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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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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

서구의 신약성서 학자들은 현재까지도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역사의 예수보다 우선적으로 다룬다. 저들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만이 복음의 근거라고 한다. 따라서 이런 대전제를 관철하기 위하여 케리그마의 배후를 묻는 것은 불신앙이라고까지 말하며, 그럼으로써 역사의 예수에 대한 물음을 차단해버린다. 이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반론들도 역사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역사의 예수에 대한 회의론에서 배회하고 있었을 뿐이다.

분명히 신약성서에는 이미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군림하고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론이요, 구원론이다. 이 그리스도론, 또는 구원론에는 역사의 예수가 전제되기는 했으나 거의 가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론이 살아 있는 예수를 시멘트 속에 가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바울로의 편지를 위시하여 복음서 외의 모든 문서에서 볼 수 있다. 바울로가 그리스도론을 전개할 때, 역사의 예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으며 흥미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후 5, 16)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그리스도론에는 예배의 대상이 된 그리스도가 있을 뿐, 생동하는 팔레스틴의 예수는 없다. 말하지 못하는 예수, 금관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는 예수, 그것이 바로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비록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비역사화하고 있다. 부활경험 역시 역사적 경험인데도 그것을 비역사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일찍부터 교회내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미 바울로 이 전에 형성된 케리그마인 고린토전서 15장 3~8절, 필립비서 2장 6~11절의 그리스도 찬가 등을 보면 족하다. 이런 것들은 분명히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고백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이미 비역사화 되었다. 예수가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왜' 처형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완전히 은폐되었다. 이같은 그리스도론은 교회를 지키는 이데올로기로서는 큰 역할을 했으나 그 대가는 예수를 침묵시킨 것이었다. 이 그리스도 케리그마 형성의 주역은 누구였나? 제도적 교회의 지도층이 담당했다. 저들은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선교전략으로서 변증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로 예수사건의 추상화를 초래했다.

이에 반해서 예수의 이야기는 전해졌다. 이야기 속의 예수는 이미 고정되어 금관을 쓰고 군림하는 예수가 아니라, 사람과 사귀기를 원하고 그들과 같은 말을 사용하고 그들과 희비애락을 같이하는 예수이다. 마르코복음 편자가 이러한 예수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승했다. 마르코복음에도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되기 이전의 예수의 산 모습을 결코 가리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래아로 돌아가는 예수, 고향에서 배척받는 예수, 많은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부녀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저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먹을 것을 주고, 저들을 박해하고 소외하는 지배층에 저항하여 저들을 옹호하면서 저들도 엄연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선포하다가 마침내 권력자의 손에 무참히도 피살된 예수의 이야기가 있다. 이 예수 이야기에는 비그리스도 케리그마적인 요소가 압도적이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의 이야기를 누가 전승했을까?

그 전승모체는 케리그마를 형성한 주체와는 분명히 다른 계층이었을 것이다. 그 전승모체를 나는 민중이라고 판단한다. 이 민중은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된 예수의 사건을 계속 전했다. 그것은 정치적 압박 아래서 이루어짐으로써 유언비어의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눌려서 햇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마르코 편자가 그 민중의 유언비어를 수용하여 문서화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예수의 산 모습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시멘트에 갇혀 있던 예수, 금관이 씌워침으로써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예수가 민중에 의해서 그 금관이 벗겨지고 시멘트가 부서지자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예수사건의 전승모체」(1984. 10)에서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전승주체와는 달리 예수사건의 전승모체가 민중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