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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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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현장에서 본 예수상

고난당하는 민중의 현장에서 예수는 무엇을 했는가? 이 물음을 나는 끊임없이 물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1970년대에 들어와 점점 독재정권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박정희정권이 유명한 민청학련사건을 일으킵니다. 저항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스파이사건을 조작해낸 것입니다. 민중의 편에 선 수많은 청년들을 공산당과 관계가 있다고 하여 체포하고, 심하게 고문하여 그들의 몸을 불구가 되게 하였고, 끝내 그 젊은 청년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런 후에 관 뚜껑을 못질하여 가족에게조차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혹독하게 고문하였던지 누가 누구인지 얼굴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담아 싣고 묘지로 가는 것을 목사와 신부가 뒤쫓아가서 관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시체를 보여달라고 싸움, 싸움하다가 그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혔습니다. 결국 폭력에는 이길 수 없어 시신을 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들로서는 상처투성이의 시체를 보여 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사형판결을 내린 바로 그 다음날 시체들을 매장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또 수많은 재일한국인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하려고 했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서준식군 형제는 아직도 출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들, 학생들, 교수들, 노동자들이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외로운 싸움만은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투옥된 다음날부터 꼬박 열흘간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때리지도 않고 말도 경어를 썼습니다만, 하루종일 등받이도, 손걸이도 없는 네모난 상 위에 앉혀놓고 얼굴에는 강한 전등불빛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열흘간 단 1분도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이미 싸울 기력이 하나도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10일 간 단 1분도 잠자지 못하게 했다는 그 자체, 이보다 더한 정신적 고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교수이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도 이런 정도로 대우해준 것이었겠지요.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만, 어떤 교수는 지금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가족 중에는 그리스도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일루의 희망을 품고 가톨릭교회에도, 개신교회에도 찾아왔습니다. 세계에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도 우리들의 친구들이 있어서 여러모로 도와주었고, 독일에서도 양심 있는 분들과 연결을 가지면 무언가 길이 있지 않을까하고 노력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면서도 또한 어려웠던 것은 이 가족들에게 어떻게 예수를 소개할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마르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떠한 예수를 소개할 것인가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마르코의 당면 과제였던 것입니다. 승리자 예수인가? 전능자 예수인가? 신으로서의 초월적 존재자 예수인가? 다시 살아난 예수인가? 하지만 그런 예수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예수는 그들에게 하등 위안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고 할 것 같으면 예수의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예를 둘어, 예수는 세 번 "나는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3일 만에 부활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즉, 나는 지금도 말합니다만, 예수처럼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만 하다면 나도 쉽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에는 고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예수는 한갓 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 신이여.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3일 만에 되살아날 확신이 있다면, 왜 그처럼 절망적인 '장면'(scene)을 연출한 것일까? 그것은 너무 우스꽝스러운 연기 아닙니까?

3일 만에 부활한다는 확고한 전망이 있는 경우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음을 앞에 두고 처절하리만큼 절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3일 만에 부활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와 하등 관계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점과 관련하여 본회퍼를 연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예수는 히틀러에게 고난을 당하다가 끝내 죽임을 당했다"고.

살해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영웅으로서, 위인으로서 죽임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로서 박해를 받아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는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모두 도망가버리고 아무도 예수의 죽음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망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로 캄캄한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를 전할 수 있을까요? 영웅으로서의 예수를 전할까요? 승리자 예수를 전할까요?

다만 하나 남아 있는 가능성은, 함께 우는 자 예수! 그것밖에는 없었습니다. 방관하지 않고 뛰어들어 더불어 당하고 괴로워하고, 더불어 울고, 더불어 죽는 예수! 승리한 영광의 예수가 아니라, 고난당하고 죽임당하는 절망적 상황에 있는 예수! 제자들이나 자기 민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신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상태에 있는 예수! 이것이 마르코가 전한 예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고난의 현장에서 전하기에 가장 적절한 예수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예수, 수난의 그리스도야말로 민중신학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결론을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의 설교 가운데서 말했습니다. "수난 가운데 있는 예수의 상황은 지금 여러분 이 처한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상황이었다. 게쎄마니로부터 불법적인 재판을 거쳐 십자가에 처형되는 그 순간까지도 신은 전혀 간섭하지 않고 오직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다. 약자는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구타당하고, 모욕당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이러한 현장에서는 예수와 그들이 전혀 다르지 않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설교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갖다붙여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마르코가 전한 수난자 예수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가 오히려 이런 부류의 사람들, 구속자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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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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