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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by 운영자 posted Dec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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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족문제를 어떤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하나

민중의 민중성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고, 민중의 생명력을 억누르는 것은 모두 철거되어야 해요. 생명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것, 싸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지, 그 생명이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민중이 생명의 원천, 근원이라고 봐요. 민중이 생명력을 발휘해야 민족도 사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깥에서 줄 수 있는 게 아니고, 내적인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를 형성하고 앞으로도 스스로를 유지해나가는 것이겠지요.

제가 민중신학과 관련해서 가진 첫번째 공개강연 주제가 '민족민중교회' 아닙니까? 거기서 저는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어도 민중은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정말 실재하는 것은 민중이고 민족이란 대외관계에서 형성된 상대적 개념인데, 언제나 내세우는 것은 민족이었고 민족을 형성한 민중은 계속 민족을 위한다는 이름 밀에 수탈상태에 방치되어왔다"고 말한 적이 있죠.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지요. 그런대 이것을 억누르고 민족이라는 이름을 빌려 민중을 수탈하고 외세와 결탁해서 무엇인가 해보려는 것은 절대로 성공 못해요. 그렇게 되면 민중의 생명력은 억눌리게 되지요. 어쨌든 종속적이고 외세의존적인 상부층, 민중에 의해 추대받지 않는 세력 들을 배제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지요. 그리고 우리 민족의 문제도 민중이 스스로 해결하는 거지, 다른 제3자가 하려고 들면 민중의 힘을 죽이고 민중을 의존하게 만들고 말 거예요. 이웃나라와 공존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우리를 침해하거나 규정하는 외세를, 이미 외세화된 한국 사람까지 포함해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지금까지 제국주의는 민중적 민족들을 억눌러 힘을 못 쓰게 하고 가두어놓았는데, 요즈음 민중적 민족들이 이를 헤치고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마치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고무적인 일이에요. 이런 면에서 우리 민족, 우리 민중은 때를 만난 거죠. 그러나 제힘으로 독립과 통일을 달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 예속될 수밖에 없으니까 글자 그대로 생명의 본연의 상태에 돌아가서 생명의 원천인 민중이 주도적으로 독립과 통일을 이룩해야 할 거예요.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동등한 관계에서 국제교류를 하게 되면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절대로 안돼요. 제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해요. 모든 것을 민중에게 맡기라는 것이죠. 민중은 고난 가운데서 투쟁하며 생명력을 키워왔으니까, 민중이 자기를 찾고 그 민중성을 통해 이 민족을 산 민족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경제제도가 지배적인 사회가 되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자본주의문제는 민족문제의 해결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또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 공동체의 대안모델이 필요할 텐데, 이와 관련해서는 사회주의의 문제도 검토해야겠지요.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민중은 지배를 받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지요.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무엇인가가 매개되어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것도 원하지 않죠. 원래 생명 자체는 그런 거예요. 그 인간관계가 타락하여 자본주의를 낳고 다시 자본주의가 인간관계를 매개하면서 잘못된 세계가 나타난 것이지요. 사회주의의 문제가 오늘날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저는 엘리트가 민(民)의 이름으로 세력을 잡은 다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를 공언하면서도 민이 개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 큰 병폐라고 봐요. 아무튼 미래의 세계에서는 정치적으로 민 이 최대로 정치과정에 직접 개입하고, 민의 관계가 소통되어야 하리라고 봐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는 절대로 안 돼요.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철저하게 소외되고, 자본관계가 그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지요.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제로 발전하면서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므로 이 점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가 되고 있죠. 우리 한반도 상황으로 돌아와서 좀더 말해보면, 이남은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하고 있고 이북은 형태야 어떻든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해왔는데, 이북이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을 받아 이제까지의 노선을 수정한다고 선언해도,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불러일으켰고 레닌에 의해 실천된 사회주의의 기본정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또 죽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주의의 기본정신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역사 속에서 작용을 하리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차적인 적은 자본주의예요. 저는 이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도전을 끝끝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는지 몰라도, 하여간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워 인민의 자발성을 드높이고 있는데, 자본에 의해서 인간을 분열시키는 일에 저항하면서 평등사상을 옹호하는 사회주의의 기본정신은 가장 성서적이고 가장 인간적이지 않아요? 민중이 원하지 않는 것, 인위적인 것에 계속 도전해서, 자본주의체제가 완전히 변질되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그것도 민중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겠지만, 사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의 여러 가지 모순들을 극복하면서 사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을 다른 형태로 되살려야 할 거예요. '제3의 길'이라는 말에 대해 의혹과 비판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나, 앞으로의 과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는 것이라고 봐요. 그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실현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민중 자신이겠지만, 지식 인들이 그 모델을 제시해주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한 내어놓고 봉사한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일이겠지요.

▶ 그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은 민중의 민중성이 실현되고, 민중의 생명력을 가장 풍부하게 발현하는 것일텐데, 그러한 공동체를 나타내는 지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