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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논어를 읽으며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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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어를 읽으며

나는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알기 위해 유교의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내 나름대로 읽으며 풀이하는 데 열중한 때가 있었다. 공맹(孔孟)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모든 행동의 표본으로 들어왔으므로 그분들을 한국의 선조로서 알 정도로 친근했는데도 막상 어떤 의식 아래서 읽어가려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정치구상이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맞을 리 없고 복고적 체제주의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공자가 불의와 타협할 수 없다는 고고한 그의 자세에는 역시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물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고 팔을 구부려 베개를 삼는 가난 속에서도 가히 즐거울 수 있다고 하면서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이라고 했는데, 이 후반의 뜻을 풀이하는 데는 좀 고심했다. 그대로 읽으면 "불의한 방법으로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이다. 이대로 읽으면 부자연스럽다. 불의, 부정으로 얻은 부귀는 절대 타기한다거나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허무한 것이라는 뜻이라면 그저 그런 욕심은 없다는 정도일 뿐이다. 이런 정도로는 은둔적 도사(道士)는 될지언정 '정'(政)을 논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이 발언을 그가 선 역사적 현실에서 한 것이라는가정하에 풀이해보았다.

공자는 불의와 부정이 횡포하는 풍토에서 정(政)은 정(正)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해직되어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졌으나 결코 그렇다고 해서 그는 실의에 빠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위의 글귀를 오히려 그런 자리에서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고 그것의 손발이 되어 부(富)할 뿐 아니라 높은 관직에 앉아 귀(貴)로 사는 자들에게 "네가 반석 위에 앉은 줄 아느냐, 아니 구름을 타고 있는 거야"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보면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대목이 또 하나 있다. "독신호학(篤信好學)하고 옳은 일을 죽음으로 지키고"(守死善直)라는 데까지는 성현다운 말씀인데, 그 다음에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危邦不入), 난(亂)한 나라에서는 살지 말며(亂邦不居), 세상에 참이 있으면 나타나 활동하고(天下有道則見), 참이 없으면 은둔해서 살라(無道則隱)"는 대목에 와서는 저항감을 느꼈다. 이거야 시류에 따라 살자는 태도지 혁명가는 물론 개혁자의 자세도 못 된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상이 잘되면 나타날 것 없고, 세상이 잘못 가면 정말 그의 말대로 자기를 죽여 인(仁)을 이루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의 해석에 따라서는 이런 거부반응을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은 "나라에 도(道)가 있는데 가난하고 천하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대목이다. 이것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하여간 부끄러움의 차원이 다르다는 데 주목할 바가 있다. 불의한 정권에 의해 썩어빠진 나라에서 치부하고 귀한 자리에 있다면 바로 그 권력과 야합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니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고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아니 마음이 평안할 수 있는가? 내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기 때문―소극적 항거―에 결국 '탈락'되어 자진해서 백이숙제(伯夷 叔齊)처럼 더러운 천하를 하직하는 것을 절개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관념의 희롱이 아닐까? 아니, 그렇게 해서 마음 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백이숙제도 그들이 산중에 숨어 캐먹던 산나물은 주(周)나라의 것이 아니었던가하는 비판을 들었었다. 이게 눈감고 야옹하는 것이지 뭔가!

불의와 결탁해서 부귀를 누릴 수 있는 풍토라면 벌써 잘못된 세상 이요, 그 따위 놈들이 지배층에 속한 사회라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그만큼 무수할 것이다. 그중에는 특히 불의와 타협할 수 없는 양심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저것들처럼 말을 재빨리 갈아타는 재주도, 그렇다고 자신들을 억누르는 힘에 대항하여 대결할 힘이 없는 약자가 많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현장에서 몸을 피해자기만 깨끗하면 된다는 자세는 양심을 들먹일 자격조차 없다. 그는 불의부정한 놈들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게 한 책임을 적어도 일부는 져야 할 것이며, 그런 세상과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야만한다. 더욱이 정(政)을 말하고 민족을 논하면서 그 따위 은둔자적 자세를 합리화하는 일은 결코 병행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유교적 폐습인지 모른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는 데, 이 셋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엄연한 단계적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게 벌써 비실존적이다. 너와의 관계, 세계와의 연대의식 또는 책임의식을 뺀 '수신'이 어떻게 가능한가? 자기를 조종하고 극복하는 힘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완성된다는 사고는 틀린 것이다.

'수신'이란 삶이 계속될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나는 공자의 15세에 학(學)에 뜻을 정하고, 30세에 확고히 서고, 40세에 더 이상 어떤 유혹에도 동하지 않고, 50세에 천명(天命)을 알고……하는 짧은 연대적 자서전을 글자 그대로 믿다가 콤플렉스만 생겼었다. 사다리 같은 그런 삶은 없다. 한 단 한 단 처리하는 삶, 학교의 학년제 같은 삶은 없다. 15세에 뜻을 세우나 50세에 무너질 수 있고, 그래서 쓰러질 수도 있으나 다시 세울 수 있고, 40세가 아니라 70세에도 언제나 유혹에 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도전이 있고, 그래서 쉬지 않는 싸움이 있으며, 그래서 '이만하면 됐다'는 순간은 오는 법이 없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면 그것은 자기 기만이며, 삶을 학년제 학교로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도사연(道士然)한다는 게 바로 그러한 착각에서 온 것이라고 본다.

내가 '삶에는 연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30대를 넘어서부터다. 학생과정을 거치는 사람으로서 유혹받기 쉬운 것은 삶의 어느 토막까지를 연습하는 기간으로 상정하는 버릇이다. 학생시절을 삶의 연습기간으로 사회에서도 관용하고 있고, 그러기에 자신도 언제나 수정하고 반복할 수 있는 연습기간으로 자기 행위에 대해서 관대하기 쉽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 어느 순간도 연습으로 내 삶을 카운트하는 것은 없다. 모두가 바로 나의 삶의 현실이었고 그 순간순간이 모두 점철되어 오늘의 나를 아루었다. 남이 그렇게 규정한다는 사실에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삶의 지각생이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삶은 바로 역사현실과 직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