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를 위시해서 유다교의 죄이해를 살펴봅시다. 창세기에 나타난 죄이해는 역사적으로 훨씬 후대에 형성된 것이고 출애굽 사건이야말로 구약신앙의 출발점이므로 거기서부터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에서 출발하면 놀랍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관(罪觀)은 개인적인 죄가 아니라 군주체제의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죄를 문제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주체제(에집트)라는 구조악에 의해 착취당하고 노예화되는 현실을 죄로 보고, 이 죄에서 히브리를 해방시키는 데서 구약의 죄관은 출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구약에서 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이라는 대전제 아래서 이해됩니다.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이 계약은 율법이라는 형태로 응결되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두 가지 성격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맺은 집단적인 계약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구약의 여러 법전들에 여실히 드러나 있듯이 가진 자 혹은 지배계층이 약한 자들을 착취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가진 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어긴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죄이지요. 대표적인 율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도 집단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인 죄는 아주 부수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 남의 여자를 범한 사람이 죄인으로 취급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사실이 중심에 있지도 않고 부각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도피성(逃避城)을 마련해줌으로써 도망할 구멍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도 이 점이 반영되어 있어요. 동생을 죽인 카인에게 누구도 저주할 수 없도록 하고 그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구약에서의 근본적인 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통은 다윗왕조가 성립되면서부터 달라집니다. 다윗왕조 성립 후에 야훼종교가 소위 제사종교화되면서 그같은 제도적인 종교에 부합되느냐, 않느냐에 따라 죄가 규정되었기 때문에 죄에 관한 견해에 질적인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 것이 '정결법'과 '안식일법'입니다. 안식일 규정을 예로 들어봅시다. 원래 안식일 규정은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들과 피고용자들에게 7일마다 하루를 쉬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전종교가 되면서부터 안식일 자체를 거룩한 날로 정하여 안식일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죄는 성전의 모든 규율과 제도에 의해 규정되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자 가난한 자를 위한다는 것도 아주 형식적이고 간접적인 것이 되고 말았어요. 이를테면 우리가 모든 것을 성전에 바치면 성전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주니까 우리도 가난한 자를 돕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적선을 베풀라는 말이 계속 있었지만, 푼돈을 주는 것으로 자기 구원의 확률을 보다 더 높일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졌습니다.
라삐 종교, 즉 후기 유다교에 이르러서는 바리사이파가 중심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토라(오경)와 예언서가 엄격히 구분되었고 토라만이 경전으로 여겨졌는데, 바리사이파 중심의 후기 유다교에서는 예언서뿐 아니라 유명한 라삐들의 해석까지 포함하여 생활규율을 만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그 생활규율을 실천하는 운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방인 치하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주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국민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얀내우스 왕 이후 알렉산드라 여왕 때 그런 내용이 국가정책에 수용됨으로써, 다시 말해 바리사이파가 지배체제에 편입되면서부터 국민운동의 규정이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법률적 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바리사이파는 국민운동의 주도단체가 아니라 죄인을 색출하는 단체로 둔갑한 것이지요. 그래서 바리사이 체제의 의무규정을 지키면 의인이 되고, 반대로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지배체제에 의해 의인과 죄인이 구별되고, 죄라는 말은 반율법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죄인 취급을 받았던 창기, 세리, 병자들과 같은 특정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바리사이 체제에서는 과정은 어찌 되었든, 결과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이제까지 얘기한 것이 예수시대 직전까지의 죄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러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라는 후기 유다교의 사상은 율법이 있기에 죄가 있고 죄가 있기에 은혜가 있다는 바울로의 사상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