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집

전집은 OCR 스캔 잡업으로 진행되어 오탈자가 있습니다.
오탈자를 발견하면 다음과 같이 등록해 주시면 관리자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정 요청을 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2. 본문을 읽는 중에 오탈자가 있는 곳을 발견하면 앞뒤 텍스트와 함께 마우스로 선택합니다.
3. 그 상태에서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타나는 창에서 수정 후 [수정요청]을 클릭합니다.
4. 각주의 경우에는 각주 번호를 마우스오버하여 나타난 창을 클릭하면 수정요청 창이 열립니다.

※ 컴퓨터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합니다.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제2장 성서의 특성

성서는 고전의 하나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것이 문서화되어 오늘의 모습으로 된 것은 B.C. 8, 9세기에서 A.D. 1세기말까지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글로 완성되는 데 1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므로 단순히 문서화된 이후와 우리와의 시간적 거리만도 3천 년에서 2천 년이 된다. 성서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립된 여러 책들이 한데 묶어졌다. 그중에 구약이 39권이며 신약이 27권이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직결된 경전이며 신약은 이미 세계사와 직결된 그리스도 중심의 경전이다.

구약은 인류역사의 시작, 즉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이 된 에집트 탈출기에서 국가형성 이전의 역사와 국가형성 이후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따라서 그 자료들은 이것을 쓰기 이전에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온 전승들이다. 그것은 연대적으로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때부터 이스라엘 종족이 얻은 체험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진 것이다. 거기에는 계속적인 되풀이와 해석이 있으며, 밖에서 들어온 요소들이 가미되어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재산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성서'(Holy Bible)이기 때문에 독자가 이것을 다른 것과 구별된 거룩한 내용만 실려 있으리라는 전제를 가지고 읽어나아가다가는 크게 실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다른 어떤 민족의 건국신화나 민담 또는 야사(野史)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잡다한 것이 무수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인간역사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이 다 실려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온갖 모습을 압축한 전시장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안에는 추잡한 악과 고귀한 선이 있으며, 불륜과 순결, 절망의 애가(哀歌)가 있는가 하면 환희의 개가(凱歌)도 있다. 또한 그 안에는 연대기(역사)가 있으며 예술, 종교, 철학 등이 뒤섞여 있다. 기록의 양식으로 보면 시가, 사문(詞文), 산문, 소설 등 다채로우며 이러한 여러 형식 안에는 격언과 같은 지혜의 단편, 축복, 예언, 법, 기도, 설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것을 발견하는 독자는 자기가 읽어왔던 성서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혹시 이 성서는 다른 성서인가하고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라는 '성'(聖)은 후에 번역할 때 붙인 것이고, 원래는 단순히 '책'이라고 되어 있다. 이 책에는 소위 성(聖)속(俗)의 영역이 구별되어 있지 않다. 그 구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똑같은 역사라는 한 무대 위에 있으며 역사 안에서 구별된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서를 한 종교의 경전이라는 전제에서 그것을 그대로 종교의 규범으로 보려다가는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에서 윤리적인 규범을 찾을 것인가? 성서 안에는 확실히 원초적인 인간윤리의 본모습이 산재하여 있다. 따라서 고도의 높이와 깊이를 가진 인간애의 편모(片貌)가 오늘을 사는 우리를 감격하게 하며 때로는 오늘의 우리와 너무 대조적인 데서 얼굴을 붉히게까지 한다. 그러나 성서는 윤리교본일 수는 없다. 까닭은 고도의 윤리가 있는 반면 또한 고도의 불륜의 세계가 그대로 폭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결코 다른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한 사건, 한 인물 안에 뒤섞여 있다. 가령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야곱, 다윗 등을 신앙의 조상, 민족의 조상 또는 과거나 미래의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으로서 경외한다. 저들에게는 확실히 위대한 면이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최대의 인간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동시에 저들은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용납할 수 없는 불륜도 감행하였다. 그 한 예로 유다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요 귀감이며 희망의 대명사가 됨으로써 마침내 장차 올 메시아도 그의 후예라고까지 믿게 된 다윗을 보면 족하다. 다윗은 자기 부하의 아내에게 욕심을 낸 후 그 범행을 감추기 위하여 부하를 일선에 보내서 죽게 한다는, 만대의 의분을 한 몸에 받아야 할 불륜을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유다 민족의 상징인 아브라함이나 야곱 같은 이들도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귀감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이 못된다.

그러면 이스라엘이라는 한 특수 민족사에서 민족이 나아갈 귀감을 성서에서 찾을 것인가? 확실히 이스라엘 민족사는 세계에 그 예를 볼 수 없이 특이하다. 그러나 이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어떤 의미로나 세계의 모범이 될 만한 모델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저들의 역사는 하느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요, 패배를 거듭하는 약자의 역사요, 옆길로 달리는 불륜의 역사이다.

구약은 출애굽기를 이스라엘 민족역사의 기원으로 한다. 이 책에서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 그리고 다윗에 의해서 대왕국이 구축되고 얼마 후 그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과정만 보아도 이스라엘은 결코 종교나 윤리적인 귀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강인한 민족성으로서 백절불굴의 귀감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구약의 편자들은 어떤 안물을 신성시해서 미화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그렇다고 자신들의 찬란한 역사만을 내세우거나 죄상을 은폐하려는 흔적도 없다.

이 점은 구약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신약에서도 비슷하다. 거기에는 유다교와 구별되는 새 종교 형성의 스케줄이 처음부터 있은 것이 아니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길이 새로운 종교 단체를 형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어떤 특정한 정의나 또 제도 따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랬기에 저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여전히 유다교의 성전이나 회당에 드나들었다. 이 같은 사실은 대체로 A.D. 70년 이후에 쓰여진 공관복음서에서도 역력히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사도행전 처음 부분(2, 3장)에 뚜렷이 노출되어 있다.

저들이 유다교에서 떨어져나가서 하나의 새로운 종교단체가 된 것은 자기들의 스케줄에 의했던 것이 아니라 완고한 유다교에 의해서 다 밀려나간 것이다. 후에 보게 되겠지만, 저들의 신조도 결코 일치 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것이 통일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이다. 따라서 신약은 특출한 종교생활의 교본일 수는 없다.

사람들 중에는 신약의 고도의 윤리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산상설교 같은 것은 윤리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높이 추앙받고 있다. 거기에는 다른 데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사랑이 제시되어 있다. 이 사랑은 신약 전체에 일관되어 있다. 바울로는 많은 교리적인 교훈들을 제시하나 결국 그중의 첫째는 사랑이라고 했으며, 요한은 사랑 자체에서 모든 것의 열쇠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윤리의 프로그램을 찾으려고 하면 곧 실망할 것이다. 윤리란 인간관계의 질서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신약의 사랑을 문자 그대로 철저화하면 오히려 윤리는 파괴된다. 복음서의 진수로 떠받드는 산상설교의 내용을 예로 들어보자. 그 위대한 축복의 선언에서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슬피 우는 자' 등이 오고 있는 새 세대(하느님의 나라)의 주인공이 되며 축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일반 윤리에 합당하단 말인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5리를 가자면 10리라도 가라는 것을 윤리행위의 프로그램으로 강요한다면 죽어 버리라는 것과 같으며, 악인이나 선인의 구별 없이 해와 비를 주는 하느님처럼 행위하라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의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윤리질서는 붕괴되고 만다. 아니 오히려 신약에는 반(反) 일반적이고 반(反)윤리적인 극단적인 요소가 가로놓여 있다. 가령 죽은 부모의 장례를 치르려는 자식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례하게 하라는 말이라든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자식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께 합당하지 않다는 말 같은 것을 윤리교본의 항목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윤리세계에 혁명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회윤리 개혁의 새로운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 그처럼 강조되었으나 새 윤리 수립의 원리로 삼으려 한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당시의 일부다처의 풍습이나 노예제도 같은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을 리가 없다. 바울로는 오히려 노예에게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말고 충실히 제자리를 지킬 것을 권할 정도여서 오히려 현대인에게 비난을 사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 나타난 그리스도교회가 공동체의 귀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작은 모임이 로마의 판도를 그대로 타고 그 짧은 기간에 로마의 심장부에까지 진출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교회의 제도나 구성요소가 윤리적으로나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보아서 모범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에 참가한 인원들은 뛰어난 사람들도 아니었으며(고전 1, 16 이하, 안병무, 「선택된 민중」, 『現存』 104호), 사상적으로도 통일되지 않았다. 저들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균열이 생기고 반역자들이 속출하였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교회와 이방 교회 사이의 충돌이 그것이며, 유다교적인 유혹이나 당시의 영지주의(靈知主義)의 유혹에 그대로 휘말려든 사건들이 그것이다.

그 주동인물들도 반드시 이상적인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수제자로 공인된 베드로나 기독교를 펼쳐나간 바울로도 특수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결코 인간적으로 '다 갖춘' 인물들은 아니다. 성서는 저들의 약점을 폭로 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베드로는 제자로서 배신했고, 교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된 후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불철저했기에 바울로 같은 이가 위선자라고 사람 앞에서 핀잔을 줄 정도였다(갈라 2, 11~14 참조). 그러나 교회의 대표자를 사람들 앞에서 이처럼 핀잔을 준 바울로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범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동양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오히려 실망스럽기까지 한 대상일 수 있다. 바울로는 독선적이리만큼 자기 신념이 강하다. 특히 자신이 전한 '복음'을 절대시하여, "우리 자신이나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 대신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받아 마땅하다"(갈라 1, 8)라고 한 발언이라든지, 베드로를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힐책(갈라 2, 11 이하)한 것이라든지, 바나바와의 충돌로 갈라진 사실이라든지, 심지어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은 자들을 그의 편지의 마지막 인사에서 제외시키고 있는데, 이 같은 편모들은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원숙한 인간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면 성서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떤 것이기에 지구 한 구석의 극히 보잘것없는 지역에서, 수로 보나 힘으로 보나 하잘것없는 한 민족 안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이 책이 국경을 넘어서 세계로 퍼져서 백인들의 역사형성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온세계의 구석구석에 침투해서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특히 서구 사회에서 살아본 사람이거나 서구의 사상사를 더듬어볼 때 더욱 절실하게다가온다. 서구의 생활 습성, 사회제도, 예술품 등을 보면 구석구석에 성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서구의 사상도 성서의 영향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비록 반(反)그리스도교의 기치를 든 사상들 마저도 '반'(反)이라는 기치가 말하듯, 그것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나치나 마르크시즘의 도화선이 된 헤겔도 성서를 배경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해석자로 자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마르크시즘마저도 성서의 영향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저들은 성서에서 역사관을 도용했고 성서의 하느님이라는 말을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고, 반그리스도교라는 것을 저들의 도약대로 삼았다. 이렇게 볼 때 마르크스가 유태인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오늘의 네오 마르크시스트들이 대부분 유다 계통이라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반드시 성서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것은 문제의 책이며, 그만큼 지금은 여러 형태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성서의 특징은 무엇인가? 성서는 이스라엘의 민족사로 보거나 그리스도교도의 생활기록으로 보거나, 또는 그 안에 등장한 인물을 중심으로 보아도 모범의 대상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그 특성을 찾을 열쇠가 있다. 즉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범의 대상일 수 없는데도 저들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에 준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그 비밀을 아는 열쇠이다. 다른 면에서 말하면, 성서의 편자들은 자산이 그 한 부분인 전체로서의 자기나 또는 대표적인 인물들의 약점을 폭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저들은 이스라엘 역사 자체 또는 어느 인물들의 삶 자체를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이 점은 다른 민족사나 고전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 특성이다. 그러면 이러한 자기 폭로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자기 시위가 아니다. 그 눈은 자기 자세의 잘잘못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 눈은 바로 자기의 잘잘못에도 불구하고, 아니 자기가 잘할 때 또는 잘못할 때, 약할 때 또는 강할 때, 패배했을 때 또는 승리했을 때 작용하는 어떤 힘, 어떤 의지, 어떤 손길이 머무르고 있다는 확신을 준 것이다. 성서는 어떤 한 민족공동체 또는 개개인의 삶의 기록이다. 그러나 성서는 그 삶 자체에 어떤 가치를 인정하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삶 한복판에서 경험한 어떤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그대로 폭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어떤 힘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자료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그 안의 인간상은 완전무결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안에 있는 잡다한 요소들을 그대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보고 내 안에서 성서 안의 인간상을 보게 한다. 그리 함으로써 성서 안의 인간상과 그 역사가 수천 년 전에 생겼던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안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것과 공동운명체임을 경험하게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인간 역사의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경험한 어떤 의지, 어떤 손길을 경험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처럼 과학적 사고에 세뇌된 인간에게 실제적으로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을까?


| 안병무전집1 |
역사와 해석
(한길사)
List of Articles
표지
증보판에 부치는 말
머리말
       
제1부 고전(古典)으로서의 성서
       
제1장 고전의 의미
    1. 인류와 고전
    2. 현대인과 고전
제2장 성서의 특성
제3장 성서를 보는 눈
제4장 성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의 주체
제5장 성서의 자료와 편집
       
제2부 약속을 믿고 산 민족사 : 구약
       
제1장 한 책의 민족 이스라엘
제2장 인간사 서장
    1. 창조된 세계와 인간(아담)
    2. 잘못 출발된 역사
제3장 도상의 나그네
    1. 족장들
    2. 탈출의 족장 : 아브라함
    3. 하느님과 겨룬 사나이一야곱
제4장 엑소더스
    1. 히브리
    2. 모세
    3. 하느님과의 계약
    4. 십계명
제5장 종족공동체의 형성
    1. 가나안 정착
    2. 이스라엘 종족동맹
    3. 판관들
        1) 판관 삼손(판관 13~16장)
        2) 판관 기드온(판관 6~8장)
제6장 왕국시대
    1. 왕권과 국가
    2. 다윗왕조
    3. 왕국시대
        1) 솔로몬 왕
        2) 분단 200년
제7장 예언자
    1. 예언자의 현장
    2. 찬양과 저주一나단
    3. 왕권과의 대결자一엘리야
    4. 종교보다 정의를一아모스
    5. 남은 무리 一이사야
    6. 심판과 새 가능성 一예레미야
    7. 해골의 부활一에제키엘
    8. 너 위한 수난一이름없는 예언자
    9. 예언자의 말의 성격
    10. 과거, 현재, 미래
   
제3부 새로운 개벽 : 신약
   
제1장 예수의 사건
    1. 예수의 시대상
    2. 역사와 해석자
    3. 예수의 선포
        1 ) 하느님 나라의 초대
        2) 낡은 질서와의 대결
    4. 예수의 행태
        1) 무슨 권위로
        2) 예수와 민중
    5. 십자가 처형
    6. 갈릴래아에서 만나자一부활사건
제2장 예수운동의 전진(사도행전)
    1.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민중운동
    2. 이스라엘 민중운동의 목표와 사상
    3. 민중사실
제3장 바울로의 삶과 증언
    1. 그의 삶
        1) 바울로의 위치
        2) 민중사건에 항복한 사울
        3) 바울로의 연대기
    2. 바울로의 증언
        1) 인간세계 심판
        2) 사람됨의 조건
        3) 죽음에서의 탈출
    3. 그리스도와 역사
    4. 자유인의 길
        1) 앞을 향해 달리는 삶(필립 13,1~14)
        2) 하느님 앞에 선 존재 (갈라 4, 1~10)
        3) 이웃과 더불어의 존재
    5. 바울로의 민중론
        1) 고린토교회의 사회계층
        2) 민중을 보는 바울로의 눈
        3) 택함을 받은 민중
    6. 바울로의 수난기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예루살렘에서
        3) 문제점들
        4) 바울로는 ‘정치범’이 아닌가
        5) 예수의 수난사와 바울로의 수난기
제4장 요한의 증언
    1. 요한복음의 특이성
        1) 공관서와의 관계
        2) 요한의 정신적 풍토
        3) 예수의 새 해석
    2. 개벽의 선언
    3. 갈림길
제5장 박해와 희망(계시록의 신앙)
    1. 묵시문학의 성격
    2. 로마제국과의 대결
    3. 결단할 때
    4. 영원의 노크
    5. 마라나타
한국어로 된 성서 연구 참고문헌
전집간행에 부치는 말
판권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위로
텍스트를 수정한 후 아래 [수정요청] 버튼을 클릭하세요.