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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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대인과 고전

by 운영자 posted Sep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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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인과 고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기계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것에 비해서 사상적인 반곤 또는 혼란이라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균형의 파괴가 바로 인류의 위기라고들 말한다.

이러한 현재에서 사는 인간들은 급변하는 현실에서 자기의 설 자리를 찾지 못해서 몸부림친다. 과학기술은 고도로 발달해서 물질적인 미래의 전망은 밝은데도 세계의 젊은이들은 현대에서 아무런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기존의 모든 사상이나 제도에 도전하고 있다. 이것은 사상의 빈곤에서 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상의 혼란을 극복하는 길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하는 것 외에 바른 길이 없을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현재를 보는 것은 현재에 대한 비판의 거점을 마련하는 일이다. 고전을 찾는 것은 '회고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로 향하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구의 근대문명은 르네상스가 그 출발이다. 그런데 그것은 고전에 눈을 돌림으로써 내디딘 새 출발이다. 간디의 새 인도는 『베다』  사상의 배경 없이 생각할 수 없으며, 중국의 그때그때의 국가 위기의 극복은 그들의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발견 없이는 바로 이해할 길이 없다.

고전을 가진 민족이나 개인은 축복받았다. 저들은 비록 쇠잔한 때가 있더라도 그 안에 고전의 르네상스가 도래함으로써 재생할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자기들의 기원을 가진 고전을 소유한 민족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불교 경전은 인도에 그 기원을 가졌으나 그것은 국경을 넘어서 중국, 동남아 그리고 극동으로 퍼져나가서 각 민족의 고전이 되었으며, 성서는 팔레스틴에 그 기원을 가졌으나 로마의 판도를 타고 서구인들의 영역에 퍼져서 저들의 고전이 되었다.

고전은 그것을 가진 민족이나 개인에게 가장 큰 보물이면서 또한 큰 장애물이 되는 수도 있다. 그것은 계속적으로 재해석되어 현재화하면 앞으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을 그대로 사장해두면 미래로 향하는 문을 차단해 버리는 망령(亡靈)이 된다. 그러므로 고전의 주인은 그것을 계속적으로 재해석할 때만이 자기들의 전통을 형성할 수 있다. 유다교가 성서를 율법으로 고착시켜버렸을 때 유다 민족에게 망령이 되었으나, 기독교도의 재해석으로 그 폐쇄성을 뚫고 세계로 진출해서 마침내 백인들의 독점물처럼 되기까지 이르렀다. 힌두족의 고전 역시 그 민족이 사장해두고 있을 때 그 당시의 지도계급을 위한 어용물로 고정되어버렸으나, 새로운 해석으로 그 담을 부수고 나와서 그 본적지를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옮기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불교다. 이 고전은 일정한 본적이 없으며 언제나 새로 해석해 가지는 민족의 것이 된다. 서구에서는 성서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망령으로 변하게 되었다. 만일 종교개혁이 없었던들 이 고전은 서구를 망치고 벌써 그들과 결별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이 성서 하나를 재해석했을 때 그것은 어떤 정치나 군사적인 변혁과도 비길 수 없는 커다란 사회혁신을 가져올 수 있었다. 대영제국에 대한 인도 간디의 저항운동도 그들의 고전에 대한 재발견과 재해석에서 얻은 힘으로 해낸 것이다.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다. 그는 태어날 때에 단순히 공허한 공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요람에 내맡겨진다. 그는 그 안에서 자라고 자기를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통을 빼고 자기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 전통에 대항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저항의 무기는 언제나 그 전통에서 주어진 것이며, 그는 이 전통을 하나의 도약대(姚躍臺)로 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뚜렷한 전통이 있으면 있는 것만큼 그 저항은 강하고, 그 저항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반면에 강한 전통이 없는 민족에게는 저항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확고한 전통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 고전을 자기 것으로 하고 그것을 계속 재해석하는 것 이상의 길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