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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갈릴래아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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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갈릴래아

본문은 마르코복음에 나타난 부활설화의 전부이다. 맨 처음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이 복음서에는 예수가 부활하여 나타난 보도가 없다. 지금 있는 것은 후에 첨부된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갈릴래아의 여인들이 안식일 다음날 무덤을 찾아간다. 저들은 죽은 예수를 추억해 갔을 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패배와 절망의 방문이다. 그런데 그 무덤에는 죽은 예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활한 예수도 없다. 단지 다음과 같은 전갈만 있을 뿐이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자렛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고 여기에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그대들은 지금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를 뵐 것이라고 전하라(마르 16, 6~7).

이것이 마르코복음의 결론이다. 즉 이 전갈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여기 말고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왜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만나자 하지 않고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예루살렘은 진리와 거짓, 사랑과 증오, 혹은 삶과 죽음의 대결장소였다. 아직도 예수가 흘린 피가 대지를 적신 채 마르지 않은 곳이다. 그곳은 예수를 적대하던 세력들이 승리하여 그를 짓밟아 죽인 곳이다. 제자들의 마음을 추리해본다면 저들은 억울함과 좌절 혹은 분노로 차 있었을 것이다. 만일 저들이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승리하리라는 직선적인 희망을 가졌더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끝까지 대결의 장소이지 통합의 장소는 아니었다. 만약 예수가 예루살렘에 집결하라고 했더라면 그곳은 복수의 장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부활한 예수는 예루살렘이 아니고 갈릴래아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함은 전혀 새로운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그곳이 예수를 처음 만났던 장소이다. 그곳은 예수와의 관계의 시발점이요, 사랑과 복종과 꿈 그리고 평화만이 지배하던 곳이다. 그곳은 대립, 분열 혹은 대결 이전의 장소이며 그들의 마음의 본향이다. 예수는 그 처음 만났던 장소, 갈릴래아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는 그 어느 날의 예수는 아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고 대립과 패배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갈릴래아에서 만나자 함은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전제에서의 새 출발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갈릴래아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역시 옛 자리다. 이 점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 자리는 과거를 초월하는 혹은 도피하는 장소가 아니라 정(正)과 반(反) 다음의 합(合)의 자리일 뿐이다. 이곳은 과거를 재해석하여 지양, 흡수하고 새로운 미래로 향할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

그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마르코복음은 보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위대했던 것은 저들에게는 예수를 죽인 예루살렘 아나 유다인들을 향하여 복수의 진격을 하려던 흔적은 추호도 없고, 오히려 갈릴래아를 기점으로 하여 유다와 헬레니즘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했으며, 갈라진 관계들을 다시 묶으려는 통합의 길로 매진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사실은 갈릴래아에서 예수를 만났던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