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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마르코와 예수

마르코복음서에 따라서(그리고 좀 모자라는 부분은 공관복음서를 함께 보면서) 예수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의 가계(家系)는 다윗의 자손은 아닙니다. 루가와 마태오에서는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전제하고 무리하게 족보를 만들어 보이려 합니다만, 둘 다 전혀 맞지 않습니다. 마르코에는 전사(前史)라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예수의 신분이나 가문 같은 것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두 번만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만, 그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말한 것도 아니고 예수 자신이 말한 것도 아닙니다. 타인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었다'는 전제를 전혀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제 지적만하고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마르코복음 12장 35~37절이 중요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서양의 신학자들은 너무나도 그 점을 눈여겨보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돌하며, 문맥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즉 예수는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다윗 자신이 그(메시아)를 주(主)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이것은 예수가 성전 안에서 가르치면서 "왜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느냐?"라고 스스로 묻고 거기에 대해 답변한 말입니다. 즉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딱 잘라 단언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을 때에 예수의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하는 것은 깊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마르코복음에는 예수의 출생에 대해 베들레헴도 언급되지 않고, 예루살렘과의 관계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태어난 장소도 갈릴래아, 공생애가 시작된 장소도 갈릴래아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는 왕의 계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선재설(先在說)이 마르코복음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불트만도 말했지만, 가톨릭 신약성서학자인 그닐카(J. Gnilka)는 그가 쓴 방대한 주석서인 『마르코복음』(EKK)에서, 마르코복음에는 선재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신적인 존재였다는 생각을 마르코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를 보통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미 그러한 전제를 가지고 있었던 시대에(필립비서 등에서) 그것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입니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현장, 예수가 살았던 현장은 농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래아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예수가 도시에 들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근거로서 예수의 말 자체가 농촌사회의 언어입니다. 예수의 말이 전부 그렇습니다. 예수에게는 헬레니즘적 요소가 거의 없어요. 예수는 이 농촌에서 저 농촌으로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오직 마르코만이 예수는 갈릴래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예수는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말하고 있어요. 그 말을 해야 할 장소가 아닌 데서도 "갈릴래아, 갈릴래아"를 되풀이하고 있는 곳이 모두 합쳐서 열아홉 군데나 됩니다. 갈릴래아의 농촌이 예수의 활동현장이었고, 당시에 도시는 이미 헬레니즘화되어 있었습니다. 도시는 로마 식민지의 중심지로서 헬레니즘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습관마저 다른 도시에 대해서 예수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오직 갈릴래아가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공생애를 시작했고, 중요한 일을 모두 거기에서 행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르코복음서 14장 28절과 그와 관련되는 16장 7절에, 부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지만 우리들이 다시 모여 출발하는 장소는 갈릴래아라고 하는 "갈릴래아에서 만나자"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가 아닙니다. 죽임당한 장소는 예루살렘이었어도 실제로 살았던 장소, 새롭게 출발하는 장소는 갈릴래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 예수는 갈릴래아 중에서도 이름없는 '나자렛'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한국의 갈릴래아는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한국의 갈릴래아는 '광주'라고 대답합니다. '제주도'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나는 만주의 간도에서 자랐습니다. 고향에서 내쫓긴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이 잊혀지지 않아서 우리들은 또 간도야말로 전형적인 한국의 갈릴래아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럼 일본의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삿포로일까요? 어쨌든 갈릴래아는 동경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네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코이노니아의 대상,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누구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나는 여러 번 논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예수의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은 그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 그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죄인이라고 불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말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예수가 말한 그대로지요.


| 안병무전집2 |
민중신학을 말한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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