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_A_6s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

한국적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구명하는 데 우리는 어떠한 기본범주와 방법을 고려해야 하는가? 우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인이 된 것이 아니고, 한국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이전에는 사실 한국인에서 그리스도 인으로 이적(移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란 세상적 구현체요 문화적 형태와 문화적 공동체의 성격을 취할 수밖에 없다. 즉 문화적 옷을 입고, 문화적 내용을 문화적으로 표현하게 되어 있다. 서구 그리스도교는 서구 문화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한국의 문화를 제거하고 서구 그리스도교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갓 쓰고 양복 입은 꼴을 보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문화의 툴 속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를 인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그리스도인은 한국 역사에서 아무 의미 없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역사 안에서(문화의 틀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자기 정체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참 한국인이 된다는 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에서 재이적하여 한국인이 되는 전향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소로킨(Sorokin)의 문화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더 심화시켜 이해하고자 한다. 소로킨은 문화현상을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유기적 상호관계 없이 섞여 있는 것으로서 그중 하나 혹은 둘이 없어도 치명적인 것이 아닌 '집성적 병존'.

둘째, 여러 가지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어떤 주체와 관련하여 개별적인 연관을 맺는 '간접적 공존'(내가 지니고 다니는 손수건, 만년필, 주민등록증, 도장 등등).

셋째, 외적 조건과 강제에 의해 조건부적으로 집성되는 '타율적 집성'(이것은 조건이 사라지면 흩어진다).

넷째, 여러 가지가 각기 연관을 맺으면서 어떤 주체와도 유기적으로 관계를 갖는 '유기적 공존'.

이러한 소로킨의 문화현상의 분류에 비추어 한국의 문화사를 인식 해보면, 한국에 과연 '유기적 공존'의 문화공동체가 존재했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지배계급의 상부문화는 역사적으로 모두 '집성적 병존'의 문화였다. 또 유교와 불교는 마구잡이로 섞여 있거나 '타율적 집성' 관계를 유지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간접적 공존' 문화에도 못 미쳤다. 혈맥이 막혀 서로 피가 통하지 않는,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던 그러한 문화들을 굳이 한국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한국의 문화라면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의 삶과 직결된 필요불가결한 문화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 위에서는 그러한 문화가 없었는가? 아니, 민중은 '유기적 공존'의 문화를 창출하고 계승, 발전시켜왔다. 즉 한국 민중은 유기적인 문화공동체를 형성하여 이 땅의 살림살이를 떠맡아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문화의 혈맥이다.

한국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수용되어 또 하나의 '집성적 병존' 문화로 존립하려 한다면 한국 민족사에서 유교와 불교가 걸었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한국 그리스도교의 한국 민족문화사적 과제가 있다. 즉 '집성적 병존'의 지배계급의 문화를 변혁하여 이 땅의 살림살이를 떠맡아온 기층 생산계층의 '유기적 공존'의 문화에 봉사하는 책임은 이제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불교유교그리스도교 등이 '간접적 공존' 상태에 있는 오늘날의 종교 다원주의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한국 문화의 '유기적 공존'을 이룩하겠다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을 때에야 비로소 '한국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자부심과 책임과 주체의식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한국적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에 존재하는 일체의 문화를 민족공동체에 봉사하는 유기적 문화로 만들겠다는 자부심을 가질 때 한국적 그리스도인을 주장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추호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문화적 패권주의 혹은 제국주의적 발상이 아닌가하는 반론을 불러일으키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한국 문화와 유기적 공존을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즉 지배하는 방식이냐 아니면 종으로서 봉사하는 방식이냐, 민중의 자세이냐 지배자의 자세이냐가 문제이다.

이제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와 한국 문화라는 두 이질적인 것을 통전시키는 촉매적 역할을 주체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 여기에 필요한 하나의 범주가 문화요, 그것도 민중문화이다. 그것은 문화주의자들의 개념과는 달리 삶과 노동과 놀이를 주체적으로 통전시키고았는 민중의 문화, 유기적 문화공동체의 민중문화를 의미한다. 문화란 삶과 노동의 구체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생산주체가 아닌 사람에게는 문화가 없다. 있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집성적 병존', '간접적 공존' 혹은 '타율적 집성'의 문화일 뿐이다. 진정한 문화는 '유기적 공존'의 문화, 노동과 놀이, 삶과 초월이 공동체적으로 통전된 진정한 문화이며, 이 땅의 살림살이를 주체적으로 떠맡아온 민중의 문화이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올바른 문화 형성을 위해 주체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