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경우를 들면 마르코 8장에 있는 "너는 사탄이다. 물러가라"고 한 예수의 말을 마태오는 완전히 바꾸어 "시몬 바르요나, 너는 복이 있다. 네게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나도 네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울 터인데 죽음의 권세가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 17~18)라고 말한 것으로 해놓았습니다. 마태오는 예수가 제자들을 공격한 말을 거의 전부 삭제해버렸습니다. 루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오에서는, 예수는 최후로 갈릴래아에서 제자들과 만나 유명한 명령을 합니다. 루가는 베드로를 빈 무덤을 목격한 증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의 이름은 말하지 않으면서 제자들의 일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에게 나타났다고 하는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전부 마르코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르코보다 약 20년 후에 기록된 마태오, 루가에서는 이처럼 교회의 사도계급이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점점 미화되어가는 현상인 것입니다.
이로써 결론은 분명합니다. 고린토전서 15장 3절 이하에는 놀랍게도 예수의 십자가사건이 그처럼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고, 더구나 부활한 예수의 증인 가운데 여자의 이름은 나오지도 않아요. 아와는 대조적으로 마르코에서는 증인이 증인아 여자들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두 개의 확실한 전승모체(傳承母體)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교회를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보존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고 어떻게든지 생생한 예수사건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증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정열에 찬 민중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유약한, 비합리적인, 비계산적인 민중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도자'라고 하는 생각을 염두에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의 사건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보고 둘은 것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민중,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나 다만 침묵할 수 없는,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