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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야고보의 경우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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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고보의 경우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들으시오. 하느님은 세상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여 믿음에 풍요한 자가 되게 하시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야고 2, 5)

여기서 "믿음에 풍요한 자가 되게 하시고"를 빼면, 루가복음 6장 20절 내용 그대로이다. 야고보서 기자는가난한 자를 '선택했다'는 것은 바울로가 쓴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더욱이 루가의 '들의 설교'와 비교할 때, 가난한 자들을 부한 자들과 대립시킨 점이 야고보서와 루가복음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루가와 비교해서 야고보가 선 상황에는 다음 몇 가지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야고보서는 그 공동체가 안과 밖에서 당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며 그런 현장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전통적 '특권'이 흐려져가는 데 대한 항변으로 되어 있다.

둘째, 그가 속한 공동체에 가난한 자가 중추를 이루고 있다("믿음에 풍요한 자가 되게 하시고"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뜻으로 본다).

셋째, 부자 계층이 그리스도인들을 학대하고 법정으로 끌고 갔는 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만큼 가난하고 그렇기 때문에 학대받았다는 점(2, 6)이다.

넷째, 이 부자 계층이 그리스도공동체에 가입하기 시작했으며, 그럼으로써 교회내에까지 경제적 계급이 형성될 우려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서는 이런 변질의 원인이 행위와 유리된 '믿음만'이라는 그릇된 주장에 있다고 보았으며, 행위의 구체적인 초점을 가난한 자의 편에 두고 있는데, 이 점에서 야고보서는 복음서의 숱한 예수의 현장을 다시 살려 현재적인 명령으로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는가난한 자를 하느님이 택하여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했다고 뚜렷하게 말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고 있는 새 세계라면, 가난한 자들은 그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시는 이미 불확실해진 가난한 자들의 역사적 위치를 다시 살린 것이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은 단순히 동정이나 구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새 세계의 주인으로 임명된 이들이다. 그런 뜻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라는 말이 주목된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다. 유다에서처럼 야훼에 의해 선택되었기에 선택된 자를 모욕하는 것은 결국 그 선택한 존귀한 이름을 모독한 것이 된다는 뜻인지, 아니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그리스도인이기에 그리스도인을 모독하는 것은 예수를 모독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단순히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명명을 뜻하는지! 그러나 본문에서 찾는다면 그 나라의 상속 자라는 대명사만큼 존귀한 이름도 없으며, 또 그만큼 지배층에게 모독당하기 쉬운 것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