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운동으로서 주목할 것은 토마스 뮌처를 필두로 한 일파입니다. 루터는 저들을 열광주의자(Schhwärmer)라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한 내용으로 보아 성령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습니다. 이미 중 세기부터 이러한 성령주의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단에 의해 그것은 이단으로 거부되었습니다. 그런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그들은 일단 이단의 누명을 벗고 그 억압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저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열렬히 환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을 철저화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루터의 한계를 비판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립의 관계에까지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성령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들은 루터의 성서이해에 대해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저들의 눈으로 보면 루터는 성서주의자였습니다. 이 말은 루터가 성서의 내용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하느님의 현존양식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들은 하느님이 성서만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 것이 아니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활동입니다. 이 점을 루터는 간과했다고 본 것입니다.
둘째로는 루터가 너무 달콤한 그리스도(der susse Christus)만을 말하고, 엄격한 그리스도(der bittere Christus)는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비판의 뜻은, 루터는 인의(認義)사상에 의한 은총 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는 그리스도는 등한시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저들은 루터와는 달리 집단적인 소명의식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즉, 사람은 각기 내적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성령은 개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영으로서의 역사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넷째, 저들은 성례전이나 사제직 즉 제도교회의 특권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사람이 내적으로 지상명령인 성령을 받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저들의 사회를 향한 소명의식입니다. 루터는 비록 로마교권에는 저항했어도 봉건영주들의 권력을 이용함으로써 저 유명한 두 나라설에 귀착했고, 그 결과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나아가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거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토마스 뮌처는 사회에 대한 소명으로서 사회악을 쳐 부수고 그것을 개혁해야 한다는 선택받은 자로서의 인식이 투철했습니다. 그의 사회개혁을 위한 투쟁방법은 두 가지 형태로 이해되고 실천되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고난을 짊어짐으로써 이루는 개혁입니다. 이를 현대적 언어로 말하면 시민의 거부권행사입니다. 둘째는 선택받은 자의 길을 방해하는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칼, 즉 폭력도 불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같은 급진주의를 취하게 된 동기입니다.
저들은 처음부터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토마스 뮌처는 사회 자체의 변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이 지나치게 일에 얽매이기 때문에 성서를 읽지 못하고, 성령의 체험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에 의한 공업 화가 진행되던 삭소니아 지방에서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쉴 시간도 없고 제대로 잘 시간도 없이 혹사당하며, 따라서 학교는 물론 어떤 의미의 교육도 받을 수 없고, 종교생활도 사실상 불가능한 노동자들의 상황을 분명히 직시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운동이 농민전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동기입니다. 이와 비슷한 성령운동이 그후에도 계속 소집단들에 의해서 나타났으나, 그 운동은 그때마다 번번이 이른바 주류에 의해 탄압받았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저들의 성령에 대한 확신이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피안적인 도피로 나타나지 않고, 그 반대로 기존의 제도교회와 나아가서는 사회혁신의 활력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회의 교권을 장악한 자들의 성령에 대한 이해와 설명은, 바로 이같은 성령운동을 이단으로 박해하거나 처단함으로써 그 방향이 벌써 결정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