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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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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 밖의 문제와 바울로의 케리그마

반면에 실제문제는 위와 같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고린토전서의 연대는 A.D. 60년 전후로 추측되고 있다. 이후에 마르코복음이 등장한다. 내가 마르코복음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마르코복음이 초대 교회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로서신과 마르코복음의 차이는 초대 교회가 부닥친 문제에 대해 각각 다르게 대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사건을 경험한 초대 교회의 예수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한 궁지에 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예수는 보통사람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에 의해서 정치범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신약성서의 특징을 결정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서구 신학은 초대 교회의 종말론을 보는 척도에 따라 신약성서 안의 신학적인 차이를 말해왔다. 그러나 내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예수의 처형과 로마의 관계를 신약의 자료들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이 죽였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따른다. 이것을 정면으로 들고 나오면 커다란 충돌이 발생한다. 마치 오늘날의 현장과 같은 상황이다. 교회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고민하게 된다. 죽더라도 모든 사실을 다 외쳐대야하는가? 아니면 잠시 참고 선교를 계속해야 하는가? 이때의 로마제국 치하에서 선교를 하려면 쓸데없는 전면적인 충돌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예수의 역사적인 사실을 노출시키지 않은 채 고백하는 것이다.

고린토전서 15장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고백이다. 바울로는 자신이 전해 받은 중요한 사항들을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한 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계파'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제자들과 500명이 넘는 형제들과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 보이셨다(15, 3~7). 여기에서 빠진 것이 있다. 예수는 성서의 기록대로 사흘 만에 죽었다 살아났는데 예수가 언제, 어디서, 왜 죽었는지는 빠져 있다. 이것이 바울로의 케리그마이다. 그리스도론이다. 로마제국과의 충돌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성서의 기록대로"라는 말은 '하느님의 뜻대로'라는 의미이다. 즉 '하느님의 뜻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바울로는 그리스도를 '비역사화' '추상화'시키고 있다.

필립비서 2장의 형성연대는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지만 A.D. 30년 중반에서 40년초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필립비서 2장의 '그리스도 찬가'는 일찍부터 형성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 찬가에도 예수의 사실적인 죽음은 완전히 빠져 있다. 사도행전에 실린 초대 교회의 설교문도 마찬가지이다. 은연중에 교회를 지켜 야겠다는 생각으로 로마와의 정면충돌을 피하려다보니까 비정치화 된 그리스도, 비역사화된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예배의 대상으로 대치되었고, 로마와의 정면충돌도 피하게 되었다. 이 길은 좀 쉬운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바울로의 머릿속은 '세계의 선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울로가 생각한 땅끝은 스페인이었다. 그래서 바울로는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다. 이때 스페인은 로마의 판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바울로는 우선 로마로 가려고 애를 썼다. 로마제국의 판도를 역이용해서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정복하고 싶었다. 굳이 로마제국과 갈등이나 충돌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바울로의 서신에는 예수의 실제적인 삶과 죽음이 빠져 있다. 비역사화되고 추상화된 케리그마, 이것이 바울로신학의 특징이다. 이와 같은 바울로의 케리그마를 오늘날 우리들은 이른바 '교리'로 이어받아왔다. 지금 우리는 놀랍게도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에 대한 교리를 믿는다. 예수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해 일찍부터 형성된 비역사화된 케리그마, 교리를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