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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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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의 민중이야기―'우리'

맨 처음에 기록된 복음서인 마르코복음은 예수의 공생애 출발을 다음과 같은 몇 마디로 성격화한다.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는 갈릴래아로 갔다(1, 14).

세례자 요한도 에쎄네파와 같이 금욕적 생활을 하면서 한 집단을 형성하고 민족혁명을 부르짖던 사람이었다. 예수도 그의 운동에 동의하여 그에게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커다란 비중을 두었는데, 세례자 요한은 갈릴래아 지방의 봉건영주인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이유는 헤로데의 불륜을 비판한 것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민중소요죄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바로 그때를 그의 공생애 첫발을 내딛는 때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는 세례자 요한을 체포한 안티파스의 지배권인 갈릴래아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예수는 자신에게 세례자 요한과 같은 운명이 닥쳐을 것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예수의 비장한 결의와 죽음의 각오를 단적으로 잘 나타낸 것이다.

갈릴래아! 이 땅은 농노들이 군주에게 반란을 일으켜 종족동맹을 형성했던 본거지요(군네벡, 『이스라엘 역사』, 한국신학연구소, 63면), 유다 중심적 사회에서 계속 천시되어왔으며, 600년 이상 계속된 분단의 비극으로 이방인 산하에서 고초를 겪은 곳이다. 땅은 비옥했지만 예루살렘을 위시한 도시의 부재지주들 때문에 농민들은 땅 없는 소작인 또는 품팔이로 전락했으며, 더욱아 삶의 근거를 빼앗긴 민중이 몰려들어와 마침내 암 하 아레츠의 중심지로 정평아 난 지역이었다. 예수시대에는 바로 이 암 하 아레츠들이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강도(Bandit)로 둔갑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젤롯당이 형성되어 민족주의적인 열기를 뿜는 그런 지역이었다. 예수는 갈릴래아로 가되 바로 이 민중에게로 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이 민중과 더불어 살며 사건을 일으켰다.

예수의 주장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 집약할 수 있다. 이것은 묵시문학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종말적 성격이 뚜렷하다.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시대는 영원히 가고, 하느님의 주권만이 인정되는 새 세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 종족동맹의 성격과 다름없다. 그것은 동시에 당시 민중의 염원을 집약한 것이기도 하다. 예수는 민중의 무조건적 호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역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이 민중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런 표현은 예수는 주체요, 민중은 객체라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민중신학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예수의 민중이야기에는 나, 너가 없고 '우리'만이 있다. 당시의 서술방법 그대로 예수를 중심으로, 예수를 구심점에 놓고 서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는 주체이고 민중은 객체라는 관찰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는 등장하자마자 곧 민중에게 둘러싸인다. 여기서부터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난다. 그런데 예수가 어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들에게로 나아갔다는 인상은 없다. 적어도 예수는 프로그래머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민중에게 끌려다닌 인상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끌리는 것이 끄는 것이고, 끄는 것이 끌리는 것이다.

그가 일으킨 사건 가운데 소경이 눈을 뜨고, 정신병자가 낫고, 앉은뱅이가 걷는 등 병이 치유되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그런데 예수가 의도적으로 병을 고치려고 나섰다는 느낌은 없다. 주도권(initiative)은 병자 자신 또는 그와 함께, 그의 친척 아니면 그의 친구들이 취한다. 예수는 수동적으로 그들의 요청에 응한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한다. 하나는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마르 5, 3411, 52; 마태 9, 209, 2915, 28; 루가 8, 4817, 1918, 42)는 선언과 또 하나는 그들의 고향 또는 집으로 "돌아가라"(마르 5, 19; 마태 9, 7; 루가 5, 148, 39)는 권고이다. 그들이 병에서 해방된 것은 예수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병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객도식은 지양된다. 예수를 따르겠다고 나서는 자들을 향하여 거의 예외없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한 것은 예수가 저들의 사회적 복권을 중요시했다는 증거이다. 저들의 병은 저들을 소외당하게 하였다. 아니, 소외당함 자체가 저들의 병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본향에 돌아갈 권리를 부여받은 것, 아니 쟁취한 것이야말로 치유사건의 핵심이다.

이렇듯 민중과 더불어 살던 예수는 마침내 그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돌진하였다. 복음서에는 왜 그가 최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진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런데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시기는 바로 엑소더스 즉 에집트에서 해방된 그때를 기념하는 해방절이었다. 그때는 온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운집하여 있었다. 그는 낮에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다가 밤이면 시외로 빠져나가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곧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가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낮에는 많은 군중 틈에 자신을 묻고, 밤에는 어두움에 자신을 묻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한다. 그리고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놓이지 않을 만큼 철저히 무너지리라 저주한다. 예루살렘! 많은 예언자의 피를 흘리게 한 예루살렘! 철저히 진실을 거부한 예루살렘! 성전! 야훼를 감금한 감옥! 다윗왕조의 체제를 유지해주기 위해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 허상! 지금은 민중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본산이 된 복마전! 그것은 이제 영원히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반(反)예루살렘, 반(反)성전적인 행동은 민중운동의 클라이막스의 전초전이었음이 틀림없다.

예수는 마침내 체포되었다. 로마제국에 의해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 그의 좌우에는 '강도들'이라고 번역되는 레스타이(λησταί)가 함께 처형되었다. 그들이 젤롯당원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데 큰 이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제국은 예수를 젤롯당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처형했을 수 있다. 로마제국은 그를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처형했다. 그것은 대로마제국에 대한 정치적 반란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그의 처형과 함께 그가 이끄는 민중운동은 끝났다. 그러면 무엇이 남았는가? 그는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가? 없다! 복음서는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다 도망갔다고 한다. 해방절에 많은 군중이 모였지만 그가 재판받을 때 그의 편에 선 자들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철저한 패배인 것이다.

그러나 일군(一群)의 예수의 민중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저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계속 증언했다. 그들은 공적인 문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나갔다. 저들이 전하는 예수사건은 집권층에서 보면 유언비어였다. 유언비어는 공포분위기에서 진실을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로마제국의 판도 안에서, 로마제국이 죽인 이를 '메시아'라 하고, 그를 정죄한 재판은 불법이었다는 주장을 힘 없고 아름없는 민중이 공공연히 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그 사건을 전하면서 저들은 재기했다. 타다 남은 재에서 불이 일어나듯 예수의 민중은 일어났다. 패주했던 저들은 다시 모여들었다. 100여 명에 불과했던 무리가 대번에 3천여 명으로 불어났다는 기록이 있다(사도 1, 152, 41). 공포로 움츠러들었던 그의 민중이 그를 죽인 권세에 정면으로 맞서 사자후를 토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예수를 처형한 지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의 민중은 예루살렘으로 집결했다. 예수를 처형한 고장! 저들이 혼비백산하여 등을 돌렸던 고장! 갈릴래아 사람들을 천시했을 뿐 아니라, 저들을 위험분자로 경계하는 고장! 바로 이 고장에 몰려든 군중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예수를 죽인 이들을 고발한 것이다. 그런데 저들의 고발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들을 충동했다. 청중들은 "저들은 갈릴래아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저들의 말이 우리 말로 들리느냐?"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것을 성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라고 한다. 이날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바로 갈릴래아 민중이 예루살렘의 한복판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는 데 있다.

무엇이 이런 전환을 가져오게 했는가? 민중이 예수가 부활한 것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이런 전환이 일어났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부활한다'는 뜻의 단어로 ἐγείρω가 있다. 이 말은 '일어난다'는 뜻으로도, '봉기한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부활경험은 저들을 죽음에서, 절망에서 일어나게 하였다. 저들은 죽은 예수가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저들은 예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다. 예수가 일어났다는 신념이 저들을 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일어난 예수의 민중은 로마가 약소민족을 침략정복하기 위해서 만든 군사도로를 역으로 이용하여 로마의 점령도시를 속속 점령해갔으며, 마침내 로마에까지 침투해들어가 로마제국을 쓰러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인으로서의 예수도 가고, 국가로서의 이스라엘도 파멸됐으나 예수의 민중만은 계속 사건을 일으키면서 전염병 같이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