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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육의 자기초월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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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의 자기초월

육이 된 말인 예수가 가장 밑바닥에 존재합니다. 그는 노동자이며 불학무식한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부자와 기득권자에 대해서 약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저들과 대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강한 자들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이 육의 자기초월인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또한 오늘 민중사건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육이 그런 것처럼 또한 민중도 쉽게 유혹에 빠져 자기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민중은 바로 가난하기 때문에 그리고 계속되는 박해 때문에 쉽게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민중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내던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림으로써.

이러한 민중사건은 오늘 한국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계속 발견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관객 같은 중립적 위치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사건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은 그러한 민중사건에 참여함으로써 현재의 그리스도사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은 바로 민중사건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사건의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사건에 가시적인 표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교회 안에서의 삶이 자기 초월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독일 신학은 생활현장과 멀리 떨어진 신학입니다. 지금도 나는 필요에 따라 독일 신학의 논문들을 읽습니다. 그런데 그 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른 신학 또는 사고와의 관계에 대한 서술이지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 신학의 '삶의 자리'는 사회도 아니고 교회도 아닌 오직 학문영역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신학적인 작업에서 독일 안에서 일고 있는 평화운동이나 경제정치적 상황을 거의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지어 독일 교회가 어떤 과제에 당면해 있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도 감지하지 못합니다.

 

독일 신학은 '신학한다'(Theologizierung)는 것 자체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너무도 자족하고 있습니다. 신학은 그의 삶의 자리를 장으로하고 그것과의 교류 속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삶의 콘텍스트 안에서 읽습니다. 또 삶과 직결된 해석은 우리에게 성서로의 길을 보여줍니다.

삶의 현장에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 우리의 역사적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수난당하면서 삶의 의미를 묻는 민중을 계속 만났습니다. 저들은 예수의 고난의 현장을 반영했으며, 고난의 의미를 찾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민중의 고난의 현장에서 우리는 예수의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즉 고난받는 현재의 민중이 예수의 고난을 가시화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사건이 케리그마보다 앞서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서구 신학이 역사현실을 무시하기만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른바 '변증신학'은 역사적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바르트(K. Barth)는 목사로서 한 손에 신문을 들고 또 한 손에 성서를 든 고충을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바르트의 손에서 신문은 사라지고 도그마만 남았습니다.

신약은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이 세상을 위해 보냈다고 증언합니다. 그 점에서 보냄받은 예수가 어디로 보내지고 어떻게 행위했는지가 구체적이고 분명합니다. 예수는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며, 잘사는 자나 행복한 자들을 부르 러 온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 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로 갔습니다. 갈릴래아에서도 가난한 자나 눌린 자들에게로 갔습니다.

마르코 1장 14절에서 이 갈릴래아는 단순히 지역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인 성격을 드러냅니다. 예수의 활동은 세례자 요한의 체포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갈릴래아는 세례자 요한을 체포한 장본인인 헤로데 안티파스의 지배영역입니다. 바로 이때에 여기서 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은 정치적 충돌을 불가피하게 한 것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가 선택한 선택의 장인데, 그것이 바로 고난받는 민중의 현장입니다. 독일 교회는 이러한 현장을 알고 있습니까? 이러한 선교의 장이 있습니까? 현장이 없는 생각은 오직 무책임한 학문적인 유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구 신학을 본뜨는 데만 바빴습니다. 그런데 경제적, 정치적 갈등의 현장에서 민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1970년 10월 13일에 분신자살하면서 노동자의 참상을 세상에 폭로한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강단신학에서 안주하던 우리는 민중의 삶에 눈을 떠야만 했습니다. 그의 분신자살을 통해서 우리는 산업화사회의 그늘 밑에서 기본적인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난에 찬 노동자들의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성서를 새로 읽고 민중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민중신학이 형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