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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혼동의 현장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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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혼동의 현장

오늘 이 땅의 가치관은 뚜렷하다. 그건 부강(富强)이다. 바로 재력과 권력이다. 이것을 이룩하는 것이 근대화이다.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실리실용주의이다. 잘산다는 것이 바로 부강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까닭은 실용주의는 몰윤리 화의 길이니까! 그런데 최근에 어디서 거론하기 시작했는지 모르나 충과 효가 가치체계의 기준처럼 내세워지고 있다. 근대화에 충효가 어떻게 결부되나? 자전거를 타고 상투를 틀라는 것과 어떻게 다를 까? 충효란 봉건체제의 유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불신하기 앞서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해야 할 의무에 대한 어떤 제시도 없고 단순히 아래에서 위를 향해 해야 할 의무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요새 '3대 스캔들'이니 해서 야단이지만 놀랄 것 없다. 왜냐하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며, 그것은 당연한 귀추니까! 부강을 제일목표로 하는데 전화 한 번으로 천여만 원의 불로소득을 마다할 '병신'이 어디 있으며, 눈만 가릴 길이 있다면야 교사자격증을 사는 것이 계산상 맞는데 왜 안 한단 말인가! 어린 소녀들을 무더기로 농락한 권력 있는 파렴치범에게 적용할 법이 없어 처벌 못한단다. 모두 어른들, 부강한 자들이 한 짓이다. 그런데 이런 성인들이 어떻게 충효만을 강조할 수 있나? 글자 그대로 성인폭력의 시대이다. 지금의 성인은 충효를 받아야 할 대상이고, 그 의무는 없는 결과가 됐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녀석들이 돈을 주고 거짓 자격증을 사고 파느냐 말이다.

휴머니스트였던 카뮈가 1948년 파리의 도미니코 회원들에게 한 연설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악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과 함께 희망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나는 어린이들이 괴로워하고 죽어 가는 이 세상과 맞서서 싸우기를 결코 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추상적 관념에서 벗어나 피로 얼룩진 우리 시대 역사의 모습을 마주보는 것입니다.

법도 없는 곳곳에서 지칠 줄 모르고 어린이들과 사람들을 위하여 몸을 내대고 있는 한줌의 사람들의 외침에 온 세상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수백만의 소리를 합해야 할 줄 압니다.

이 말 속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것을 일차적인 고발의 내용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정과 어린이 학대의 함수관계는 성서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다. 에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을 학살한 것이나, 예수가 태어났을 때 헤로데가 어린이들을 학살했다는 전설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역사상에서도 정적의 씨를 없애기 위해 어린 생명들을 없애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았으며, 독재자들이 어린이 학살을 다반사로 한 예가 얼마든지 있다.

오늘의 정치경제문화의 이름 밑에서 근대화가 선전되고 집행되고 있는 현장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미칠 영향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 어린이를 위한 교과서가 계속 바뀌는데, 그것이 과연 어린이를 위한 것인가? 정치악을 그대로 어린 가슴에 심어주고, 성인들의 선전을 위해 어린이를 마이크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어린이들은 성안들에게서 쏟아져나오는 탁류에 오염되어 익사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어린이는 어린이로 있어야 한다. 어린이는 무한의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어떤 기존의 것을 주입시켜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어떤 목적의 이용물로 삼는 것은 더 없는 죄악이다. 히틀러는 기초학교를 국민학교(Volksschule) 라 고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배타적 민족의식(그것도 허위의 민족의식)을 주입시키고, 그들에게 군국주의를 주입시켰다. 결국 침략군대로 기른 것이다. 이렇게 자란다면 기능 공은 될 수 있어도 사람은 될 수 없다. 오늘 이 사회의 교육이 바로 이런 사고와 풍조로 조종된다면 우리 민족의 장래를 망칠 위험신호이다. 근대화의 물결로 우리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현금은 부강해지는 것을 지상목적으로- 알고 눈이 충혈된 사람들로 차 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은 보류하고 있다. 그 질문이 진지해지면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다.

그런 위기 앞에 나는 '어린이'를 새로운 '가치기준'으로 등장시켰다. 그것이 본보기가 되어 젊음의 순위를 일차적인 가치기준으로 삼 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연령에 직결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요는 기존 가치관에 오염되지 않은 계층일수록 가치있으며, 그들을 지키고 그들의 편이 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을 때 우리는 새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현존』 제94호, 1978년 9월호. 원제는 '새 출발의 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