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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by 운영자 posted Oct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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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영남대학 주체로 한국 통일 문제 심포지엄이 있었다. 어떤 계기에서였는지 나도 그 일원으로 불렀기에 생각하다가 응하기로 했다. 그 후부터 통일 문제가 새삼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정견을 못 가졌으나 하여간 참여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부풀었는데 그만 병석에 눕게 되어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나는 북한의 실정을 듣고 싶었다. 그 까닭은 크리스천으로, 신학 하는 자로서 한국 통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고 싶었다.

서구에서도 마르크시즘, 공산주의 연구가 그리스도교 안에서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연구에 큰 제약이 있다. 반공법이라는 것이 때로 느닷없는 데까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어느 누구보다는 공산세계에 관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북한의 그리스도교는 그 뿌리까지 뽑아버린 세계 유일한 영역이기에 그 안에 사는 동포들에게 관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공산세계를 앞에 놓고 신학적인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이 역사 안에 활동하는 하느님을 믿는다. 그러면 그 하느님은 인위적인 장벽에 걸려서 공산세계의 인간들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교회도 없는 공산세계에서 하느님은 어떻게 활동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하느님은 교회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만 활동한다는 전제가 문제이다. 교회라는 개념이 개성개념일 때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은 물론 인간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반신적(反神的)인 인간을 통해서도 가능하냐? 그렇다. 성서의 하느님은 역이용도 하는 하느님이다.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블레셋을 도구로 사용하는 하느님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공산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가 온통 무신시대 아닌가, 모든 것은 신을 전제로하지 않고 진행 된다. 어떤 프로젝트에도 신이 간섭할 여백을 남겨 두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교회정치마저 그렇지 않은가? 교회가 무슨 회의를 할 때 어디 신의 관여를 전제하나? 그런 전제가 있다면 그처럼 막후공작을 하고 권모술수를 구사하고 뜻대로 안 되면 주먹을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하느님은 정말 죽었나?

"죽었다! 그리스도교 시대는 지나갔다. 교회는 필요 없다. 신학도 필요 없다. 인간은 성숙했다.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이런 소리가 요새 그리스도교 자체 안에서 연발된다. 그리고 그 관심은 오히려 기술사회 자체, 혁명의 과정 자체, 역사의 흐름 자체에 기울인다.

그러나 그렇게 새삼스럽게 총소리에 놀란 토끼처럼 뛸 건 없다. 오늘아 무신세계라면 옛날에도 무신세계이다. 언제 유신론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나? 언제 하느님이 신을 전제로 한 사람 또는 믿는 자를 통해서만 활동했는가? 그리스도교는 인간들이 하느님을 죽였다(십자가)는 데서 출발하지 않았나?

세상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신을 전제하지 않은 세계에서 볼 때 예수의 일은 십자가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세상이 죽인 이 사실 속에서 하느님은 세계의 궁극적 초석을 놓았다고 증거한 것이 그리스도교의 출발이다. 그리스도교는 저들이 한 일에서 저들이 자기들의 한 일아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사실을 증언했다. 이 증언을 위해 수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그리스도교는 무신, 아니 살신(殺神)세계와 마주섰고 거기에 그 기점을 찾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도 본질상 다른 상황이 아니다. 오늘이야말로 더 다이나믹한 증언이 필요한 때다. 공산세계나 다른 무신세계에서 진행되는 일은 그 자체의 리듬에 의해 움직인다. 그것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교회는 저들을 통해서도 하느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밝히는 증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교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을 옳게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학적 판단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1970. 10. 『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