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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제3부
새로운 개벽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예수의 시대에 대한 자료로서는 우선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이 있다. 그 밖의 중요한 것으로는 마카베오서가 있고, 요세푸스(Josephus, A.D. 37~95년경)의 역사책들이 있으며, 라삐(Rabbi) 문서와 쿰란(Qumran) 문서 등이 있다. 요세푸스의 글 중 『유다전쟁사』(A.D. 75~76년)는 예수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되는 안티오쿠스 4세(Antiochus, 일명 Epiphanes), (B.C. 175~164년) 때부터 A.D. 73년, 즉 예루살렘과 유다가 초토화된 직후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저자 요세푸스 자신이 한동안 반(反)로마투쟁에 가담했다가 변절하여 로마제국 편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안목에서 참고해야 한다.

알렉산더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56~323년)이 마케도니아(Macedonia)에서 원정군을 일으켜 아시아, 유럽 그리고 에집트까지 정복함으로써 그리스 문화와 고대 중동의 사상, 특히 종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문화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을 헬레니즘 문화라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30세에 요절함으로써 그의 현지군 사령관들이 할거하여 권력다툼 끝에 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셀류커스(Seleukus)와 에집트 지역을 중심으로 한 프톨레매오(Ptolemäer)로 나누고 각기 왕국을 만들었다.

이로부터 이 두 세력 밑에 이스라엘은 정치만이 아니라 종교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는데, 위에서 말한 안티오쿠스 4세(셀류커스왕) 때가 절정기이다. 그는 유다교의 박멸을 정책화해서 율법을 배우는 것을 엄금하고 성전을 침범하여 제우스 신단을 세우고, 그 지역에 군본부(Akra)를 세웠다(마카상 1, 20 이하). 이렇게 성역을 더럽히는 한편 헬레니즘 문화의 전파로 디오니소스 축제, 올림픽 행사 등을 도입했다. 이를 참다 못해 일으킨 것이 마카베오 독립전쟁으로(B.C. 162년경), 그 주동세력은 바로 마카베오 가(家)이다. 그로부터 20년간의 마카베오 독립전쟁으로 마침내 B.C. 142년에 445년간의 망국(亡國)의 슬픔을 씻고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흥제국인 로마제국에 점령당하여 다시 나라를 잃고, 로마의 괴뢰인 헤로데 가(家)가 왕권을 차지한 후(B.C. 37년)부터는 로마―헤로데 세력 밑에서 시달리다가 이른바 유다전쟁(A.D. 66~70년)을 일으키게 되고 마침내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최후가 오게 된 것이다. 특히 헤로데가 시대가 바로 예수와 초대 교회의 현장인데, 로마총독이 유다 지방을 직접 지배함으로써 결국 예수가 로마제국에 의해서 처형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상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에게 큰 위험이 된 것은 주권침해 외에도 두 가지를 더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 착취요, 또 하나는 문화적인 것으로써 줄곧 헬레니즘의 침투로 인해 이스라엘 신앙과 전통사회에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른바 이스라엘의 지도층은 어떻게 대응했으며 민중들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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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제 오니아스 3세(Onias III)가 안티오쿠스 4세(Antiochus IV, B.C. 187~175년)의 폭정에 반기를 들었으나, 그의 동생 야손(Jason)이 반역하여 예루살렘을 위시한 유다를 헬레니즘화하는 데 앞장 설 것을 약속하고 막대한 뇌물까지 바침으로써 오니아스가 가지고 있던 대사제직을 빼앗아버렸다. 이렇게 권력과 돈 앞에 더러워진 대사제직은 비(非)사제족인 메넬라우스(Menelaus B.C. 171~161년)가 더 많은 돈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사제계층은 부패해갔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은 어용세력으로 반(反)이스라엘적 헬레니즘화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이 무렵 예루살렘을 떠난 노(老)사제 마따디아(Mattathias)가 이방적인 축제를 준비하는 셀류커스 정부의 관원(官員)을 죽이고 자신의 다섯 아들과 입산하면서 동지를 규합했다. 마카베오서는 그때의 마따디아의 절규로서, "아! 슬프다……아름답고 찬란하던 우리의 성소는 이제 폐허가 되었고 이방인의 손에 더럽혀 죽었구나. 이제 더 살아 무엇하겠느냐?"(마카상 2, 7~13)고 서술한다.

이때 이미 한 신앙의 그룹이 형성돼 있었다. 저들은 이스라엘 운명이 그렇게 기우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생활에서 스스로 율법을 엄격히 실천할 뿐 아니라 그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탈(脫)예루살렘하여 공동생활을 한 이른바 '경건한 자'들이다. 다니엘서에 저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민중의 지도자들은 민중을 깨우쳐주려다가 한 때는 칼에 맞아 죽기도 하고, 불에 타죽거나 귀양가거나 재산을 몰수당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거꾸러져도 도우려는 사람은 별로 없고 걸고 넘어뜨리려는 자들만이 득실거릴 것이다. 정한 때가 되어 마지막이 올 때까지 지도자들이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단련을 받아 깨끗해지고 빛나리라(다니 2, 33~35).

이상에서 '민중의 지도자'혹은 단순히 '지도자'라고 한 것이 바로 저들이다. 저들은 외롭게 스스로를 지키려고만하지 않고 민중을 인도하고 그들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마카베오서는 안티오쿠스 4 세의 박해를 서술한 다음에, "그러나 이에 꺾이지 않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결심한 이스라엘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게 받기를 결심하였고, 사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마카상 1, 62~63)고 한다. 안티오쿠스 4세의 군대는 광야에 나간 저 '경건한 무리'를 계획적으로 안식일에 습격했다. 그러나 저들은 안식일법을 지키기 위해서 끝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죽어갔는데, 그 수가 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마카상 2, 42).

이들을 하시딤(Chasidim)이라고 한다. 저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마따디아가 필기했을 때 자신들을 깨끗이 지킨다는 백이숙제(伯夷叔齊)적 자세에서 뛰쳐나와 이스라엘 해방전쟁에 가담하여 그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들의 열정과 민중들의 투쟁으로 삽시간에 잃었던 예루살렘을 되찾고 외인(外人)들에 의해 더럽혀진 정권을 되찾아 8일간의 정결례를 드릴 수 있었다(B.C. 164년).

그런데 권력을 장악한 마카베오 가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싸움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지휘권을 받은 요나단(Jonathan)은 이방의 왕에게서 대사제복과 금관을 받은 것을 영광으로 안 것이다(B.C. 152년). 하시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저들과 결 별했다. 저들은 마카베오 가와의 결별과 동시에 다시 탈예루살렘했다.

후에 에쎄네파(Essener)로 알려진 그룹이 바로 이들의 맥락을 이은 후속인들이다. 하시딤이 하시드(Chasid, 자비경건)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처럼 에쎄네도 히브리어 하시드에서 온 것이다. 저들의 생활강령은 무소유, 정결, 기도, 토라 연구 그리고 노동이었다. 저들은 철저한 원시공산공동체로서 유명하였으며, 엄격한 규율을 가진 일종의 비밀공동체였다. 저들의 희망은 하느님의 주권의 실현인데 그것은 외세를 배격하는데 국한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한자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빼앗아 정화하는 일을 당면과제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 하시딤에 가담한 자 중에 현실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피적인 형태를 비판하고 현장에서 이스라엘의 정신교육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민중의 지도자로 나섰는데 바리사이파(Pharisäer)가 바로 그들이다. 저들의 사상적 뿌리는 하시딤에 있었다. 그런데 저들은 율법의 생활화운동을 위해서 율법을 규율화하여 민중 속에 파고들려고 하였다. 초기에 저들의 운동은 순수했고 특히 수공업자 이상의 계층에게 환영을 받았다. 저들의 운동이 율법의 생활화에 있었으므로 자동적으로 반헬레니즘운동이 됐으며 집권자를 제어하는 일종의 세력권을 형성했다. 그러므로 마카베오 가와 긴장관계에 있다가 얀내우스왕(Jannäus, B.C. 103~76년) 때는 충돌이 생겨 6년 이상의 유혈사태까지 유발하게 되었다. 이 사태의 결과 얀내우스는 그들의 세력에 항복하고 그의 임종시에 왕위를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Alexandra, B.C. 76~67년)에게 이양하면서 바리사이파와의 화해와 제휴를 유언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알렉산드라 여왕 때부터 야(野)의 입장에서 여권(與圈)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바리사이파의 체질은 달라졌다. 저들은 이제 민중의 편에 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책과 법질서를 고수하기 위하여 민중의 감시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저들이 만든 율법에 의한 제도는 처음부터 반민중적이었다. 그들은 율법제정에 있어서 어느 수준 아래에 있는 불우한 계층을 고려에 넣지 않았다. 총 613항으로 된 방대한 생활규제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안식일법은 39개 항이나 된다. 이 규제를 다 지키려면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과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사람, 그리고 하루의 품삯도 제대로 벌 수 없어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계층은 이 법을 지킬 수 없다. 날품팔이, 목동, 뱃사람, 떠돌이 그리고 창기 따위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또 저들은 사제계층에 국한되었던 정결법마저 일반화하여 심지어 음식을 먹을 때 손 씻는 법까지 규제했는데, 이것도 생존에 위협을 받으며 사는 계층, 무엇보다도 병자들 중 특히 저들이 부정하다고 규정한 병에 걸린 사람은 바로 그 병 때문에 범법자가 되어야 했다. 이렇게 범법하면 모두 죄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실상 죄인이란 바로 바리사이파가 설정한 체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저들의 생활규율은 불우한 계층을 옭아매는 법망이었다.

복음서에는 바리사이파가 자주 언급된다. 저들이 예수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들은 이미 처음의 동기를 잃어버렸다. 누구보다도 로마의 앞잡이며 헬레니스트인 헤로데 가를 증오해야 할 그들인데, 헤로데당(Herodianer)과 야합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는 보도가 두 번이나 언급된 것을 보면(마르 3, 612, 13), 저들은 적어도 복음서 기자들의 눈에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는 증거이다. 복음서 기자만이 아니다.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뿐만 아니라 에쎄네파도 저들을 '위선자', '배신자', '압살롬의 후예'라고 비판하고 있다(하바꾹 주석).

 

젤롯당(Zeloten) : 이에 대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민중운동이 있었다. 그들을 젤롯당이라고 한다. 젤로스(Zelos)란 '정열'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반(反)헤로데 -로마 봉기에 앞장서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희생제물이 됐는데, 그 이름에 나타난 대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싸운집단이다. 반로마 운동가와 집단이 있어왔지만, 젤롯당이 정식으로 출발한 것은 로마제국이 세금징수를 위한 호구조사를 시작한 때이다(A.D. 6년, 요세푸스).

에드기아의 아들 유다스(Judas)와 바리사이파 출신 사독(Zadok)이 이끄는 민중은, 하느님의 주권을 외치며 십자가를 지라는 구호 밀에서 불같이 봉기하여 갈릴래아의 세포리스 성(城)을 점령하고 동굴을 병기고로 이용할 정도로 강력했다. 저들의 당면목표는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에 항거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로마군에 패하여 무려 2천 명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첫 희생자를 낳았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은 집요했으며 산발적인 장기전에 들어섰는데, 예수 당시에는 갈릴래아 일대가 그들의 웅거지였다. 이러한 그들의 혈투는 A.D. 66~70년의 유다전쟁을 유발했고, 마침내 예루살렘의 결전으로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이미 국권은 물론 이스라엘이 모두 추방되는 과정에서, 저들은 갈릴래아 산악지대 도처에 요새를 만들고 저항해왔는데, A.D. 132~135년 시메온 바 코스바(Simeon bar Kosba, 별의 아들)가 이끄는 부대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가 산화한 마지막 혈투는 유명하다. 그것은 잿더미에서 마지막으로 반짝하고 쓰러진 불꽃과도 같았다.

요세푸스는 저들을 강도(lestai)라고불렀다. 이것은 로마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젤롯당을 바리사이파와 비교하여, 사상적으로는 같으나 자유에 대한 희구와 하느님 주권의 유일성에 대한 집념에서는 한층 월등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저들이 하느님의 정신영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에쎄네파, 바리사이파도 그 점에서는 같으나 하시딤처럼 민족해방을 위해 무기를 들고 격전에 참여한 점에서는 유일한 하시딤의 재현집단이었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그 구성원의 사회성이다. 요세푸스는 저들은 악행을 저지르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강도떼를 구성하여 가족들도 전원 가담시켰다고 하며, 갈릴래아 지방은 그런 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하는데, 이로써 그 사회성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산으로 도피한 자란 가난에 찌든 자, 도망친 노예, 탈영병, 거덜난 농부, 그리고 범죄자들로서 더 이상 그 체제하에서 살 수 없게 된 자들이다(헹겔[M. Hengel], 크라이시그[H. Kreissig]). 저들이 마지막 단계에 예루살렘을 점거했을 때 우선 관청의 채무장부를 전부 소각해버렸다는 기록(요세푸스)은 이 같은 사실을 충분히 입증한다.

이상의 계보에서 공통된 종교 내지 역사관으로는 묵시문학적 신념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장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등장했다. 그러므로 예수를 이해하는 데는 언제나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전제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황성규, 「고대 이스라엘의 야훼신앙과 이방인의 땅 갈릴리」, 『신학연구』 제32호(1991. 가을).

라이케, B., 『신약성서시대사』(한국신학연구소, 986).

레셀, D. S., 임태수 역, 『신구약중간사』(컨콜디아사, 1977).

문희석, 「예수시대의 종교적 상황」, 『기독교사상』 제222호(1976. 12).

황성규, 「예수시대의 정치상황」, 『기독교사상』 제222호(1976. 12).

로제, E., 박창건 역, 『신약성서배경사』(대한기독교출판사, 984).

말본, E., 「갈릴래아와 예루살렘」. 『신학사상』 제42호(1983. 가을).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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