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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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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민중신학은 바야흐로 세계적인 신학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구라파 특히 독일 여러 대학들에서 '민중신학 세미나'가 열리고 있고 그곳의 유학생들이 모국에 응원을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민중신학에 관심 있는 교수와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거나 자주 신학연구소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미 민중신학을 테마로 한 박사학위 논문도 여러 편이 나왔고, 지금 진행중인 것도 상당수에 달한다. 그중에는 한국 학도만이 아니라 의국인들도 여럿 있다. 비판이든 칭찬이든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과 주문은 증가일로인데 한국의 민중신학계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없지 않다.

그런데 민중신학의 발전적 계승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동안 꾸준히 연구하여온 후학들이 그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과 주제들을 가지고 나를 찔러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저들의 표현대로 이른바 '짜내기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저들은 뚜렷한 문제의식과 방향설정을 미리 해두고 공동으로 물음을 마련하여 나에게 대답을 강요하였다.

질문은 용의주도하게 준비되었으나 대답은 엉겁결에 주어졌고 그것은 즉석에서 녹음되어 다시 원고지에 옮겨진 것을 본인이 '마지못해' 수정가필한 것이 이런 모양의 책으로 된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작년에 일본에 가서'이야기 형식'으로 네 차례에 걸쳐 민중신학에 대해 강연한 것을, 역시 저들이 녹음하여 책으로 묶어 보내왔기에 우리말로 옮겨 손질해서 실었다.

민중신학이란 '민중사건'을 신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그러기에, 민중사건과 더불어 행진하되 결코 어떠한 형태 속에 정체될 수 없는 것이 민중신학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조직화하거나 틀을 만들어버리면 박제된 골동품이 되어 예수의 머리에 들씌워진 또 하나의 '금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애당초 교본적인 것을 낼 생각이 없었다. 이런'이야기 신학'을 내놓는 자의 변명일까?

이 일에 참여한 후학들로는 박성준, 이정희, 강원돈이 중추가 되고 박재순, 강맑실, 박경미, 이재원, 이강실, 김승환, 최형묵 등이 참여했다. 원래는 질문자들의 이름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편집상의 고려에서 생략하였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나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공동작업의 소산이다. 그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1990년 5월 5일

안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