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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수난

by 운영자 posted Oct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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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수난

십자가는 남을 위한 수난의 현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억울함'을 말없이 당한 수난의 현실을 상징한다.

십자가를 진 예수는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네 십자가를 지고…"라고 했다. 네 십자가란 남을 위해 져야 할 네 책임이란 뜻이 된다.

그러나 뺄 수 없는 또 하나의 뜻은 '억울하게 수난당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본의와 기소 내용이 일치되면 억울한 게 없다. 그러나 자신의 본의가 가리어지고 어처구니없는 죄목으로 누명을 썼다면, 그것처럼 억울할 게 없다. 그야말로 십자가의 수난이다.

남을 위하여 하나의 행위를 결행할 때 수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저가 져야 할 십자가의 뜻을 모르게 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남을 위한 충정일지라도 억울하게 배반당할 것까지 각오하지 않고서는 십자가를 지는 길은 없다. 나의 진의가 오해당하고 친구들에게마저 버림을 당하게 될 각오 없이 감히 '남을 위하여!'라는 삶을 뇌까릴 수 있을까? 더욱이 예수의 길을 따른다는 사람인 경우, 모두가 인정하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참에 서고 의(義)에서 살려는 자는 언제나 외롭다. 까닭은 그것 자체가 오솔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제 진상을 드러내기까지는 너무도 겹겹이 감싸인 악의 포위망을 뚫고 헤치며 나와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옳은 일이면 단행하라. 주저되면 하느님만 상대해라. 그럴 땐 물론 외롭다. 그러나 그게 바로 예수의 십자가의 현장에 참여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1977. 11.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