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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3 16:04

<평화와 신학> 발족 취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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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신학> 발족 취지문

 

촛불혁명과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분명 역사를 새롭게 지어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70여 년 동안 분단을 고착화하며 구축된 ‘48년 체제’에 묶여 고통당해왔다. 이는 정치경제적 제도나 사회문화적 관습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까지 지배하면서 한국사회를 소위‘헬조선’으로 몰고 가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뿌리였다. 따라서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과제요,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서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벗어나 있지 않다.

 

길고도 견고한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현재 큰 갈등과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분단체제와 함께 성장한 한국교회에는 숙명과 한계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분단신학이 지배한 교회는 반공주의와 반북주의에 의해서 규율되어 왔으며, 신앙인들은 배타의식과 증오로 물든 종교적 문맹상태에 빠져있다.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포용과 화해의 영성으로 신앙의 패러다임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한국교회는 변혁적인 신학을 전개함으로써 신앙적 파산상태에서 벗어나 올바른 역사참여와 사회선교, 교회갱신 활동을 전개해가야 한다. 더 나아가 종교적 영감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식이 인류와 문명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위를 넘어 동경(憧憬)이 이끌도록 복음을 재해석하며, 비판과 저항을 넘어 대안을 실험하는 신앙공동체를 독려하는 신학운동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에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쓴 에큐메니칼 운동과 진취적인 신학운동 전통이 있다. <1973년 한국그리스도인 신앙선언>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는 기독교 운동이 시작되고 민중신학이 태동하였으며,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민(民)이 통일과 화해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선구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특별히 삼십 년 전인 1989년에는 문익환 목사의 예언자적 방북 사건만이 아니라 <통일신학동지회>가 결성되었다. 문익환, 박순경, 박형규, 조용술, 홍성현, 홍근수 등은 통일신학의 정초를 놓고 운동의 대중적인 확산을 위해 강좌를 개설하고 국내외 학자들과 사상을 교류하였다.

 

이와 같은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분별하여 수행하는 신학운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분단체제의 상처와 죄악이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분단과 전쟁의 죄악에서 비롯된 개인적/집단적 트라우마는 군부독재와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더욱 깊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시달리고 있는 트라우마와 터부를 밝혀 논의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된 사회적 갈등의 등고선을 따라 매끈하게 정리되어 제시된 해답이 아니라, 아직 목소리조차 갖지 못하고 타자화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짐으로써 새로운 고민과 사고의 길을 여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교정하여, 민(民)이 주체가 되어 민족의 활로를 열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과제를 인식하며 2018년 말에 <평화와 신학> 연구기획모임이 구성되어 발족을 준비해왔다. ‘평화’와 ‘신학’ 사이에 ‘와’를 넣은 것은 사상적 확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현재 기획모임은 십여 명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앞으로 더 넓게 국내외의 신학연구자 및 현장 활동가들과 공동 작업을 펼쳐가고자 하며, 신학 너머의 여러 분야 전문연구자들과도 교류하며 지평을 넓혀가고자 한다. 또한 세대적 확장성을 발휘하여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사이에 생긴 갈등담론 너머로 나아갈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평화와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건강한 신앙공동체와의 연대와 협력관계 속에서 신학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한국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평화담론을 공동으로 연구할 뿐만 아니라, 연구내용을 신앙공동체와 연결된 공간에서 발표하고 그 결과물을 장기적 전망을 갖고 축적해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목회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신앙공동체와의 협력을 키워가고자 한다. 현재 <평화와 신학>을 지원하는 신앙공동체로는 새길교회, 천안살림교회, 한백교회, 향린교회가 있으며 앞으로 더 연대의 폭을 넓혀갈 것이다.

 

2019년 6월 24일

한국전쟁 69돌을 맞아 <평화와 신학>을 발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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