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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의 현장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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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현장

우리는 '해방'과 더불어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 땅아 양 진영의 군대에 점령된 상태에서 민족의 자주적 방향 선택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지리적으로 분단된 그대로 양 전선의 첨단에 갈라서서 서로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맞대고 안으로 점령세력의 압력 아래 그같은 체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중의 한 부분인 남한이 우리가 선 지점(地點)이다.

북쪽은 공산주의체제로 굳힌 데 대해서 우리는 지금 자주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시장자본주의체제를 받아들이고 국론으로 반공을 자명적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와 경제의 현장이다. 그것은 다음 몇 가지로 집약된다.

① 우리가 이른바 자유진영과 제휴하는 동안 국제세력에 의해 민족의 주체가 침범당했다. 이미 남북 분단의 비극적 상황이 지금도 지속되지만 그후 한국전쟁, 계속되는 독재정권에 의하여 민중은 수탈 당해왔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독재정권 뒤에는 언제나 이른바 자유 진영이 있어서 저들은 군사적으로 침략하는 대신 경제적으로 침투해서 자주성을 구속하는 과정을 거듭해왔다.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우리 경제는 무역에 완전 의존하는 체제로 됐는데 그것은 이른바 다국적 기업에의 예속이며, 미일 등에의 예속을 의미한다. 우리는 저들의 이해관계나 바위를 거스르고 자립할 수 있는 그런 경제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경제성장 규모를 GNP로 과대선전하나 국제적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민중에게 주는 영향을 보면 그 악성(惡性)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 중 광업노동자는 월 평균 수익 17만 원, 생산직 노동자는 월 12만 원(1980년)인데, 1981년에는 10만 원 미만이 40.4퍼센트이다.

농민은(1981년) 순수이익이 평균 65만 원이고, 농가는 평균 연 43만 원의 빚을 졌다. 그러므로 농민의 채무는 10년간 43배로 늘었다. 영농비가 상승하므로 적자는 계속된다. 지난 10년간 쌀값아 5, 6배 상승했는데 영농비는 10배가 늘었다. 그러니 농민들이 계속 이농할 수밖에 없다.

1967년에 53.4퍼센트이던 농민이 1981년에는 25.8퍼센트로 반감됐다. 이래서 1981년말 현재도 천만 명 이하로 줄었다. 농촌에 남은 이는 대부분 노인충이다.

저들 중 어쩔 수 없이 산다는(농사짓는다)는 이가 70퍼센트라고 한다(『매일경제』 1982. 5. 25).

그들 10명 중 4명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갔는데 그 수는 무려 607만 9천 명이다(1981년). 이들은 도시의 극빈자로 산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경제성장을 하면 할수록 자본독점층이 축소되는 반면 가난한 민중은 상대적으로 계속 늘어나게 되어 있다. 누가 이 민중의 편에 설 것인가? 기독교장로회가 이제 민중과 함께하는 선서를 한 셈이다.

이 민중의 충이 이렇게 확대되고 절대 빈곤과 상대적 빈곤에서 육체와 정신적 절망으로 치닫게 되면 결국 이 민족의 운명이 죄우된다. 그러니 이 민족을 위하는 것이 바로 이 민중과 더불어의 길이다.

민중과 더불어라는 것은 동서 긴장의 시각의 마술에서 남북의 관계로 그 시각을 옮긴 것이다. 20퍼센트의 백인이 80센트의 부(富)를 독점하고, 그리고 경제적 착취만이 아니라 이제 전세계를 온통 살인무기의 시장으로 만들고 그것을 팔아먹기 위해서 독재자들을 옹위하여 인류를 파국으로 몰며 제3세계의 80퍼센트를 착취하여 빈민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