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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수를 만남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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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를 만남

사울은 역사의 예수를 만난 일이 없다. 그것이 바로 사도권을 주장하는 그에게 큰 약점이었다. 사도들은 예수와 더불어 살았던 제자들로 그 직계성을 내세우며 동시에 그의 부활의 증인으로 자부했다. 그러므로 역사의 예수를 모르는 바울로의 사도권 주장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이 사울이 신비한 경험을 통해 예수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세 번이나 반복된다. 그 한 번은 제삼자가의 서술형식을 취했고(사도 9, 1~19), 그 외 두 번은 바울로가 자기 경험을 직접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사도 22, 6~1626, 12~18).

그중 사도행전 9장의 내용은 이렇다.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민중을 샅샅이 수색하여 투옥하던 사울이 다마스커스에 그들이 많이 몰려 있다는 정보를 듣고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지니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환하게 비쳐서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말과 더불어 그 예수는 사울이 다마스커스에 들어가서 할 일과 만날 사람을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동행하던 사람들은 전혀 그런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로 인해 사울은 눈이 어두워져서 사람들에게 부축받고 간신히 다마스커스로 들어가 사흘 동안이나 시력을 잃은 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상당히 극적인 서술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 사건은 객관성을 주장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초자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와 동행한 이들도 그 사건을 경험했을 것이다.

22장에서 바울로 자신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는 본문의 내용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다른 점은 동행자들이 예수의 음성은 듣지 못했지만 그때 비친 빛은 보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총독 법정에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22장의 내용은 아그리빠왕 앞에서 말한 것으로서 그 내용도 대동 소이하다. 단지 여기서는 바울로만이 아니라 그 일행이 모두(우리가) 그 빛을 보고 땅에 엎드렸다는 것이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은 히브리 말이었다는 것과 "가시 돋친 채찍을 뒷받질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일행들에게 이 말이 들리지 않았다는 첨가구는 없다.

9장에서는 이런 사건을 통해서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전수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거기서 얼마 동안 제자들, 즉 예수의 민중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19절 후반). 22장에서는 아나니아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 바울로의 체험은 그가 그 일을 통해 자기 체험 속에 나타난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그리고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죄 씻음을 받으시오"라는 아나니아의 딸에 따라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인이 된 것이라고 씌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약간씩 틀리는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바울로 자신에게서 듣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편지에서 바울로는 이에 관해 말한 것이 있는가?

놀라운 것은 이런 중요한 사건이 바울로 자신의 편지에서는 직접적으로 서술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몇 곳에서 이 특수한 경험과 관련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발언을 찾아볼 수 있는데(갈라 6, 17; 고전 9, 115, 8) 그것들도 그 사건 자체를 말하려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장에 곁들여서 한 것일 뿐이다. 일단 바울로 자신의 말들과 사도행전의 이 이야기들 간에 놓인 거리를 좁혀보자.

먼저 바울로의 전향과 다마스커스가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입증된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이 사건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시'라는 말이다. 그것은 그가 전향 후 다마스커스에서 직접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그리로 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아나니아를 말하지도 않고, 예수의 민중과 더불어 얼마 동안 함께 있었다는 말도 없으며, 거기서 세례를 받았다는 말도 없다. 그러나 그가 다마스커스에서 예수의 민중을 통해서 예수운동에 대한 그릇된 전이해가 시정되고, 그리스도복음에 대한 확신을 얻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한편 16절에는 그가 하느님의 아들을 계시받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계시'(apokalypsis)라는 말은 '열어서 보인다'는 말로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보인다', '드러내 보인다'라는 말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편에서 보면 수동적인 것으로 주체는 어디까지나 보여주는 이이다. 가령 '하느님이 계시했다' 하는 경우에 하느님 스스로가 자신 또는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열어 보였다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희랍에서는 이런 종교적 의미로 이 말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신플라톤학파가 A.D. 3세기경부터 이 말을 썼는데 주목할 것은 그것이 천문학, 연금술에 관한 서술을 할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서는 그 말이 보이지 않던 별이 나타났다든지, 어떤 별의 이동을 통해 어떤 징조가 보였다는 뜻이며, 또 금을 만드는 숨겨진 비밀이 드러났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신적인 자기계시나 선언을 나타내는 데에는 'Epiphaneia'라는 다른 말이 사용되었는 데, 이것은 '어둠 속에 해가 동쪽으로부터 자기를 드러내 보였다' 등과 같이 그렇게 신적인 존재가 자신을 현시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던 이 말은 점점 격하되어 패왕이 되고자 하는 군주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Epiphan을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가령 팔레스틴의 안티오쿠스 4세(B.C. 145~143년 재위)가 그런 예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에서는 제(帝)가 원래 초월적인 존재(神)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이 점점 격하되어 죽은 군주를 신격화하는 데 쓰였고, 마침내는 살아 있는 군주에게도 적용하기에 이른 것과 같다. 또 헬레니즘 영역에서 이 '계시'라는 말을 '깨달았다'(靈知), 즉 신인식(神認識)의 뜻으로 사용했는데 영지주의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불교에서 쓰는 각(覺)과 대차없는 것이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알게 된 내용은 나 자신이다. 본래 내게로 돌아오는 것 바로 그것이 '계시'가 된 셈이다.

그러나 바울로는 이런 의미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의 계시'가 자신의 노력의 결과 즉 탐구나 수도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자신이 이방인에게 사도로서 복음을 선교할 수 있는 권한, 즉 사도의 특권을 주장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이것을 그 뒷받침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모태로부터' 하느님이 정하신 일이라고 한다. '모태로부터'라는 의미는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내가 너를 점지해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예레 1, 5).

바울로의 경험은 예레미야의 경우와 똑같다. 자신은 그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철저히 수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제2 이사야에서도(49, 1) 이와 똑같은 표현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적어도 그 양식에 있어서 사도행전에 서술된 현시사건과 상통한다. 사울은 아무런 내적 준비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예수의 민중의 예수사건에 대한 주장을 뿌리뽑기 위해 나선 도상에서 너무도 뜻밖의 사건에 부딪친 것이다. 그러므로 뜻밖에 부딪쳤다는 점에서 바울로의 말과 상통한다.

고린토전서 9장 1절에서 바울로는 "내가 사도입니까?"라는 말에 이어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것은 다마스커스 도상의 그 사건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 말에서도 어떻게 예수를 보았는가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바울로는 여기서 예수를 보았다는 능동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바울로는 그 사실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것이 아니라 적대자들에게나 아니면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도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그것을 내세운다.

그와 같은 발언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저 유명한 부활증인 고백에 있다(고전 15, 3~8). 그는 부활한 예수를 본 사람들을 예거한 후에 "그리고 멘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해서 난 자와 같은 내게도 나타나셨습니다"(8절)라고 한다. 여기서 '나타났다'(horao)는 말은 눈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9장 1절 이하의 내용과 상통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서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이므로 다마스커스 도상의 그 경험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가 사도임을 강조하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위의 경우와 같다.

이렇게 바울로 자신은 그 장면을 사도행전에서처럼 서술하지는 않는다. 왜 그랬을까? 그가 예수와 직접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 자기의 사도권의 정당성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바울로가 왜 그 경험을 말하지 않았을까? 그런 사실은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있었어도 남에게 그런 경험을 도저히 입증해 보일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사도권 주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실은 바울로는 끝끝내 자신의 사도권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그가 누구보다도 고난을 겪었고,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다음에 자신이 낙원에 오르락내리락하는 특수한 경험을 했음을 잠깐 비치면서도 마치 그것이 제삼자의 이야기인 양 전할 뿐 아니라 그런 것을 자랑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임을 자인하며, 그런 것을 계속 의식하면 오히려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그에게 부끄러운 병을 주셨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약함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다(고후 12, 1 이하). 그러므로 그 일의 사실성 여부는 불확실하다. 왜 그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까? 과정이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인가? 그러면 이 사건은 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