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에 항상 긴장이 있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테지요. 다윗은 남유다를 폭력으로 점령하고 왕의 자리에 앉아 계속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사울이 왕으로 있던 북이스라엘은 필리스트와 싸우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결국 다윗은 북이스라엘마저 집어삼켜 소위 이스라엘 군주국을 세웠습니다. 다윗은 간교해서 각료의 절반은 북이스라엘, 나머지 절반은 남유다 출신자를 기용하고, 자기 자신은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유다도 이스라엘도 아닌 제3의 장소인 예루살렘, 즉 부레스데라는 종족의 도성이었던 곳을 점령해서 개인 사유지로 삼아 거기에 궁전을 짓고, 그때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해왔다고 하는 신의 법궤를 찾아다가 예루살렘에 안치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때부터 야훼는 신전의 포로가 되어 오직 다윗왕조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야훼신앙이 타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윗 이전의 야훼는 신전의 신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신이었습니다.
일찍이 폰 라트의 구약성서신학에서 중요한 사실이 지적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것은 '히브리'라고 하는 말이 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어느 사회계층의 이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히브리'란 당시 중근동 일대에 흩어져 있던 천민계층의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히브리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예를 들면, 에집트에서도 히브리를 토벌한 보고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만이 히브리였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가나안 지대에도 물론 히브리는 있었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땅에는 적어도 30개 내지 31개의 군주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군주국의 군주들이 그 땅의 사람들을 전부 농노로 부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에집트에서 탈출해 나온 히브리가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노예 취급을 당하던 히브리가 봉기하여 군주세력을 물리치고 부족동맹을 결성한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모체인 것입니다.
이 부족동맹 이스라엘은 군주제도에 반대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인간을 절대로 왕으로 삼지 않는다", "인간 위에 인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시대가 이른바 사사(士師)시대인 것입니다. 사사시대에는 왕은 없고 그때그때 문제가 일어나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그것은 농민일 수도, 목자일 수도 있었습니다)을 중십으로 뭉쳐서 싸웠고, 싸움이 끝나면 농민은 농민으로 돌아가는, 군사적이라기보다는 민중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종족이 모여 있었는데도 어떻게 그와 같은 것이 가능했을까? 그들을 '유기적 운명체'로 만든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야훼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른바 '오직 야훼만'(Mono-Yahwism)이라고 하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서양 학자들은 종교사학적으로 보아, 모노 야휘즘은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야훼만이 진정한 신이다'라고 외친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노 야휘즘은, '인간 위에 인간이 절대로 주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신이신 야훼만이 우리들을 다스리신다'라고 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것은 전제군주적인 세력에 대한 저항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권, 민중의 인권을 지키고자할 때 우리들은 모노 야휘즘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불교 등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이라고 하는 따위의 주장은 아닙니다. 모노 야휘즘은 '바실레이아 루 데우'(신의 왕국) 앞에는 여하한 세력도 절대로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고 하는 선언과 일치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자기네들 중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가를 놓고 다 툴 때에, "너희들은 이방의 권력처럼 인민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이 사람 위에 서려고 한다면 사람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예수는 말했는데, 이 예수의 말이 정치적인 발언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방의'라고 했을 때 그것은 '로마'를 가리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노 야휘즘은 권력을 독점하고 군림하는 것을 허락치 않지요.
그러므로 예수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강조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권력의 영원한 종언,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온다고 하는 것, 그때에 비로소 유기적 운명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내용은, 당시의 사회에서 소위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 편에 섰다고 하는 것, 민중의 현장 갈릴래아를 무대로 선택한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루살렘으로 진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