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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재와 미래의 과제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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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재와 미래의 과제

이제 우리가 남북 대립관계에 시각을 돌릴 때가 왔다. 지금까지 이른바 제1세계와의 문제에서 우리는 사고하고 반성해왔다. 그런 관계에서 신학을 하고 선교를 했고 또 교류해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저들에게 물들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상관없는 저들의 질문을 우리의 것처럼 했고 그 대답도 그들의 것으로 해왔다.

이제 이 인류가 살 길은 전체가 이른바 저 제1, 2세계가 가는 길을 제동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식민화될 위기에 있는 제3세계와 제휴하여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해야 한다.

백인은 아무리 십자가의 고난을 말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이상 저들에게서 우리를 살릴 사상도 삶의 양식도 기대할 수없다.

제3세계가 우리와 공동된 것은 민중적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저들과 제휴해서 민중의 현장을 서로 보고 듣고 서로 도움으로써 새로운 십자가와 부활의 경험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참된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과 더불어 민족을 위해서는 바로 땅끝까지 가는 구체적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내세운 새로운 이정표를 하나의 새로운 신앙고백으로 인식하고 그 타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면 그것이 성서와 어떤 관계에 있나를 묻겠다.

 

성서의고백

구약 :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직결된 고백이다(신명기 26, 5~9). 이것은 민족적 고백이다.

① 그들의 신앙은 민족사를 통해서한다. ② 민족의 형성은 민중이 기층을 이루고 있다.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랍인, 에집트에서 기식하고 산다. ③ 그 민족형성의 모태는 수난이었다. 억눌리고 괴로움을 당하고 착취당했다. ④ 엑소더스(Exodus)에서 본격적으로 민족 형성이 이루어진다. 그 사실은 다음의 원문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지면서 반복된다.

여호수아 24장 2~13절(아브라함이삭모세 등장, 가나안 정복).

신명 6장 20~24절(간추린 것).

시편 136, 105, 78장(78장은 다윗시대까지 엮어간다).

이 고백을 반복하는 현장과 동기는 아래와 같다.

"만일 후손이 하느님께 받은 훈련과 규정과 법령이 웬 것이냐고 묻거든"(신명 6, 20).

"장로, 어른, 법관, 공무원을 모아놓고." 즉 지배층이 타락하고 제 할 일 잊을 때(여호 24, 2~5).

시편 78장 "내 겨레여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가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어 그 숨은 뜻을 밝혀주리라."

이 고백을 예배의식으로 구성했다. 시편 105장이 그것이다.

 

사회 :어지신 분 야훼께 감사노래 불러라

회중 :그의 사랑 영원하도다

사회 : 에집트인들의 맏아들을 치셨도다

회중 :그의 사랑 영원하여라

사회 :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빼내주셨다

회중 :그의 사랑 영원하도다

 

이상에서 구약은 민족사로서 하느님 신앙을 고백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보았다.

이스라엘의 국권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히 붕괴됐다. 그후 주권과 국토 없는 민족으로 여전히 이 민족적 고백을 반복했다.

신약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사가 붕괴과정에 있을 때였다. 그리스도교는 신약은 이미 탈민족주의적 사상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가볍게 처리해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파견할 때 '잃어버린 이스라엘만'을 찾아가라고 했다.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우리 시대의 말로 바꾸면 '민중적 민족'이다. 예수의 관심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그 민족이었다. 외국선교를 자기의 사명으로 한 바울로도 자기 민족의 바중을 절대시했다. 그는 자기 생명과도 같이 믿는 '그리스도'에서 끊어지는 것과 민족의 구원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민족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하며(로마 9, 2~4), 그의 세계구원의 세계관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이 열쇠가 됨을 천명한다(로마 11, 25 이하). 그러므로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나 바울로의 최후심판에 대한 고백을 민족을 뛰어넘어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 1983년 6월 기독교장로회 총회 주제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