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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같지 않으면!

by 운영자 posted Oct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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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같지 않으면!

예수는 "너희가 어린이 같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보도된 세 어린아 이야기는 이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했다. 세 어린이가 실종됐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우연히 옥상의 물이 마른 탱크 속에서 저들을 발견했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물탱크의 문이 자동적으로 닫히면서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방화용 물탱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몇 날 동안 그들이 거기서 어떻게 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신문에 보도됐다고 하나 직접 읽지는 못했고 얻어 들었기에 정확한지는 모른다). 저들은 처음에는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으리라. 그러나 안에 있는 자기들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알고는 '기다림'의 자세로 돌입했다. 저들은 불침번은 교대로했다. 까닭은 밖에서 구조의 손이 올 때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기도를 하며 졸지 않기 위해 교대로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렸단다. 이것이 바로 '더불어 산다'의 원모델이다. 저들은 갇힌 데서 나올 날을 기다렸다. 그들은 기다림에서 체념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 사람의 운명이 한 운명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더불어 살기 위한 계획을 작성했다. 그래서 서로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절망과 체념에 침몰당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은 저들의 한계를 알았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다. 기다림은 깨어 있음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밖에서 올 구원의 손길이 하는 노크소리를 듣기 위해 교대로 불침번을 섰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현실을 '더불어' 힘줌으로 극복해 나갔다.

이것이 당연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갇힌 것을 알았을 때 책임 추궁으로 그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네가 여기 들어오자고 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야?"로 시작되면 결국 핑계가 생기게 되고 나아가서는 난투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절망이 심하면 발악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랬더라면 더불어 살기 위한 공동의 계획도 짤 수 없었을 것이고, 절망에서도 몸부림치며 울고불고하다가 지쳐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바로 그런 것이다. 분명히 한 운명의 틀 속에 갇혔음을 알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악만 남아 서로 물고 뜯고 마침내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다. 궁하면 집안에 싸움이 일게 마련이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게 어른들의 세계 아닌가? 미국 서부 극은 이러한 인간의 단면도이다. 악한이 은행을 털어 도망하다 궁지에 몰린다. 저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저들은 그 훔친 것의 몫을 줄이기 위해 하나 하나 죽인다. 그래서 저들은 처음부터 불신의 공포 속에 있다. 저들은 포위가 되어 더 도망칠 가능성이 없을 때는 결국 서로 죽이므로 마침내 다 죽고 만다. 이것은 '더불어 살자'가 아닌 '나만 잘 살자'라는 이기주의의 축도이다.

한 나라의 사는 길도 그렇다. 특히 위기를 당했을 때 정부는 국민에게, 국민은 정부에게 또 그 안에서도 서로 책임을 추궁하는 데서 시작해서 대열의 분열을 일으킨다. 또는 위기이니까 기민하게 움직이기 위해 국민을 기동대화하고 상부의 명령 한마디에 전체 국민이 복종만하는 체계를 이상화한다. 정부 이외의 어떤 진정한 건의도 일사불난의 체제를 시끄럽게 하는 이적적인 잡음으로만 듣는다. 나라를 지키고 싸울 자는 결국 국민인데, 저들은 나라의 운명을 논하는 데 참여할 수 없게 되니 결국 불협화음이 생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국민들이 비록 복종을 해도 노예적인 굴종이지, 국민으로, 제 운명을 건 싸움으로 알고 제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않게 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저 어린이들처럼 같은 운명 안에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의견을 말하고 자발적으로 자기가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부 씩을 책임지고 떠맡아야 한다. 여기에는 다스림도 명령도 필요 없다. 까닭은 내가 죽고 사는 것과 나라가 죽고 사는 것이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의 운명이 곧 내 운명임을 아는 국민이기 때문에 간첩이나 범법자를 잡아내는 데 경찰을 뺨칠 정도로 기민하다. 이런 국민을 가진 마당에 나라를 걱정해서하는 소리가 정부의 귀에 거슬려서 곧 죄인으로 몬다든지 아니면 영입을 봉하게 한다면 국가의 일이 바로 내 일이라는 충정은 마침내 불간섭주의로 흘러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제 운명을 결정하는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게 되면 어쩌려는 것인가!

(1975. 4.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