 루가복음이 그것을 대변합니다. 루가는 사도행전 서두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1, 4)고 합니다. 그 대상은 사도입니다. 사도는 단순히 예수의 제자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12지파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리옷 사람 유다 대신 한 사람을 선거하여 '12'라는 수로 채우는 순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약속한 것은 예수의 재림 대신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의 성령강림 이 교회가 탄생한 날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강림 다음으로 일어난 것은 '말의 사건'입니다. 사도들이 말하니까 모든 정치나 지역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 말사건의 주역이 '갈릴래아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사도 2, 7). 즉 갈릴래아에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중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를 예수공동체의 본거지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은 민중이 종교 귀족사회 속에 뿌리를 내렸다는 말과 같습니다. 저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하느님의 특권의 계승자임을 주장한 셈입니다. 저들은 예수야말로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내기로 약속한 그분이라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야말로 참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위시한 유다 계율도 지키고 성전 예식도 그대로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들은 유다 지도층의 죄, 예수를 처형한 죄를 고발했습니다. 그러므로 박해도 받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들은 한곳에 모였습니다. 거기서 찬송과 기도, 또 증언을 하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제성을 띠지 않은, 자율적으로 나누어 먹고 사는 공동체가 됐습니다.

저들은 세례자 요한의 전통을 받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사도 2, 38). 그리고 예수의 나눔의 사건을 유월절과 결부시켜 새크러먼트화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도권을 높인 것이 지적돼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유다교의 사제제도를 대치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다교식으로 조직화됐습니다.

한편 바울로는 이방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섰으나 이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을 존중했습니다. 존중했을 뿐 아니라 비로소 그의 손에서 체계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까닭은 그야말로 자신의 고백대로 바리사이인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로는 서슴없이 예수의 민중을 "아브라함의 후손"(로마 4, 16; 갈라 3, 29)이라고 하고, 할례(割禮) 대신 믿음을 그 자리에 들여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바울로는 아브라함을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고 하고(로마 4, 12), 그리스도인은 그의 상속자들(갈라 3, 29)이라고 합니다. 또는 이 공동체를 하느님의 성전이라고도 합니다(고전 3, 16). 이러한 유다주의가 마침내 예수의 죽임당함을 제사종교의 속죄양과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론을 펴게 한 것입니다.


|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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