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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백성 옳은 민족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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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민중과 민족
옳은 백성 옳은 민족

우리는 흔히 민중을 가리켜 '백성'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백성'이라는 말은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말이다. '백성'이란 말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동떨어져 있는데, 그 말을 쓰는 경우에 실제로는 그와 같은 개념의 틀에 갇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백성'이란 백 가지의 성(姓)이다. 이 말은 봉건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왕은 이름없는 신하들 가운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성을 '하사'하면서 이와 함께 벼슬을 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백관'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세월을 거듭하는 동안에 모든 가문에게 주어진 까닭에, 마침내 그 본뜻은 낡고 닳아빠져 '백성' 하면 곧 왕의 밑에서 그의 '은덕'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뜻의 '민'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이란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뜻으로 쓰여지게 되면서 다스림을 받고 섬기는 계층을 가리키게 되어, 마침내는 벼슬아치와 가름하여 관존민비의 사회풍토를 함빡 담은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다만 우리의 경우만이 아니다. 봉건제도가 더 분명한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 같은 나라에서도 '학쇼'(백성)라고 하면 농노나 농민을 가리키는 말이며 천대받는 계층을 상징하였다. 또 성을 '받는' 일은 우리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상놈에게는 성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성주나 군주 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의 일을 했었다. 빵구이, 방아꾼, 갖바치, 닭치기, 목수 따위로 '신하'의 노릇을 하는 동안에 그직업에 따라 가명을 '하사'받은 것이 나중에 얼추 그대로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 시대에 우리말의 '백성'에 해당되는 '폴크(Volk)'라는 말은 우매한 민중이나 무리, 군주를 위해서 싸워도 주고 일도 해주는 천한 계층을 일컫는 말이었다가 18세기에 들어와서 다른 종족과 가름하는 뜻으로 쓰여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폴크'는 '토착민'이라는 뜻 외에도 원시적이고 세련되지 못 한 사람이라는 뜻을 내비치는 말로도 통한다. 이를테면 '백성'이라고 할 때에는 지배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부림받는 무리 또는 섬기는 무리로 여겨져온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차츰 자신들도 그들을 지배하는 자와 같은 사람임을 깨닫게 됨에 따라 신분적인 권위 같은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지배층은 그들을 억눌러서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협조를 얻어야만 자신들이 군림하는 공동체(민족 또는 국가)에 수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점차로 백성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얽매여 그것에 충성할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민족 또는 나라라는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그것을 이루고 지켜갈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서 백성이라는 말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민' '인민' 또는 '국민'이라는 뜻으로 바뀌어 민족이나 국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실제로 생존권을 비롯하여 그의 삶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을 누릴 권리와 인정받을 권리는 결코 어떤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타고난 것이다. 사람의 권리는 타고난 것 또는 하느님이 준 것이므로 적어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는 분명한 사실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이르는 모든 것을 형성하고 주도하고 창조해가는 인격임을 알게 되었고, 그런 바탕 위에서 민주주의나 민주사회라는 체제가 생기기에 이른 것이다. 링컨이 민주주의를 가리켜 "민에 의한", "민을 위한", "민의" 국가 또는 정부라고 한 정의는 본디의 '백성'이라는 뜻과는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사람의 자의식은 근세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 은연한 가운데 권력으로부터 멸시와 혹사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끌려가는 민에게 깨우침을 재촉했을 뿐만 아니라 다스리는 자들에게도 경고를 거듭했었다. 이것은 세계의 어디에서나 있었던 현상으로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아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기본자세는 지켜볼 만하다. 그들은 비록 왕정체제를 소유하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립을 받는 계층적인 질서를 비켜갈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민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백성이지 왕의 것은 아님을 뚜렷이 하여 정치질서와 백성의 근원적인 소속을 분명히 가름해왔다. 그들은 정치체제로서의 왕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며 전쟁에서 왕의 명령을 따라서 그의 지휘를 받으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전쟁마저도 신의 뜻을 이룬다는 생각에서 '성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비록 '민족주의'는 몰랐으나, 백성이라는 우리말에 담긴 뜻처럼, 왕에게서 성을 받아야 비로소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거나 그 때문에 왕에게 충성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노예적이 되는 일은 없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근본 이해가 기독교를 타고 서구에 건너왔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는 우리보다 비교적 일찍부터 민주의식과 제도가 발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