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내가 줄 떡은 곧 나의 살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6장 51절에 있는 예수의 말씀입니다. 이 말 자체는 청중에게 큰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sarks)이라는 것은 '정신' 혹은 '영'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우리가 사람을 천박한 자로 부를 때 '고깃덩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게 유다 사회나 헬레니즘 사회에서 가장 멸시하는 개념입니다. 특히 이원론이 발달한 헬레니즘 사회, 그중에서도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살'과 '영'은 합쳐져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영'이 '살'에서 해방될 때에만 참구원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한 판국에 이러한 예수의 말은 듣는 자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충격과 한편으로는 분노마저 지닌 청중에게 예수는 다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이요,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이 대목(요한 6, 51~59)에서 하늘, 영원, 생명, 참삶 등과 같은 말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척 자연스럽게 나열되고 있는 것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이러한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은 역사적 예수에게 별반 관심을 갖지 않는 복음서로 알려져 있고, 공관복음서와 구별되어왔습니다. 역사적 예수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것 일반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과 통합니다. 따라서 역사의 예수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학자들, 이른바 케리그마주의자들이 요한복음을 그들 신학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스승인 불트만에게 역사의 예수를 묻지 않으면 영지주의같이 가현설(假顯說, Docetism : 가현설은 예수가 영의 세계에서 온 이였으므로, 육과 혼합하여 생기는 인간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비록 세상에 나타났었다 하더라도 육신을 쓴 사람처럼 보일 뿐 사실상 육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항거하여 유명해진 케제만(Käsemann)마저도, 요한복음은 인간적인 예수를 말한 것이 아니고 시종일관 천상적(天上的)인 존재를 말하므로 '순진한 가현설'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정말 요한복음서 편자는 역사적 사실에 관심이 없었는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분명히 요한복음서는 공관서와 다르게 예수를 보고 그 시대를 보고 있습니다만, 역시 그도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나는 요한복음을 민중의 입장에서 해석해보려고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먼 길을 돌아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