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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by 운영자 posted Oct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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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들의 수난사를 들으며

디오메데스(Diomedes)수녀를 따라 나섰던 것은 그가 당한 수난사를 듣고 싶어서였다. 밀레만 신부님과 가끔 마주 앉게 되면 나는 부지런히 그의 수난사를 유도해서 들었고, 내가 관심하는 것을 알고 이 수녀를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그 외에 또 한 수사를 만났다. 그 이름은 Stenger. 처음은 심심풀이로 들으려고 한 것인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그것에 대한 기록을 구했더니, 독일어로 된 'Schicksal in Korea'(한국에서의 운명)라는 적은 보고문을 주었다.

67명이 덕원, 원산, 회령, 함흥 등지에서 체포되어 평양 감옥을 거쳐서 강계 가까이의 옥사독이라는 원시림이 있는 산중에서 제 손으로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개간하고 숫 굽기를 4년 반! 그 중의 20여 명은 수녀들이었다. 순 옥수수와 좁쌀죽을 먹다 지쳐서 마침내 고사리, 도라지, 버섯 등을 채집하는 것도 배우고 감시소의 총부리 앞에서 조그마한 채플도 짓고 한 줌 감추어 온 밀로 성찬의 떡을 만들고 산머루를 따다가 성찬 술을 만들어서 미사를 드렸단다. 영양실조에 약은 전혀 없고, 오직 디오메데스 수녀가 약초를 캐다가 끓여주는 것으로 약을 대신했으나 자꾸 죽어나가는 동료는 늘고…

625동란에 공산당이 쫓기게 되자 저들에게 '죽음의 행진'을 시켜, 만포진을 지나 압록강을 넘었다가 다시 끌려 돌아온 이야기. 그처럼 4년 이상을 산속에서 짐승처럼 혹사당하다가 갑자기 평양으로 이송하기에 사형할 줄 알았더니, 그들의 표현대로 한 '낙원'에 모셨더란다. 화려한 산장에 요리사, 이발사, 목욕실, 양식, 술, 담배, 좋은 의복! 저들은 꿈을 꾸나했다가 정신아 들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30여 편의 공산 선전 영화를 계속 보일 때부터였고, 정말 꿈에서 아주 돌아온 것은 한 고급장교가 "나는 625전쟁은 미군이 일으킨 것이고, 저들은 세균전을 폈음을 목격했다"라는 내용의 인쇄물을 들고 와서 싸인 할 것을 강요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끝끝내 그것을 거절했고 결국은 풀려나서 만주, 소련을 거쳐 자기 나라로 귀환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나는 어떤 문인에게 이 산 자료를 알려주고 싶어졌다. 너무도 풍부한 소재로 차있다. 남녀 수십 명이 이방의 땅 산 속에서 4년 반의 강제 노동! 거기에는 신앙, 굶주림, 위로, 절망, 증오, 사랑, 섹스가 있다.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거니와 신도 죽음처럼 침묵하는 처절한 현실! 그 속에서 무엇이 저들을 살아남게 했고, 무엇이 저들로 다시 이 땅에 발을 돌리게 했을까?

저들은 그러한 내 질문에 한결같이 하느님의 은총으로라고 한다. 그리고 "그래도 그 때가 좋았어요"라고 한다. 극복하고 살아남아서 뒤돌아보고 좋았더라는 말은 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그 현실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이란 말은 체념된 결론이 아닌가? 그런 말 말고 무슨 다른 표현이 없을까? 정말 참 현실을 내 피부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그런 표현 말이다.

그 당시에는 적어도 "나를 잘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는 하느님!" 할 수는 없었을 터 아닌가? 저들의 회고담에는 정말 악랄한 패들도 있었으나 숨은 따뜻한 손길도 있었더란다. 그러나 그것이 발각되어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보았단다. 저들의 말대로 한국 사람이 나쁘지 않고, 공산주의가 저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했단다. 그럼 왜 저런 마수에게 인간이 짓밟히도록 저들이 믿는 하느님은 내버려두나? '섭리'? 그런 마당에서 '섭리'라는 말을 정말 실감나게 쓸 수 있다면 그는 그 하느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섰다. 그러나 저들을 죽지 않게 한 것은 미래를 바라보게 한 어떤 창구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 했나? 저들은 분명히 '무엇에' 의해서 살아났다. 그러나 저들은 그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못 가졌다. 자신들만이 독자적으로 경험한 그 무엇을 나타내는 그 말을 찾아낼 것을 포기하고 전통적인 교리의 말에 자신을 그대로 내맡겨 버린다. 김은국의 『순교자』의 신 목사는 "하느님은 죽었다"라는 말을 썼다. 그것은 하나의 '무엇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 말도 새것이 아니라 낡은 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 표현은 유신론, 무신론의 영역을 벗어난 어떤 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벌써 내가 답하고 있는 이 삶과 유리된 관념이다.

유신, 무신이 문제 아니라 지금 이 현존이 문제이다. 이 현존 그대로를 누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는 결론은 없고 그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실은 침묵하고 싶어 말을 버리기 위해서 말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196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