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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갈라 4, 1- 10)

바울로는 이미 언급한 대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관계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제부터 관계를 세분하여 그때 그때마다 인간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종과 아들 : 바울로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너희는 성인 된 아들이 되었는데 왜 종 노릇하는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하느냐?"고 준엄하게 책망한다. 너는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지금은 성인 된 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자유롭다. 그런데 왜 스스로 종의 멍에를 다시 메려느냐?

종이나 아들은 관계적인 존재다. 홀로 종일 수도 없으며, 홀로 아들일 수도 없다. 종의 부자유(不自由)라는 것도 그 주인과의 관계 안에서의 현실이요, 아들의 자유라는 것도 그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만 주어지는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둘 다 조건적 존재이며 부자유도 자유도 모두 조건적이다. 둘 다 '무엇 앞에서의 존재'라는 것은 같으나 '어떠한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비록 같은 여건, 같은 일을 하여도 질적으로 달라진다.

한 사람이 종과 아들을 가졌다. 이 둘은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종은 어떤 명령을 받았을 때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 동기나 목적을 모르고 단지 명령받은 일 자체에만 관련한다. 그러나 아들은 단순히 무엇이 명령되었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가 무엇을 원해서 이런 명령을 하는지 묻거나 앎으로써 그 일 자체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이의 뜻에 참여한다. 따라서 하나는 법적인 복종이요 다른 하나는 자주적인 참여다. 그러므로 종의 복종은 '굴종'이며, 아들의 복종은 '참여'가 된다. 따라서 종의 복종에는 반문이나 항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그 아버지가 이런 것을 원하는데 이렇게 해서야 되겠느냐, 또는 저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제의나 항의가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는 맹목적인 복종이 되고, 다른 하나는 참 이해가 따르는 복종이 된다.

또한 종은 명령받은 사건만 수행하면 된다.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은 그 일의 결과까지 문제시함으로써 아버지 앞에 책임있는 주체가 된다. 따라서 종은 그 명령된 일에 매여 있고, 아들은 그 명령한 이의 뜻 자체에 매여 있다. 따라서 같은 복종이라도 하나는 수동적이고, 하나는 능동적이다. 종은 비록 명령받은 일을 철저히 수행해도 그 일은 어디까지나 그 주인의 일이지 자기의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아들은 비록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해도 그것은 아버지의 일이면서 곧 자기의 일이다. 따라서 하나는 '나와 그'(3인칭)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너'(2인칭)의 관계에 있다. 하나는 복종하면서도 '너와 나'를 유리시키고, 다른 하나는 복종 속에서 '나와 너'가 하나의 공동운명체임을 안식한다.

바울로는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종이 아니고, 아들이라고 한다. 인간은 신의 아들이다. 이것은 물론 성서나 또는 바울로가 발전한 고유 한 말이 아니다. 유다교에도 그런 표현과 사상이 있으며 동서(東西)의 고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말이다. 그리스 사상에서도 본질상 신들과 인간과의 차이는 없다. 따라서 인간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바울로가 인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함은 본질론에 근거한 것도 아니며 사변에서 얻은 결론도 아니다. 아니, 그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에 의해서 인간이 전혀 다른 조건 아래, 새로운 가능성에 놓여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린이와 성인 : 바울로는 어린이와 종을 비교한다. 어린이는 종은 아니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하는 것 같은 아들도 아니다. 그는 종은 아니지만 종과 같은 상태에 있다. 팔레스틴에서는 12세까지의 어린이를 부모의 예속물로 생각한다. 그때까지는 완전히 부모에게 예속되며, 어린이는 그 부모가 지정한 '지기'나 후견인의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어린이에게는 아들이 가지는 자유란 없고, 있다면 감시와 복종밖에 없다. 그러나 12세가 지나면 하느님께 바치는 예전(禮典)을 행한다. 그때부터 어린이는 내적으로는 부모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 된다. 로마나 그리스에서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성인식(成人式)을 통해서 비로소 자유인이 된다. 말하자면 성장과정을 통해서 어느 시기가 되면 비로소 자유로운 아들이 되는 것이다.

바울로는 인간을 이러한 관습법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부모에게 직속되어 후견인의 보호 밑에 있었다. 그것은 종의 상태와 같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타율적인 제재가 필요했다. 그것이 유다인에게는 율법이며, 다른 민족에게는 종교적 권위를 지닌 자연법이거나 관습이었다. 그러나 한 역사적 계기를 통해서 인간은 성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성인 된 아들이 된 것이다. 그 역사적 계기란 바로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이 바로 어린이로 하여금 성인이 되게 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들이 됨으로써 모든 율법이나 자연 또는 관습법이라는 후견인이 필요없게 되었다. 이것은 동시에 그 아버지의 뜻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전에는 아버지의 뜻이 직접적이었으며, 그는 그 뜻에 종이 복종하듯이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버지의 뜻이 아들이 서 있는 상황(Situation)에 던져지며 아들은 자기의 결단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객체와 주체가 유리되지 않게 되었다. 타율과 자율이 하나가 되었다. 전에는 아버지가 "이렇게 해라" 하면 그대로 "예" 하고 복종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버지가 "나는 네가 바로 하기를 원한다. 잘 알아서 해라"라고 하며, 아들은 "예, 아버지의 아들답게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고 복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 지는 그 아들이 알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그 아들 자신이 자기의 상황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불트만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하느님의 뜻(Gotteswille)과 상황(Situation) 그리고 결단(Entscheidung)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성립된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함이다. 하느님의 뜻은 처음부터 고정된 율법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뜻은 상황과 더불어, 즉 일정한 상황에 있는 인간에게 그 상황을 통해서 전달된다. 즉 인간은 이 상황을 통해서 양자택일의 위치에 선다. 그는 거기서 주체적인 결단을 함으로써 행위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위를 결단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이다.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인간은 자유롭게 되었다. 더 이상 율법이나 어떤 보편율이 그를 구속할 수 없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자기의 분깃을 상속받았다. 그는 이 분깃을 자기의 주체적 결단에 의해서 처리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주권을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이렇게 아버지가 준, 아버지가 인정한 자기의 권한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반면에 그는 책임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이 특권을 아버지의 뜻에 맞게 주체적으로 살려서 책임성있게 행위해야 한다. 바울로는 새로운 어조로 간곡히 권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맙시다.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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