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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성서의 성령론의 성격

성서를 보면 하느님이 자기를 계시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장소나 양식(樣式)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전이나 교회 따위 또는 어떤 특수한 지명된 사람이나 일정한 시간의 한계에 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느님은 자기를 계시합니다. 이 말은 자연에도 역사에도 하느님의 기운이 뻗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흔적은 바울로에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로마서 8장입니다. 사람과 자연과 영이 한데 연계되어서, 우주적으로 역사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서 달리고 있다고 바울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디비디움'으로서의 인격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해방되면 역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에서 성령의 활동을 볼 수 있고 증거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격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서 성령은 하나의 사건(事件)이라고 바꾸어 생각하면 바른 이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사건의 연속입니다. 교회도 역사의 일부로서 연속되는 사건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영의 활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 일반이 모두 성령의 역사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긍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인식의 문제가 있습니다. 즉, 사람은 한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한계를 그어줄 때, 무엇과 대조하여 차이를 보여줄 때, 또는 어떤 구체적 기준을 제시할 때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이 세계의 창조자이지만 그의 활동을 이스라엘에 한정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어떤 족장과 같은 대표적 인물, 또는 어떤 특정한 사회계층을 위해서 활동하는 하느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히브리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느님의 기운의 영역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한 전형성(典型性)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사건이 그 기준이 됩니다. 역사 전반에 뻗치는 하느님의 기운이나 역사에 구체적으로 등장한 그리스도의 사건을 규범으로 할 때 성령은 사람의 인식영역에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곧 성령이라고 이해되는 것입니다. 즉, 신약에서는 이스라엘 대신 그리스도가 대치되고, 그를 통해서 하느님이 자기를 계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예수가 현존하지 않으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현존하는 양식이 바로 성령의 활동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구약적인 사고가 가미되어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대신에 하느님의 백성의 집단인 교회가 등장한 것입니다.

바울로는 다른 측면에서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바울로신학의 주제를 '율법과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령 고린토후서 3장 4절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바울로는 프뉴마를 그라마타(문자)와 대립시켜서 구원은 문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자'란 율법을 말하는 것인데, 그 뜻을 확대하면 기존 체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자―율법―기존체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해방될 때 사람은 구원됩니다. 그리고 이 해방시키는 기운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로는 헬레니스트처럼 영과 육을 대립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통해서 그는 이원론을 전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의 종말론적 성격을 밝히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살크스'와 율법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함으로써 프뉴마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기운이라는 것을 밝힘과 더불어 모든 기존적인 것의 종말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프뉴마는 자유라는 개념과 깊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프뉴마는 인간을 모든 기존적인 것에서 자유 하게 하는 하느님의 기운입니다. 나는 이 점에서 불트만의 영에 대한 이해가 옳다고 봅니다. 그는 바울로가 헬레니즘 세계의 이원론적인 영과 육,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라는 표현법을 도입했으나 그 기본 의도는 육과 영을 분리시키는 이원론을 고수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삶의 목표를 어떤 방향으로 설정해야 하는가를 말하기 위함이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바울로는 이 두 개념의 올바른 처리를 위해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몸'(soma)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는 육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확언한 반면에 영의 몸, 몸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몸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영과 몸을 구별할 수 없는 통전적인 인간(whole being)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로에 있어서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성령론과 종말론의 깊은 관련성입니다. 바울로의 종말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적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말론에 따라 성령론도 달라집니다. 종말론을 미래적 현상으로 볼 때는 성령은 하나의 종교현상으로 이해되고, 지금 실현되고 있다고 볼 때에는 해방의 사건으로 이해됩니다. 복음서들에도 성령은 종말과 직결됩니다. 마르코에 있어서는 종말의 현재성이 강조됩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과 예수가 귀신을 쫓는 사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르코에 있어서 예수가 영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성령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와 성령, 예수의 활동과 성령의 활동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해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점에서는 마태오도 같습니다. 그는 예수가 타계한 다음에 비로소 성령이 도래한다고 보았습니다. 부활 후에 갈릴래아 어느 산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가 비로소 성령의 강림을 약속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루가에서는, 기본적으로는 다른 복음서와 다르지 않으나, 성령론이 좀더 구체화됩니다. 예수의 때는 성령의 때가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의 역할과 성령의 역할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기간에도 성령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때는 오순절에 비로소 시작이 됩니다.


|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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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나의 체험 민중의 신학
변명
   
‘민중’을 발견하기까지
    간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 一민족과 그리스도의 발견
    민중신학의 뿌리
    독일 신학과 ‘역사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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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신학’과 신학을 위한 신학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
    ‘성문 밖’에 현존하는 예수
    민중의 염원과 민족통일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의 과제
민중의 책 성서
    한국 교회의 재래의 성서이해
    성서의 통일성 一그 민중신학적 의미
    예수一‘야훼만’을 지켜온 예언자 전통의 절정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
    민중신학의 컨텍스트는?
    성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할 뿐
    민중신학이 본 성서의 맥
민중 예수
    극복되어야 할 서구 신학의 그리스도론
    고난의 종 그리스도
    구원은 민중을 통해서 온다
    예수는 오늘의 민중현장에 계신다
    제도적 교회는 민중현장에 계신 그리스도를 포기
    민중사건은 예수사건이다
    ‘구원’은 물질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성령의 역할은 인류해방에 있다
민중의 하느님
    신이 죽었다?
    서구 신학의 신관(神觀)
    동양인의 신관
    성서는 신을 어떻게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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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이상一하느님 백성의 평등공동체
죄와 체제
    죄의 뿌리
    기존의 죄이해는 교권을 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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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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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은 구조악이다
    죄의 뿌리 一 공(公)의 사유화
민중해방과 성령사건
    이단으로 박해받은 성령운동
    이원론에 빠진 전통적인 성령 이해
    성서의 성령론의 성격
    성령은 민중사건이다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 과연 성서적인가
하느님 나라一민중의 나라
    하느님 나라 一 민중의 갈망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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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복음서의 제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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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제도화와 사제계급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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