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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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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적'이란 어떤 것인가

'한국적'이라는 말은 한국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보다는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과의 예속 관계는 문화적 차원에 국한되었으나 일제의 군사적 침략에 의한 한 반도의 강점은 저항적 민족주의를 형성하게 하였고, 민족의 주체성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현시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은 오늘날 서구의 지배문화에 대해서 제3세계가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찾겠다는 것과 맥을 같이하며, 서구 문화에 너무나 종속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민족적 자기 반성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것에 대한 주인의식의 회복과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실천적 반성과도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최근 일본은 경제적, 군사적 침략이 아니라 문화적 침략을 노리고 있다. 즉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패권확립을 위해 경제적, 군사적 침략이 반감과 저항을 불러일으킴을 인식하고 문화적 침략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문화교류라는 미명하에 이질감을 해소시키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돌이켜보면 서구 세계가 한국 문화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일제가 끼친 부정적 영향은 너무나 지대하며 아직도 그것을 주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을 주체적 문화가 없는 민족으로 왜곡하여 세계에 소개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민제국에 의한 한국 민족문화의 왜곡에도 문제가 있지만, 오늘 우리는 민족문화의 전통이 여러 가지 형태로 부정되는 현실과 또 제국주의적 문화 침두와 정치경제적 종속의 위협 앞에서 한국 그리스도교가 민족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반성하고, 새로운 민족문화 창조를 위해 그리스도인이 어떤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학의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학이란 언제나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신학과 그리스도인은 민족적 자각에 도달하고 있는 집단과 연대를 맺는 일차적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인 스스로 한국인의 정체 형성에 부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을 발견하고 비판하며, 한국적인 것을 말살해 온 데 대해 참회하는 의미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찾는 데 적극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나서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적 신학이란, 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크게는 서구 신학에 대한 반명제(反命題)로 제기 된 것이다. 한국적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가 가능한 것은 지금까지 서구인이 전파한 그리스도교(문화)에 의해서 체질화된 그리스도인 상이 본래적인 것이 아니고, 그것은 서구 문화를 매개로 한 그리스도교사상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음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안티테제로 우리 것을 찾아야겠다는 것이 신학의 일차적 과제이다. 여기에는 또한 서구 세계가 바르게 그리스도교를 해석하지 못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서구에 의해 형성된 그러한 모습일 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 본래의 메시지와 서구 문화, 그리스도교와 서구 문화를 분리시켜 인식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곧 서구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해왔다. 결국 한국적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 속에는 민족적인 반성과 자각이 내포되어 있으며, 동시에 본래의 그리스도인이란 서구 세계에 의해 주장된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자각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자각과 반성은 따지고 보면 최근의 현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반성과 비판 역시 서구적인 언어와 개념을 통한 것이었음을 인식함으로써 하나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질문을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질문은 언제나 대답을 결정한다. 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의 문제상황 속에서 우리다운 언어와 개념으로 질문하면서 성서에 도전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서구 신학이 성서를 잘못 해석해왔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들이 독점해왔던 성서해석권에서 탈출하고 자유로워져 우리의 물음을 가지고 성서에 묻고, 우리의 눈으로 성서를 읽고 해답을 찾고자 한다. 이것이 한국적 신학 형성의 토대이다.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의 모색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가 '한국적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각을 구체적으로 갖게 된 것은 이전의 토착화 신학이나 문화신학과는 달리 정치사와의 관계에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상을 묻는 맥락에서 문화적 측면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가 관념적 상부구조가 아니라 한국 민족의 삶의 모든 국면을 총괄하는 그러한 문화라는 사실로 재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전제하면서 오늘 우리는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을 묻고자 한다.

한국 그리스도교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지금까지 한국 그리스도교가 한국 문화를 절단하면서 다른 문화를 이식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반성에 우리는 더 이상 비겁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한국 문화와 역사, 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역기능적이어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런 것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훌륭 한 그리스도인의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것들은 배척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적어도 근본주의신학으로 무장한 서구 선교사들이 전해준 그리스도교는 그러했다. 모든 것이 교리로 절단되었다. 덜 한국적일수록 더 진실한 그리스도 인이라는 기현상이 팽배했다. 전통도 문화도 무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한국 그리스도교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한국의 민족사적 문제상황 속에서 한국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정치현상이었다. 31운동에서, 1960년대 한일국교정상화 반대투쟁 속에서, 그리고 1970년대의 인권옹호와 민주화를 위한 싸움의 현장에서의 만남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경우와도 달랐다. 이것을 보다 분명히 인식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의 반파시즘 신학자 본회퍼는 그리스도교의 무능의 원인을 복음과 문화, 하느님의 계명과 국가의 법, 교회와 국가의 미분화에의 한 혼선에 있다고 보았다. 그것이 당시 독일의 현실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까지 세속화 신학의 창시자로만 생각되어 온 본회퍼의 이 면을 재발견할 수 있다. 즉 이른바 그리스도교화된 세상(정치), 세속화된 교회가 본회퍼에게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복음적이어야 한다, 교회다워야 한다는 과제가 본회퍼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였다. 히틀러가 하느님의 섭리를 주재한다고 나서고, 교회가 나치당과 야합한 상황에서 세계도 무신적이 되고 교회도 무신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본회퍼가 말하는 '하느님 없는 세계'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곧 정치세력과 야합하여 존립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될 때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교회와 세계, 복음과 문화가 철저히 구분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세계의 통일이 이루어질 때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본회퍼는 이른바 패권주의적 파시즘 문화와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분리할 것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의 상황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화된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그리스도교가 한국의 문화권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지금', '여기서'의 신앙적인 결단이란 무시간적, 무공간적인 것일 수 없다. '한국적'인 것과는 이질적인 것으로서의 그리스도교가 한국 문화권에 무시간적, 무장소적인 보편적 진리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더 나아가서 문화적 차원에서 인식할 때에도 그리스도교 수용의 주체가 개인이라기보다는 운명공동체적 민족집단이라는 사실이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서의 모든 물음과 대답은 집단적 언어와 표상으로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적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미리 전제해야 할 것은 히틀러나 오늘의 신식민주의 세력과 같은 패권주의, 파시즘, 제국주의의 민족 이해와는 질적으로 다른 제3세계의 민중적 민족주의의 민족 이해이다.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민족개념을 민중적 시각에서 파악한다. 즉 민족의 주체를 민중으로 보고, 그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구조와 외세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는 것을 민족의 과제로 삼는다. 민족적 민중, 민중적 민족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이 일하는 구체적인 장(場)도 '민족적 민중', '민중적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한국적 그리스도인 상의 모색은 눌리고 착취당하는 민중과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하느님 앞에 정직하게 서려는 노력과 병행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적 민족', '민족적 민중'이 하느님의 계시를 수용하는가장 구체적인 장이라는 명제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