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예수가 성전을 공격하면서 거사의 성공 이후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수립하고자 했을까요? 고대 이스라엘 체제의 회복이었을까요?
그것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봐야 할 문제인데, 먼저 예수의 행태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우선 예수가 당시에 계급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어요. 예루살렘의 종교귀족들과 그 밖의 사람들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었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 운동의 주역으로서 전면에 나섰던 것은 가난한 자, 눌린 자, 즉 민중이었거든요. 예수의 비유에 그러한 인식아 분명히 표출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 잔치의 비유에서 그것이 드러나고 있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들 것이다"라고 한 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 운동에서는 재래적인 기득권자는 탈락되고, 재래적 입장에서는 무시됐던 계층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리고 출발이 갈릴래아라는 것도 굉장히 평가해야 할 일이에요. 복음서는, 심지어 루가복음까지도 '갈릴래아 사람들'을 강조하거든요. "갈릴래아 사람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진격해 들어갔다." 이것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유다 사회에서는 멸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모였을 때, "저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니냐?"라고 했고, 베드로를 보고 "너, 갈릴래아 사람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또 천한 여인들의 행적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갈릴래아에서 온 여인들"이라고 분명하게 밝혀놓았거든요. 이것을 계급적인 시각에서 보면 새 질서 또는 새 나라를 세우는 주역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지요. 예루살렘 대 갈릴래아가 상징하는 사회의 대립적인 세력들 가운데서 갈릴래아 민중이 주동이 돼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파괴해버리고, 역사의 주인이 되는 그러한 현실변혁을 구상했다, 이렇게 보는 것은 결코 지나친 상상이 아닐 겁니다. 그럼 무얼 구상했을까요?
그것은 기존의 지배ᆞ피지배관계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새 세계,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새 나라지요. 여기까지는 뭐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더 깊이 이야기해서 그러한 새 질서를 수립하는데 전제가 되는 것은 예루살렘 세력이 거부되는 것, 그래서 로마가 팔레스틴에 발을 붙이기 위해 교두보로 삼았던 세력들이 제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의 주권만이 지배하는 세계, 소위 성전종교의 막을 내리게 한 민중의 하느님 나라, 이것이 바로 예수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텍스트'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이 이상의 얘기는 하기 어려울 것 같군요.
▶ 주기도문을 하느님 나라의 신앙고백이라고 하시면서 일용할 양식과 물(物)의 세계를 연결시켜 말씀하셨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요한복음 1장 14절이 물(物)의 문제에 관해서 새로운 빛을 던져주는 좋은 텍스트라고 평소에 말씀하셨던 걸로 저희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관련해서 오늘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요한복음이 A.D. 100년경에 씌어졌다고 하면, 그 시대는 이미 가톨릭화가 돼가고 교권이 확립되어가는 중요한 분수령이었지요. 요한이라는 집단은 그러한 교권화에 대해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것에 저항했다고 봅니다. 즉, 가톨릭화되어감으로써 나자렛 예수의 전통이 비역사화되고, 예수는 하나의 교리 대상이 되고, 생동하는 예수의 상이 흐려져가는 마당에서 요한이라는 개인 혹은 집단이 그 겉 거부하고 나서면서 그런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시대에서 교회시대로 넘어가고 복음서가 캐논화되는 단계에서 요한집단은 심지어 복음서마저도 그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반복하면 자꾸 캐논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재료도 되도록 새것을 사용하고 해석도 새로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요한복음이었다, 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성전숙청 기록에서는 "너희들이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짓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새로운 복음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극적인 말이 나오지요. "하느님을 예배할 곳이 그리짐 산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하고 그 여인이 묻자 "그리짐 산도 예루살렘도 아니다. 지금 바로 여기다!"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는 사마리아인과 유다 사람 혹은 갈릴래아 사람 사이의 장벽이 철폐됨으로써 새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예수가 추상화되고 교리화되고 비역사화되어가는 것을 보고 견디다 못한 나머지 요한의 폭탄선언이 떨어졌습니다. "말씀이 육(肉, sarks)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