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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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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구 문화와 성서언어

서구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틈바구니에서 탄생되었고, 그리스도교를 중축으로하여 형성, 발전되었다. 그런데 이같이 핵심적 역할을 한 그리스도교를 언어사적으로 보면 오늘까지의 서구 문화사의 '숙명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원천은 히브리 민족이다. 예수는 당시 유다인의 민중언어(구어체)인 아람어를 썼다. 그리고 성서 기자들은 모두 히브리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경전(신약)은 모두 그리스말로 씌어졌다. 이것은 그 독자들의 문화적인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즉 성서는 헬레니즘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씌어졌다. 다른 나라 말을 빌려 어떤 정신을 퇴색시키지 않고 전승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히브리어(아람어)와 그리스어는 문법상으로 보아도 각기 아주 다른 어군(語群)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 기자들은 그 문화권에서 쓰는 말 중 상류층이 사용하는 문어체(고전 그리스어)를 쓰지 않고, 대중의 말인 구어체 곧 코이네(koine)를 선택했다. 그러나 성서는 모두 히브리인들의 구문(構文)이므로 히브리어가 속한 셈(Sem)어적인 냄새가 질다.

신약에서 가장 초기의 글들로는 바울로의 편지들이다. 바울로는 자신이 밝힌 대로 히브리인이지만 헬레니즘 문화권인 다르소에서 나서 자랐으며, 그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중류 이상의 출신이다. 그는 그리스의 철학 일반에 능통한 지식인으로서 헬레니즘의 세계관에 익숙했으며, 따라서 그 언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선교의 사도로서 바울로는 이러한 문화적 상황을 의식했기 때문에 그 언어(세계관)를 사용했다. 그는 기존의 세계관과 대결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변호 또는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글은 논리적이며, 전개적이다. 그럼으로써 비히브리적이 되었으며 비민중적이 되었다. 논(論)이나 관(觀)은 히브리적이 아니며, 또한 민중적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마르코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말씀이나 그에 관한 기사는 바울로와는 대조적이다. 마르코복음도 예수를 구원자로서 증거하려 한다. 그러나 마르코는 그리스도'론'이나 구원'론'을 전개하지 않고, 그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너무도 민담적이다. 선인(仙人)같이 나타나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예수가 그에게 세례받은 이야기, 제자들을 부르는 이야기, 여러 병자들을 만나 치료하는 이야기, 귀신을 추방하는 이야기, 그를 둘러싼 민중에 대한 그의 이야기, 그의 적대자들이 파놓은 함정을 멋지게 물리치는 이야기, 그리고 맨 나중에는 그의 수난의 이야기와 빈 무덤 이야기 등 이렇게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엮어나간다. 그것은 결코 조직적이 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고 문학적 전기체도 아니다. '그리고'(καί)라는 접속사를 연속하면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실로 꿰매듯이 엮어가고 그것으로 시간과 장소의 이동을 동시에 나타내려고 하지만, 그것은 마치 민담에서 보는 대로 '어느 날' '어떤 곳에' 또는 '그 후에' 등의 접속사가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지 않고 단지 이야기를 잇기 위한 매듭인 것처럼, 시간과 장소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개념이나 어떤 '관'을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논리 따위에 의존함이 없이 '본 대로 들은 대로'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 중에는 전능한 초인 같은 면과 '할 수 없었다'는 말, '전능한 이'와 수난에서 보는 그 무능 사이의 모순 등을 극복하려는 노력 따위가 없다.

예수의 말씀도 모두 짤막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 비유라고 하는 특유한 형식의 이야기가 그의 가르침의 전형안 것이다. '비유'는 모두 상어(象語, 그림언어)이다. 누구나 들으면 잊을 수 없어 되씹고 또 전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그것이 전하는 내용은 어떤 개념이나 '관' 이 아니다. 통째로 어떤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여준다기보다는 듣는 자로 하여금 어느 부분―가령 지성―으로 동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써 결단을 종용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특수교육을 받아야만 더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런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말은 글자 그대로 민중의 언어이다. 그야말로 언문적 언어이다. 아녀자들이나 문맹이나 다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른바 지식인에게 유치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마르코에 의해 씌어진 예수에 관한 이야기와 예수의 말씀으로 된 이 글은 바울로의 그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만일 마르코가 바울로나 그의 계보에 속하는 이들의 글을 알았다면 마르코는 분명히 이론적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 또한 비역사화되고 추상화되어 결국 도그마에 낙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는 이 위험성 앞에서 역사의 예수, 그의 말과 그의 무리를 현재화함으로써 민중의 언어로 소생시키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언어는 '론'이 아니라 '존재의 집'으로서의 환원이기 때문이다.

마르코가 전승한 자료는 바로 구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구전은 모든 민족에게서 볼 수 있는 민담과는 차이가 있다. 예수에 관한 구전은 어느 개인이나 어느 집안 또는 동리에서 기원했거나 그런 것이 매개체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공동체에 의해 형성되고 전승된 것이다. 그 구전된 내용이 독특하기에 그것을 전승하기에 알맞은 문체로 만든 것이 마르코의 공로이다. 복음서의 문체는 어디에도 그 유례가 없다. 그것은 민중에 의한 민중의 복음인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복음으로서 출발한 그리스도교는 그레꼬 로마의 세계 중심에 들어가서 권좌에 앉게 되면서부터 지배층의, 지배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그리스도교의 변증론 그리고 교회의 언어가 당시의 세계제국이었던 로마의 글인 라틴어로 번역됨으로써 민중을 배반하고, 마취시키고, 억누르는 것이 되고 말았다. 라틴어에 갇힌 복음은 사제귀족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복음은 사제귀족 계층에게 납치되었으며, 동시에 민중에게서 격리되었다. 사제귀족은 그후 라틴어마저 독점하고, 그리고 교회와 예배의 모든 용어로 라 틴어만을 사용함으로써 복음을 갈구하는 민중에게 권위로써 군림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했던 것이다. 이렇게 천년 동안 민중의 복음이 완전히 감금당한 채 역기능만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루터의 만인사제론(萬人司祭論)이나 성서의 민중어로의 번역은 천년 묵은 그 착취의 아성을 향한 결정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의 첫발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