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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2. 개벽의 선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외아들의 영광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요한 1,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역사 시작에 대한 대서막의 선언이다.

영지주의라는 종교가 있었다. 참 실재는 영(빛)의 세계뿐이다. 사람은 본래 이 영의 세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우연으로 육(물질)을 쓰게 되었다. 영은 육이라는 감옥에 갇히었다. 따라서 사람의 궁극적 구원은 이 감옥에서 탈출해서 영의 세계로 환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육이라는 감옥을 자기의 본향처럼 생각하고 그것에 익숙해버렸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영이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과 그리움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불안과 그리움이 왜 생기는지를 모른다. 마치 망각의 병에 걸린 사람이 자기의 과거를 다 잊어버림으로써 제 고향, 제 부모, 자기의 생애, 마침내 자기의 이름 마저도 잊어버린 것처럼! 그러나 마침내 빛의 세계에서 사신(使臣)이 왔다. 그는 육체를 쓴 사람처럼 보일 뿐 영 자체 그대로 왔다. 그는 제 본향을 잊은 인간에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왔다. "사람이 그 감옥을 탈출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중요한 사실들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지금의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며, 잃어버린 자기를 도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상실은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물질을 저주하고 육의 감각성(感覺性)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말씀(logos)이 바로 '육'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말씀은 육신을 쓴 인간이었다는 말이다.

인간은 그 역사와 더불어 신을 찾았다. 그러나 그 신은 사람이 도달하기에는 너무도 멀고 높은 데 있다고 느꼈다. 따라서 그를 반영한다고 생각되는 어떤 구체적인 것을 신 대신에 섬겼다. 아니면 너무도 멀리 있는 신을 향해 몸부림쳤다. 그런데 그 하느님이 육(肉)이 되어 '우리 가운데 '즉 인간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왔다고 선언하며, 그것이 바로 유다 땅 나자렛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이러한 선언을 오늘에 사는 우리로서 어떻게 이해할까?

이 선언은 우선 예수 이전의 역사와 그 이후의 역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선언은 예수 이전의 역사 자체 안에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 안에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역사는 계속 생성, 소멸, 영원한 반복과 회귀(回歸)밖에 없다. 그것은 그리스의 철학이 이해한 역사관 그대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역사이면서 역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에서 보는 대로 법칙에 의해서 기계처럼 도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도 이 평면적인 역사 밖의 어떤 초월을 상상하고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초월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비록 신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말한다 해도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코스모스'라는 법칙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하느님)이 육(인간)이 되었다는 선언은 이 기계가 그 궤도를 따라 계속 돌듯이 필연밖에 없는 이 역사에 새로운 가능성이 배태했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예수의 출현으로 역사는 그 자체의 리듬에 의해서, 또 그 리듬을 위해 반복되지 않고 한 구심점이 생겼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무정란(無精卵)과 수정란(受精卵)의 차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정란은 그 안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없다. 그 껍질 속에 갇힌 것처럼 그것은 영원히 그 안에 차단된 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리게 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수정란은 그 안에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미래를 수태했다. 그것은 이제 올 일, 즉 병아리를 까게 된다는 새 사실에서 그 의미가 주어졌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역사 안에 들어왔다 함은 바로 이 무정란과 같은 역사가 수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역사에는 중심이 생기고 따라서 목적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 목적은 그 안의 필연성에서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정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서 들어왔으면서도 그것은 이미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목적이 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반드시 요한복음의 신앙만이 아니다. 공관복음에서도 이러한 신앙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수태했다는 설화도 그렇다. 처녀 자체로서는 새 생명을 배출할 수 없다. 그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길은 밖으로부터 생명을 그 몸에 받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 자체의 필연으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하느님이 이 역사 안에 들어온 사건이 바로 예수의 탄생이다. 그런 뜻에서 이 사건을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이 역사안에 내림해서 현존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처녀 마리아와 수태 이후의 마리아가 전혀 달라졌듯이, 이 역사의 의미가 전혀 달라진 것이다.

예수는 철저한 사람이 된 말씀이다. 요한은 예수의 전기(傳記)를 쓰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의 해석자요, 증언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비록 단편적으로나마 인간 된 예수의 모습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예수는 "피로하였으므로 우물가에 앉았다"(요한 4, 6). 목이 말라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요한 4, 7)고 한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서도 "내가 목이 마르다"(요한 19, 28)고 한다. 그 마지막 순간, 그 귀중한 순간을 보도하는 데 왜 하필 목이 마르다는가련한 비명 같은 것을 전할까? 시카르성 우물가에서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던 그는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까지 목말라 하는 제한된 인간임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나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형제들 앞에서 인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린다(요한 11, 15). 그것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요한복음은 주저없이 그의 부모 형제를 알리며, 어디서 왔으며 그가 이른바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적대자들의 말(6, 42)에 아무런 수정이나 변명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한 인간으로 왔다. 정말 육을 쓴 인간이다.

그런데 "그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외아들의 영광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고 한다. 순수 인간이 된 그에게서 하느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다고 한다. 그에게서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보았다고 한다. 만일 그가 순수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렇게 신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인간(肉) 안에서 신적인 영광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가 만일 그에게 아직도 일반 사람에게 없는 특수한 신적인 본질이 있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벌써 순수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처럼 순수 인간이 된 예수에게서 신적인 영광을 보았다면, 그것은 패러독스(paradox)가 아닐 수 없다.

요한은 계속적으로 이러한 패러독스를 나타낸다. 이 피곤한 나그네, 목이 말라 물 좀 달라던 그 예수가 바로 영원한 생수를 준다. 인정에 약해 눈물을 흘리는 그 예수가 바로 생명이요 부활의 주다. 십자가상에서 목마르다고 하는 바로 그가 "다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아무런 신비로운 변화의 과정이 없다. 아니, 인간 예수, 인간의 제약을 가진 그 예수에게서 바로 그러한 영광이 드러난다.

예수의 제자 필립보가 하느님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예수와 오래도록 함께 있었으면서도 하느님을 계속 초자연적인 데서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 "필립보야,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 아직도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요한 14, 9)고 되묻는다. 이것은 하느님의 책망이기도 하다. 지금 그들과 말하고 그들과 움직이는 그 예수를 떠나서 하느님을 찾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을 이루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의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과 마주한 그를 떠나서, 그와의 관계를 떠나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이 예수의 대답이다. 그를 봄으로써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를 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본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 나아갈 길이나 또 사람이 알아야 할 진리나 나아가서는 삶을 제시하거나 가르치는 데 그치는 이가 아니다. 아니, 그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 6). 그러므로 그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하며, 그를 따르면(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며(요한 8, 31~32), 영원한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한 6, 35)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내 살을 먹고 또 내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이다"(요한 6, 53~54)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를 우리가 알지 않는가?"라고 하는 유다인들에게는 거리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그것은 저들이 어둠 속(낡은 시대)에 있기 때문이며, 이 어둠이 빛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요한 1, 5).

'하느님은 피안(彼岸)에 있다. 따라서 영원한 진리나 생명은 피안에 있다. 그러므로 만일 그런 것이 이 역사 안에 있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언제나 초자연적이어야 한다'는 이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오히려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그 출처도 몰랐더라면 오히려 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요한 7, 27)라고 그를 불신하는 근거를 내세운다. 따라서 그의 앞에 선 사람에게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길뿐이다. 즉 그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그를 전적으로 거부하느냐의 길이다.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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