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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구약성서는 창세기를 맨 앞에 두었다. 사실의 서열로 볼 때는 옳다. 그러나 자료상으로 보면 출애굽사건이 창세설화보다 훨씬 먼저 서술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설화가 훨씬 늦게 성립되었음을 말한다.

처음 책은 '창세기'라고 했으나 실은 2장까지가 창조에 관한 것이고, 그 다음 3~11장까지는 인간의 타락 또는 범죄사이다.

창조설화가 두 가지 자료, 즉 P자료3)Priest(사제)의 P자.와 J자료4)J는 하느님을 Jahwe로 부르는 계파.로 구분된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P자료는 신학적으로 정연하게 서술된 데 대해서 J자료는 민담적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산만하면서 동시에 직접적이며 포괄적이다. P자료에서는 창조 이전의 상태를 혼돈이라고 한다. 이 혼돈이 하느님의 창조행위의 장(場)이다. 모든 것이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 있다. 이 '말씀'으로 먼저 빛(광명)이 있게 한 다음에 질서를 만들어나간다. 땅과 물, 밤과 낮이 구분되고 그리고 땅에서 풀이 나고 바다에 고기가 있게 하고 땅 위에 짐승들을 창조한다. 그리고 창조의 끝이면서 창조행위의 절정으로서 사람(아담)을 만든다.5)폰 라트(Von Rad), 『구약신학』, 143면 이하. 아담은 '아다마'(Adama), 즉 흙이란 말에서 왔다. 흙에 하느님의 숨(Ruach)을 불어넣어 사람이 됐다(창세 1, 7). 다른 것들은 그저 있으라고 한 데 대해서 인간창조에는 '숙고'가 앞서고 창조자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함으로써, 사람도 피조물임에는 틀림없으나 다른 생물과 구별된 존재로 창조됐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의 형상대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용어상으로 보면 아담이 자기 형상대로 '셋'을 낳았다(창세 5, 3)는 그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신학적 사변을 거치는 동안 문제가 되어서 시편 등에는 하느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했다거나 또는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혔다(시편 8, 5)고 표현했다.6)침멀리, 앞의 책, 42면 이하.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형태상이냐 본질상이냐하는 따위의 논의가 아니고, 포이어바흐(L. Feuerbach, 1804~1872년) 등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자기 형상(요청)대로 하느님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 두 자료의 편자들이 말하려는 내용을 알 수 있다. 곧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창조자는 이 세계 안의 피조물을 개발하고 다스릴 권한을 사람에게 주었다는 뜻에서 그 존엄성이 강조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적 존재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한다.

J편자는 우주창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이 땅을 가꾸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보금자리로 동산을 창조하였다고 서술한다. J편자는 사람에게 초점을 둔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과 그것에 대한 대답을 시도한다.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 갖추어졌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모든 것을 마음껏 향유할 자유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제한이 있다. 그것은 선과 악을 식별할 수 있는 나무의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 히브리에서 선악의 구별이란 윤리적 식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7)폰 라트, 『창세기: 국제주석』, 한국신학연구소, 1981, 163면 이하. 그런데 그것을 따먹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금하는 신의 뜻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마저도 부여받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로써 사람(아담)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자명해진다. 그것은 자유와 금령, 무한과 유한의 긴장관계 속에서 언제나 결단을 해야만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른바 에덴동산은 유다인을 위시한 인간들이 그리워하는 낙원의 상징이 되었다. 에덴을 일정한 지역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무의미하다. 에덴(eden)이라는 단어의 뜻은 '환희'이다. 그러나 예언자 이사야는 이것을 신화의 개념으로 쓴다. 그러므로 황폐한 시온을 에덴으로, 또는 야훼의 동산으로 만들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원적인 내용을 덧붙여 '즐거움'과 '흥겨움' 즉 환희가 넘치리라고 한다(이사 5, 3).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생각해낸 유토피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유토피아 사상이나 이른바 낙원복귀 사상은 양자 모두 지금의 삶의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불안 내지는 체념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같다. 그러나 유토피아 건설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유토피이라는 말의 발단은 토머스 모어(T. More)의 『유토피아』라는 소설(1516년)이다. 그 선구로서는 플라톤(Platon)의 『폴리테이아』를 지적할 수 있는데, 모어 이후에 캄파넬라(Th. Campanella)의 『태양의 도시』(1623년), 베이컨(E. Bacon)의 『신(新) 아틀란티스 섬』(Nova Atland) 등이 정치형태, 경제체제, 종교적 독재 또는 기술 발달 등에 의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이상세계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큰 착오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한계측정과 악의 힘에 대한 바른 계산을 못한 점이다. 그러기에 환상이다. 그 환상이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사실상 깨어졌다. 공산세계도 그런 류의 것으로 현재 인구의 상당수를 그 영향권 안에 두고 있으나 이미 궁극적인 경지인 공산세계에 대한 신념은 깨어지고 오히려 역전되고 있는 판이다. 이에 비하여 창세설화의 주제는 철저히 창조주다. 그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지 사람이 구축한 세계가 아니다.

창세설화에서 우주의 기원이나 그 성립의 과정을 묻는 것은 덧없는 수고다. 하느님이 창조주라는 것은 우주관의 설명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신앙고백적 대답이다. 따라서 창세설화를 진화론의 교본으로 보려는 노력도 무의미하다. 그것은 진화론을 말하려 하거나 반대로 그것을 반증하는 것도 아니다. 우주창조의 날수인 '6'이라는 숫자를 시간적 단위로 보고 그것의 가능성에 대해서 시비하거나, 더 나아가서 우주의 기원은 6천 년이라는 고집과 그것에 반발하므로 덧 없는 대립을 거듭한 과거의 과오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성서에서 제시하는 숫자는 많은 경우 상징적인 표시이지 십진법에 의한 또는 시계바늘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창세설화의 숫자는 확실히 그렇다. 수는 계산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나 심미적인 표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인간을 하루 사이에 흙으로 빚었다는 서술을 비과학적이라고 속단하는 잘못에 빠져서도 안 된다. 여기서의 '하루'가 하루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그것이 진화론을 봉쇄하는 것은 아니며, 또 흙으로 빚었다는 서술에서 수공업자의 작품과정을 연상해서도 안 된다. 이미 지적했듯이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를 창조자와 인간의 관계의 아날로기아(analogia)로 보면 된다. 유다인들은 그렇게 이해했고 바울로도 그랬다(로마 9, 19~21). 그것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이지 과학적으로 변증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실존주의자 까뮈(A. Camus, 1913~1960년)가 인간을 '사물의 신중한 무관심' 속에 고립됐다고 본 것은 신앙도 아니며 과학적 입장도 아니다. 생물학자 모노(Jaques Monod, 1910~1976년)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그의 책에서, 생물계에는 우연적인 현상이 연발되며 거기에서는 어떤 계획성도 목적 추구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창조신앙을 거부하는데, 바로 이 우연의 연발현상에서 창조의지를 신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과학자의 한계를 넘고 있다.

참고문헌

김이곤,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한국신학연구소, 1980).

트리블, P., 「아담과 이브 : 창세기 2~:Po)에 대한 재조명」, 이우정 편, 『여성들을 위한 신학』(한국신학연구소, 1985).

폰 라트, G., 『창세기』, b. 잘못 출발된 역사(한국신학연구소, 1981).

서인석, 『한 처음의 이야기 : 창세기 1~11장의 기호학적 설화분석』(성바오로출판사, 1982).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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