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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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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서에서 본 한국 교회사

한국 교회사는 두 면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는 재래적인 지도층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신도의 편에서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사의 지도층은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그 성격이 정립되었다. 약간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저들은 실상 제도권에 속하지 않았다―지도층은 선교부의 정책에 충실한 하수인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선교부의 계획 안에 든 역할이다. 선교부는 그들을 수 족같이 부리기 위해 길러낸 것이다.

그들에게 공부할 기회도 주고 생활도 지원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지적 수준을 한정한다는 것이다. 가령 숭실학교에서 학생들이 영어를 가르쳐줄 것을 요구했더니 선교사는 "사탄의 시험에 들었으니 기도합시다"라고 했다는 웃지 못할 토막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초기의 저들의 정책을 잘 반영한 것이다. 평양신학교는 설립되었으나 신학이 아니라 전도하러 나갈 단기 사관학교였다. 교육기간은 앙H월뿐으로 나머지 기간은 나가 전 도하는 일이었다. 하여간 그들의 수준은 자신들(선교사)보다는 낮 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신학교육을 독점했으며, 제힘으로 미국에서 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경원하여 발도 못 붙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선에 충실할 보장이 있는 자만 몇 사람 기용했는데, 그들의 정신상태가 오늘도 계승된 것이 바로 한국 교회는 맨 처음, 즉 선교사의 독무대시대의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이에 대해서 평신도는 민중이다. 이들의 특징은 이미 위에서 지적한 대로 민중적 한과 민족적 염원을 저들의 희망의 내용으로 하므로 성속이나 정교분리 따위를 모른다. 이것이 바로 성서적인 전통이다. 구약에는 이른바 성속의 구별이 없다. 이스라엘의 민족사가 바로 하느님의 구원사지, 그것을 떠난 구원 따위는 모른다. 그런데 그 민족사가 바로 민중사인 것이다. 에집트의 민중, 합비루가 그곳에서 탈출하여 반군주적 공동체를 이룩한 것이 야훼신앙을 확립한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이다. 이 민중운동은 군주세력과의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다가 다윗에 의해 지하로 들어가버리나, 저들을 계속 대변한 것이 예언자들이다. 그후 반민중적 정권은 분단되었다가 다 망하고 모두 나라 잃은 민족으로 전락했으며, 계속적으로 식민지의 굴레 속에서 민중적 민족이 된 것이다. 여기 식민제국을 거쳐 근대적 성격을 띤 로마제국이 지배한 때에 예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예언자의 전통에 섰으며, 민중운동의 사상적 결집인 묵시문학적 풍토를 그대로 수용하고, 반예루살렘의 상징이며 민중의 현장인 갈릴래아에서 민중을 편파적으로 선택했다. 바로 그러므로 그는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죽임당한 사건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사건이 바로 민중운동이라는 태풍의 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제도적 한국 교회사는 철저하게 반예수적인 길을 걸었다. 이 한국 교회가 이제라도 제 길을 걸으려면 바로 이 민중운동의 대열에 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서의 전통이며, 동시에 교회의 구성원인 민중의 염원으로 합류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정당한 길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사는 성서의 민중 전통과 한국 교회 구성원들의 염원을 잇는 시각도 조명해야 할 것이다.

 

■ 1986년 10월, K.S.C.F.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